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비소설 기타

『한국 현대 만화사』 리뷰

by 0I사금 2025. 2. 14.
반응형

표지에 나온 것처럼 이 책은 1945년과 2009년까지의 한국 만화의 역사를 그 시대별 특징을 크게 열거하고 부분 부분 미시사의 관점으로 수록해두고 있습니다. 읽다 보면 미시사 관점으로 분류된 짧은 이야기들이 더 흥미를 끄는 경우가 많은데, 이 부분에서 음지의 역사 즉 해적본, 무판권 만화책의 역사들도 알 수 있거든요. 이 책에선 정식 라이센스 계약으로 들어온 일본 만화 붐(실질적으로 일본만화는 그전에도 무판권으로 많이 들어와서 오래전부터 한국만화에 영향을 끼쳐오고 있었음)과 90년대 한국만화 황금기의 명암과 허실 그리고 2000년대의 만화계 상 역시 잘 고찰하고 있어요.
 
책에 따르면 한국의 근대만화는 최초의 신문인 '한성순보'에서부터 시작해서 신문연재만화로 그 태동이 일어났지만, 강점기 후반에 들어설 무렵부터는 일제의 탄압으로 여러 신문들이 폐간되고 그 여파로 한국만화의 맥도 끊기다시피 했으므로 책에선 한국만화의 연속성을 1945년 해방직후부터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 한국만화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현대사와 맞물려 꽤 암울한 면모가 많이 드러납니다. 으레 모든 문화사가 그러하지만 한국 만화사 역시 당대의 현실과 따로 떨어뜨려놓을 수 없는 점이 있어요.
 
이 책에서 한국만화사에 가장 큰 해악으로 꼬집는 것은 독점출판사의 횡포로 인해 만화계 전반의 질을 떨어뜨린 점과 출판사에 의한 일본만화 베끼기 강요 그리고 언론과 정치에 의한 만화 심의와 탄압 등이 있는데, 보면서 놀란 점은 만화계 사정이 어렵다 어렵다 하지만 이 시기의 만화계를 살펴본다면 우리나라 만화계가 어렵지 않았던 때는 결코 없었다는 점입니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 책에선 90년대 한국만화 황금기의 명암에 대해서도 잘 다루고 있어 볼만합니다. 90년대의 만화황금기가 순식간에 사그라든 데에는 복합적인 문제가 존재하지만 역시 도서대여점의 범람과 만화 출판사의 안일함도 큰 원인이 될 거 같더군요. 그리고 만화에 대한 편견 역시 한몫을 했다고 봐야 하고요.
 
90년대와 다르게 도서대여점은 지금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는데 여기에도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요. 1990년대의 흐름이 비록 2000년대로 이어지지 못했지만 한국만화는 나름 인터넷과 해외 등으로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불법스캔의 문제 역시 빠지지 않고요. 하지만 그 와중에도 웹툰으로서 성공적인 작품이 있는가 하면 학습만화 분야는 질적인 향상을 이루어 활기를 띠고 있다는 점도 새겨봐야 할 듯싶습니다. 알게 모르게 한국사람들 스스로도 학습만화는 낮게 보는 경향이 있는 거 같은데 오랜 만화계의 불황에도 이 분야만큼 건실하다는 것은 눈여겨봐야 할 점이라고 봅니다.
 
결국 만화를 보는 대다수의 독자층은 '아이'들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이 종종 잊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또 우리나라 만화계에 무판권으로든 정식판권으로든 큰 영향을 끼친 만화책으론 『드래곤볼』이 있는데 드래곤볼이 비단 우리나라에만 영향을 준 것만은 아닐 겁니다. 오래전 만화인데도 현재까지 큰 영향을 주고 있는데 책에서도 『드래곤볼』이 여러 번 언급되더군요. 그 외에도 2000년대 만화 흐름에 새롭게 등장한 웹툰들을 고찰하면서 인터넷 '병맛'만화가 언급되는 것이 놀라웠는데 이 병맛의 코드가 한국 부조리개그만화의 맥을 잇는다는 관점도 놀라웠습니다.
 
책에 따르면 한국의 명랑만화는 거의 맥이 끊기고 그 자리를 부조리 개그만화가 대신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 현상에는 현재의 우리나라 사람들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과도 관련이 있지나 않을는지...? 또 『한국 현대 만화사』 이전에 한국만화사를 체계적으로 다룬 책으로 『한국만화 통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제가 이전에 얻은 나름의 정보들도 그 책을 근거로 한 게 많은데, 아쉽게도 『한국만화 통사』는 절판 상태라 도서관에서나 구할 수 있는 거 같더군요.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