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비소설 기타

『죽음의 탄생 : 세계의 신화와 설화로 풀어본 죽음의 비밀』 리뷰

by 0I사금 2025. 2. 12.
반응형

부제에 쓰여있는 대로 이 책은 세계의 신화와 설화 속에 등장한 죽음 이야기를 풀어낸 책입니다. 우리나라 책은 아니고 외국인 저자인데 목차를 살펴보니 한 군데에 집중되지 않고 여러 나라의 죽음 신화들이 등장하고 있어 혹 우리나라 신화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빌려왔습니다. 근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신화는 없던 것이 책이 나왔을 시기가 우리나라의 인지도가 적었기 때문인가 싶기도 한데, 좀 더 마이너 한 신화가 실려있는 사례를 본다면 단순히 저자의 조사 부족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책의 내용은 각 나라와 민족에게 전해지는 인간이 죽게 된 이유, 인간이 태초에는 죽음을 거부하거나 영생을 살았는데 순간의 실수나 판단미스, 어리석음 때문에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로 거의 도배되어 있더군요.

 

대표적인 이야기로 영웅 길가메쉬가 죽지 않으려고 여행을 떠났으나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는 신화나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따먹고 낙원에서 쫓겨나 죽을 수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된 이야기들 같은 거예요. 즉, 이 이야기의 전제는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고대에는 영원한 삶을 살았다고 믿어지지만 결국 인간의 잘못으로 죽음이 생겨났다는 옛사람들의 사고관을 살펴보는 거예요. 하지만 그런 옛사람들의 두려움과 다르게 이 책의 저자는 죽음은 인간과 떼어놓을 수 없는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런 신화들을 통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줄이고 그를 준비해야 한다고 역설하지요. 다행스럽게도 여타의 책들과는 다르게 그리스 신화에만 초점을 맞춰서 세계신화라고 하는 우를 범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등장하지 않지만 생각보다 다양한 민족과 나라들이 등장하며 죽음에 관련된 신화를 살펴보는데 이 신화들의 공통점은 앞서 말한 대로 죽음에 대한 인간의 두려움과 이 죽음을 피하기 위한 인간들의 사투와 고난, 그러나 순간의 실수로 죽음이 결국 찾아오고 말았다는 점이 있어요. 이 책에 실린 대개의 죽음 신화는 인간들의 실수, 판단미스, 잘못, 어리석음이 죽음을 불러왔다는 공통점이 대개 존재하지만 특이하게도 인간의 의지완 상관없이 세상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신들이 죽음을 내리거나(북아메리카 신화, 이누이트 신화) 인간들 스스로가 죽음을 선택한 신화도 있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지혜로운 통치자 슬레이만은 혼자 고독하게 영생을 사느니 다른 이들과 같은 죽음을 택하고, 나이지리아 신화에서는 뭇 생물들이 아이를 가지길 원하면서 영생을 포기하지요.

 

말리의 신화에서는 늙음의 고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바에 죽음을 택하는 인간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외에도 죽은 배우자를 찾아 저승으로 갔으나 결국 산자는 저승의 문턱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원래 세계로 돌아와 죽음을 맞이하여 죽은 배우자와 다시 만나는 이야기도 더러 있는데 이건 역시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인간들이 무척 두려워하지만 결국 죽음으로 이별의 고통을 벗어나 안식을 얻게 된다는 사람들의 소망을 발현시킨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모든 생물들이 가지는 공통점일지도 모르나 위와 같은 신화들을 살펴보면 인간들의 한계와 동시에 삶이 과잉되는 것도 죽음 못지않게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옛사람들이 알고 있던 것은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죽음은 알 수 없고 그 때문에 두렵기도 하지만 결국 죽음 또한 인간의 일부이며 인간이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기억한다면 살아가면서 좀 더 값진 시간들을 보내는 것은 아니냐고 이 책이 말해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참고로 책에는 실려 있지 않지만 우리나라에도 죽음과 관련된 신화도 다양한 편인데 우리 신화 속에서 부모를 살릴 약수를 구하기 위해 저승까지 다녀온 뒤 죽은 자들을 인도하는 신이 되는 바리데기 설화나 저승사자의 대표적인 존재 강림차사와 같은 신령스러운 존재들이 엄연히 등장합니다. 또 동방삭이나 수명을 관장하는 사만이처럼 저승사자를 따돌려 오래 사는 인간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하는데 물론 이 둘도 결국 죽음을 피하지 못하며 우리나라 신화에서도 다양한 소재를 찾을 수 있다는 게 눈에 띕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