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하면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영화 『캐리(Carrie)』는 1976년도 작임에도 평이 제법 괜찮은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떤 의미로 이 영화를 보고 어느 정도 울분이나 공감대를 느낀 사람이 현재에도 많다는 것은 아닐는지... 영화가 1976년도 작인 걸 보면 원작 소설은 그보다 좀 더 오래되었을 텐데 학창 시절의 왕따문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도무지 나아지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듯합니다. 아니, 오히려 그 강도가 더 심해졌을지도 모르지요. 사람 괴롭히고 모멸하는 방법이 악랄한 것은 어느 쪽이든 상상 이상일 테니까요. 스티븐 킹 관련으로 찾아보면 이 소설 『캐리(Carrie)』는 스티븐 킹의 첫 장편소설이고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스티븐 킹의 인생역전이 시작되었다고 봐도 무리가 없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는데요. 재밌는 것은 정작 자신에게 영광을 안겨다 준 『캐리(Carrie)』를 스티븐 킹 본인은 싫어했다는 점이 특이했습니다.
스티븐 킹의 다른 서적(유혹하는 글쓰기)에 이 『캐리(Carrie)』의 원천에 관한 내용이 실려있는데, 주인공 캐리의 모델은 작가 본인이 학생 시절 알았던 왕따 받던 여자급우들의 모습이라고 하더군요. 현실이 가끔 소설보다 끔찍한 것은 소설의 끔찍함을 뛰어넘는 무지막지한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인데 그 책에 언급된 여성학우들의 말로 또한 캐리 못지않게 끔찍하더랬죠. 그런 현실 때문인지 스티븐 킹의 첫 장편소설 『캐리(Carrie)』는 요약하면 절망적입니다. 캐리처럼 핍박받는 아이들이 주인공인 스티븐 킹의 다른 소설에 반해 이 소설은 주인공을 벼랑으로 몰고 가다 못해 아예 폭발시켜 버리거든요. 이 소설의 흐름과 유사한 작품은 아마 『애완동물 공동묘지』가 아닐런가 싶네요. 이 소설도 『캐리(Carrie)』 못지않게 찜찜한 결말로 마무리되거든요. 이건 소설 『캐리(Carrie)』의 주인공 캐리나『애완동물 공동묘지』의 주인공 루이스가 스스로 괴물이 되어버리기 때문은 아닌가 싶기도 해요.
소설 『캐리(Carrie)』는 멀쩡하게 자랄 수 있는 한 여자아이가 괴물이 되어가는 과정을 잘 묘사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막판에 캐리가 몰고온 어마어마한 파괴에도 불구하고 연민이 갈 수밖에 없는 것이 이 애를 둘러싼 환경이 정말 시궁창이기 때문이에요. 광신도에다 성적으로 강박적인 엄마의 학대 속에서 큰 데다 학교에선 급우들에게 멸시받고 괴롭힘 당하면서도 비뚤어지기보단 어떻게든 현실을 타개하려고 노력하는 아이라는 것이 소설에서 잘 드러나거든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이 무조건 선량했던 것은 아니지만 아예 없던 것도 아니고요. 여기서 조력자들이 무조건 선량하다고 볼 수 없는 것은 처음 캐리를 도와주려 했던 사람들이 캐리에게 처음 가졌던 감정이 불쾌나 혐오 비슷하다는 데서 그렇고 캐리를 도와주려고 했던 수지 스넬은 남자친구 빌려주기라는 기괴한 방법을 썼다는 거예요. 다른 것도 아니고 자기 애인을 남에게 빌려준다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고방식이라고 해야 하나...
캐리가 죽기전에 수지 스넬에게 거의 저주와 원망 비슷하게 감정을 터뜨리는데 그것도 그럴만한 것이 어설픈 선의가 비극을 부르는 전개이기도 하거든요.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이런 조력자들의 모습은 인간이 무조건 선이나 악으로 규정지을 수 없이 복잡하단 걸 알려준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문제는 캐리 인생이 꼬인 근본 원인인 캐리의 엄마가 그대로라는 것이 1차적 문제였고 가해자인 하겐슨 패거리의 만행을 제대로 저지 못한 것은 2차적 문제였다는 것. 캐리가 초능력으로 졸업식 파티장과 마을을 날려버리는 것은 오히려 현실적으로 극히 드문 예외적인 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만약 캐리에게 초능력이 없었다면 캐리 한 사람의 불행만으로 결말지어졌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이 작품이 유명해질 리도 없었을 테니까요. 어떤 의미로는 일종의 대리만족이라고 해야 할까요.
캐리가 졸업식 파티에서 돼지 피를 뒤집어쓰는 수모를 당한 끝에 그동안 억눌렸던 감정이 초능력으로 폭발하면서 자신을 괴롭힌 급우들을 포함하여 모든 걸 날려버리는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을 거라고 봅니다. 현실에 일어날 리 없는 보복이 초능력이라는 존재할 수 없는 방법으로 어쩌면 통쾌하다 싶을 정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작품에 몰입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물론 캐리의 보복은 그 끝이 실로 좋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죽음 뒤에도 사람들의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요. 소설 상에선 사건 이후 폐허가 된 마을에 캐리의 영혼더러 지옥에 떨어지라는 낙서글이 등장하지요. 따지고 보면 캐리랑 관계없이 말려들어 피해 입은 사람들 입장에선 그런 저주가 나올 만도. 하여간 통쾌함 뒤에 오는 쓸쓸함 때문에 『캐리(Carrie)』는 다 읽고 나서도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들게 만듭니다.
그리고 소설을 보면 특이하게 구성이 캐리-주인공의 시점으로 사건을 서술하는 게 아니라 캐리를 목격한 사람들의 증언과 훗날 수지 스넬의 자서전 회고록을 통해서 사건이 액자식으로 진행되는데요.결과적으로 캐리가 정작 자기 목소리를 낸 적은 없다는 것은 또 다른 슬픈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폭파사건 당시 캐리를 목격한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자신은 캐리를 본 적도 없음에도 불타는 마을을 미친 듯이 배회하는 아이를 보고 그것이 캐리였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캐리의 초능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구절이 기억에 남는 이유는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 얼마나 관심을 필요로 하는지가 또렷하게 보여줬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습니다.
어쩌면 캐리의 파괴행위는 오랫동안 애정을 필요로 한 아이의 극단적인 행동이었을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수지 스넬의 마지막 회상을 보면, 자신의 어설픔이나 하겐슨의 행동에 대해 일종의 변명이라고 해야 할지 자신들은 어린아이였다고 고백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어렸기 때문에 생각이 짧았었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이건 흔한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뒤집는 건 아닌가 합니다. 어린아이라고 해서 무조건 순수한 것도 아니요, 때 묻지 않은 것은 더더욱 아니라는 건데 스티븐 킹 소설에서 가끔 악랄하게 구는 미성숙한 인물들이 종종 등장하며 어린애도 인간이라 추한 본성이 있다는 걸 외면하는 작품들이 심심찮게 보이는 걸 보면 되려 스티븐 킹 소설이 더 와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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