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판 애니메이션인 『기기괴괴 성형수』는 개봉 자체는 2020년 9월에 했지만 감상은 꽤 시간이 지나서 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최근 영화 자체를 드물게 보게 된 것도 영향을 준 듯해요. 그래도 구독하는 유튜브 영화 리뷰에서도 꽤 호평을 받았던 작품인 데다 원작 『기기괴괴』 에피소드 중에서도 몰입도가 높고 인기가 많아 후속편까지 나왔던 내용이라 더욱 기대가 높아졌습니다. 거기다 연예인 더빙이 아니라 성우 더빙이라 목소리가 붕 뜬다거나 괴리된다거나 하는 느낌이 안 들었다는 점도 장점. 개인적으로 다른 한국 애니메이션 『파닥파닥』이랑 같이 듣기 좋았던 작품이었달까.
애니메이션화되면서 큰 설정은 가지고 오되, 세부적인 부분에서 각색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기기괴괴 성형수』 애니메이션도 원작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자면 가장 중요한 '성형수'의 존재가 원작에선 이미 시판되는 물건인데 반해 애니메이션에선 도시전설처럼 소문이 무성하며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고가에 거래되는 물건이라는 점이 큰 차이점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인 예지가 원작에선 조소과 출신으로 추정되는 백수인데 반해 애니의 예지는 유명 배우의 메이크업 담당이라는 점, 먹방 모델을 대신했다가 인터넷에서 조롱거리가 되었으나 성형 후 연예계에 데뷔하여 나름 성공을 하는 등 서사가 추가되었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작품의 기본 틀, 외모 콤플렉스가 강한 예지가 성형수를 이용해 예뻐졌으나 자신의 실수로 몸이 망가지고 그것을 고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다가 자멸하게 되는 큰 틀은 비슷하게 따라가는 편입니다. 또 캐릭터 비주얼이 원작과는 차이가 있는데,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를 비판하는 작품이긴 합니다만 솔직히 보면서 성형 후 예지 얼굴이 예뻐서 시각적으로 즐거웠다는 점은 어쩔 수 없는 듯... 성형 후 예지에게 채색과 비주얼을 다 몰아준 느낌이라 작중 미인으로 등장하는 다른 캐릭터들이 눈에 안 차는 경향도 있었고요.
또 다른 원작과의 차이점이라면 빌런으로 등장하는 예지의 남자친구(작중 이름 지훈) 같은 경우에도 좀 더 세세한 설정이 들어갔다는 점과 성형수의 부작용이 좀 모호하게 묘사되었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처럼 성형수로 붙은 살이 무너지는 장면은 애니메이션에서는 예지의 착각이었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예지의 환각은 자신이 저지른 살인 때문에 불안에 시달린 건지 아니면 성형수의 부작용인 건지는 조금 알 수 없게 묘사되는 편이에요.
그리고 원작에서 예지의 남자 친구는 성전환 수술을 숨기고 전여자 친구를 살해했다는 정도만 암시되며 자세한 과거는 알 수 없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그 역시 과거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정신이 뒤틀렸다는 암시가 나오는 편입니다. 왜인지 성전환을 택한 이유도 성 지향성의 문제보다는 과거의 콤플렉스와 원하는 여자들을 손에 넣기 위해 더 편리한 방법을 택했다는 느낌이랄까... 금융계 재벌이라는 설정도 추가된 편인데 이 설정 때문에 그가 살인을 여러 번 저지르고도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는 개연성이 추가된 편입니다.
작품에 따라 그 각색이 호불호가 갈리거나 불필요한 경우도 많은데 반해 『기기괴괴 성형수』의 이런 각색은 원작의 주제나 큰 틀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거슬리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원작보다 외모지상주의의 폐해나 원작에서 잘 묘사되지 않는 성형수로 예뻐진 예지가 현실에서 겪을 법한 일들 - 도촬을 당하거나 연예계 데뷔 후 매니저가 성추행을 시도하거나 회장에게 줄을 대면 된다는 투의 성 상납 요구를 받는 등 -이 묘사된 것등 원작에서 놓칠 수 있던 부분을 집어준 것이 인상적이었고요.
하지만 성형수로 원하는 외모를 가졌다고 한들, 예지의 원래 성격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이며 노력으로 뭔가를 하기보단 쉽게 결과물을 얻으려는 성격이기 때문에 큰 실수를 저지르고 자기 욕심으로 주변인(부모)에게 민폐를 끼치고 자멸한다는 점은 차이가 없어요. 성형수를 얻기 위해 부모에게 2억이라는 거액을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장면이나 (원작에서도 나오는) 운동을 해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아닌 성형수로 몸 관리를 하려다가 몸이 녹아버리는 장면에선 진심 노답이라는 소리가 나왔달까.
작중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외모 때문에 조롱거리가 되었던 예지보다는 그런 딸을 감싸주고 구해주려고 했던 그 부모님이라는 생각만. 원작 후속 에피소드에서도 제일 불행한 포지션이기도 하고요. 애니메이션 초반에는 예지가 외모 때문에 조롱을 당하는 장면이 나와 동정의 감정도 들 수 있었다지만 성형 후에 드러나는 그녀의 이기적인 행동 때문에 아무리 외모가 잘났어도 인간적으로 감싸줄 수 없다는 점만 확인 가능했다고 할까요.
다만 이런 이기적이고 충동적인 예지의 캐릭터 성이 후속 에피소드로 가면서 상당한 변화를 겪는데, 여전히 이기적이긴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위해서 스스럼없어지는 경향이 생기게 됩니다. 처음 어리석은 행동으로 파멸하는 희생자가 아니라 과감한 능동성까지 갖춘 빌런에 가깝게 재탄생하는 면모는 독특하기까지 하기 때문에 예지란 캐릭터는 원작 내에서도 깊은 인상을 남기게 되는데요. 가능하다면 후속편도 애니메이션으로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여건 상 어려운 일일 거 같아 아쉬움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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