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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신지옥』 리뷰

by 0I사금 2025.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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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신지옥』은 개봉 당시 영화평이 상당히 좋은 걸 보고 싶다고 생각은 했었지만 사정이 있어 극장에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좀 시간이 지나 TV에서 첫 방영을 했을 때 기다렸다가 감상을 할 수 있었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느낀 감상을 요약하면 전반적으로 종교적 상징이 많이 흐르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배경으로 나온 명화 중에 양의 그림이 있는데 이건 성경 속의 '잃어버린 양'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표현한 거더라고요. 이게 바로 영화 속 소진의 실종과 영화의 주제와도 이어지는 거 같더군요. 그 외에도 손에서 흐르는 피, 붉은 목도리 같은 것 등. 또한 분위기가 매우 정적인 느낌이었는데 저야 좋게 봤지만 화끈한 공포를 원하는 사람들은 지루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영화가 괜찮았음에도 당시 흥행성적이 좋지 못한 이유는 이런 류의 공포가 사람들에게 어필하기 힘들기 때문일까요? 또 영화의 내용은 우리 전설이나 민담 속의 여성 원귀 이야기와도 유사한데 살해당한 여성의 시체가 숨겨지고 원혼이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여 그 시체를 찾아내고 건지는 이야기 같았거든요. 영화의 중심축인 희진과 소진, 어머니, 이웃들 중에 다수가 여성이고 등장하는 남성은 경비와 형사뿐. 전체적으로 여성형 비극에 모티브를 잡지 않았나 싶은 영화이기도 했습니다.

일단 영화의 서두는 기침을 내뱉으며 부산스레 하루를 보내는 주인공 희진(배우 남상미 분)의 일과로 시작합니다. 가난한 집의 대학생으로 보이는 그는 동생이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내려오지요.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로 기도로 모든 것이 해결될 거라 믿고 형사는 단순가출로 처리하려 합니다. 영화에서 자주 배경으로 등장하는 삭막한 겨울의 낡은 아파트는 그 존재만으로도 공포스럽게 느껴지더라고요. 아파트의 폐쇄적인 구조는 사람들로 하여금 답답함과 동시에 공포를 불러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아파트에는 항상 추락의 위험이 존재하는데 역시 이 점도 크게 영화를 관통하는 흐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고로 이 영화에선 희진의 가족들이 아파트의 이웃들과 친분이 어느 정도 있던 것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모르는 사람에 의한 게 아니라 실은 다 아는 사람들끼리의 일이 벌어진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다만 한동안 외부인이었던 언니인 희진에겐 다 낯선 곳이었다는 특징이 있는데요. 초반 아파트 놀이터에서 희진의 앞에 등장한 학은 희진에게도 매우 낯설었던데다 실제로 벌어지기 힘든 희귀한 장면이라는 점에서 보는 시청자들에게도 낯선 장면이고 그래서 그 장면이 공포스러웠습니다.

여기서 희진의 동생 소진(배우 심은경 분)이 신들린 아이라는 것은 큰 반전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영화 예고편이나 상당수의 리뷰를 통해서 미리 알게 된 사실인데, 그렇다면 아파트 내부를 공포로 몰고 간 잇단 사람들의 자살 사건이 무엇 때문에 일어난 건지, 아파트 이웃 사람들의 증언으로 하여금 알려진 소진의 기이한 행동과 소진의 죽음, 소진이 죽었다면 소진의 시신은 어디에 있는지 또 소진이 왜 죽은 건지, 소진이 정말 신이 들린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 신이 사람들에게 징벌을 내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가능한데요. 그럼 죽은 사람들에겐 하나같이 죄가 있다는 것도 추측 가능하고 그럼 그 죄악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가 궁금해지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계속 추측하다 보면 죽어나간 사람들이 소진(혹은 소진의 죽음)과 연관이 있다는 것도 파악하게 되는데 처음 자살한 이웃집 젊은 여성 정미는 혹시 아버지의 죽기 전 부탁을 거절한 게 죄인가 싶었지만 솔직히 버림받은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원망하며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이해가 가는 선이라 만약 그게 죄라면 그 징벌이 지독하게 가혹하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아파트 내부에 맴도는 '신'은 지나치게 잔인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초반에 들더라고요.

두 번째 자살자인 경비 아저씨인 경우는 월남전 참전 당시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과거를 자랑처럼 미친 듯이 떠벌림으로 벌 받을 인간이 맞지 않나라고 생각이 들지만 역시 첫 번째 자살자와 차이가 있어 괴리감을 들게 합니다. 즉 정미와 경비의 죽음은 두 인물의 개성의 차이로 뭔가 따로 노는 구석이 있었고, 이것이 영화를 보는 동안 찜찜함을 남기게 돼요. 세 번째 자살자인 수경의 증언으로 어느 정도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는 있으나 역시 미심쩍은 부분이 많아지는데요. 처음 소진은 인간에게 이로운 행동들 - 수경의 화상을 낫게 하고 병을 고쳐주는 일을 했지만 왜 갑자기 사람을 저주하고 죽음으로 몰아가게 했는지는 의문이 들게 되거든요. 이때까지만 했어도 소진에게 내린 신이 동물신(학)이라서 그 판단하는 기준이 단순하여 자신을 노엽게 한 사람을 벌하는 게 아닌지 하는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그리고 학발자국이 찍힌 부적이 사람들 사이에 떠돈 이유는 혹시 광신적인 어머니가 딸을 신으로 하는 종교를 만들어 아파트 사람들에게  포교한 것은 아닌가 하는 잘못된 추측까지 했었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사실은 막판 아파트 내 거주하는 무당의 증언으로 모조리 뒤집힙니다. 전 처음엔 이 무당이 소진을 라이벌로 경계하여 희진 주위를 맴도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하지만 진실은 소진의 신력을 자신들의 탐욕에 이용하려 했고, 가장 가련한 피해자를 연기했던 세번째 자살자인 수경은 가장 악랄했으며 경비는 보이는 대로 가장 인간이 비정했고, 정미는 마음이 약한 만큼 누구를 돕지도 못하고 휩쓸리기만 했으며 무당은 자신도 신력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결국 인간의 이기심으로 움직이는 작자였다는 거죠. 어머니(배우 김보연 분)는 교회에 다니느라 딸이 무슨 일을 겪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요. 따지고 보면 이 어머니도 딸에게 벌어지는 일을 방치한 책임이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불행이 연달아 일어나면 초월적인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었던 피해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만 이 어머니도 자기 불행을 구제할 신앙의 증거로 딸을 이용하려 했다는 비난에서 피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렇게 비난하기에는 마지막에 죽은 딸의 시신을 지키며 딸이 부활할 거라고 믿는 모습이 너무 가련해서 차마 인간적으로 욕하기 힘들더군요.

이쯤 되면 관련자들이 충분히 징벌을 받을 만하다라는 생각이 들지만 과연 그것이 징벌인지, 아니면 그들의 죄책감으로 인한 파멸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 이야기를 생각하면 우리나라 신앙 속의 신들은 얼핏 잔인해 보이면서도 악신이라고 할 만한 신은 존재하지 않는데 다른 나라의 신화들과는 달리 독하게 굴면서도 여린 일면을 갖고 있거나 몹쓸 짓을 해도 어벙한 구석이 있어 병을 옮기는 세 마마신조차 악인에게 심한 질병을 내리고 선한 사람에겐 가볍게 병을 앓게 하는 등 선악으로 인간을 판단하는 존재들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아요. 초반 동물신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가혹한 것이 아닌가 추측했던 학조차 민속에서는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신선의 동물이기도 했고요. 막판에 학이 병에 걸린 딸을 살려달라는 형사 태환(배우 류승룡 분)의 부탁을 들어준 이유도 이것이 탐욕과는 정반대 되는 순수한 부성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해서였을 수도 있습니다. 이로써 영화를 보는 내내 제가 계속 헛다리를 짚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그럼 처음부터 언니가 신이 내린 것이었고 사람들이 보이는 것만으로 소진을 신으로 판단하여 파멸한 것이 아닌가 싶었는데 놀이터 씬을 보니 그건 아니었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그 순간 학이 언니에게 옮겨진 것이고 마지막 소진의 유언-언니더러 돌아오라는 말-은 바로 동생 소진의 바람일 수도 있으면서 동시에 신이 부른 것이 아니었나 싶더군요. 놀이터에서 희진의 이가 빠지는 것을 학이 집어가는데 보통 사람들은 꿈속에서 이가 빠지는 것은 으레 가족의 죽음이나 사고를 의미한다고 속설이 있기도 하고요. 물론 영화상에선 꿈이 아니라 현실이었지만. 그리고 영화는 신의 기적을 확인하면서 끝나는데 이 영화 속의 신은 성경이나 기타 신화에 나오는 두려운 존재로써의 신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인간적인 신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영화를 보면서 눈에 들어온 점으로는 작 중 소진이 신력을 발휘할 때마다 배고프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신력의 소모가 커서 그런지도 모르지만 애정결핍에서 온 허기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전부터 유행하던 성격 교정 프로그램에서도 흔하게 나오는 케이스 비슷한데 아이들이 부모에게 관심을 얻지 못할 경우 난폭한 행동을 하거나 특정사물에 집착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거든요. 심리적으로 소외감이나 공허감을 채울 수 있게 음식을 많이 먹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소진의 경우는 이런 부분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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