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소설과 만화

『베이커가의 살인』 리뷰

by 0I사금 2025. 2. 27.
반응형

『셜록 홈즈』 시리즈를 리뷰할 때 종종 『베이커가의 살인』을 언급한 적이 있었는데, 정확하게 이 『베이커가의 살인』은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이 아니라, 후대의 작가들이 '셜록 홈즈'를 주인공으로 새로 쓴 단편집 모음입니다. 후기 역자의 글에 따르면 이런 류의 작품을 '패스티슈'라고 하는데, 패스티슈란 정전(canon : 문학의 기성체제에서 묵시적인 합의를 통해 위대하다고 인정한 작품과 작가를 가리키는 문예비평 용어)에 나오는 인물들을 등장시켜 새로운 작품을 독자에게 제공하는 것을 이른다고 합니다. 아마 이런 의미라면 현재 드라마나 만화에서 고전의 인물들을 따와서 새로운 스토리를 써가는 것도 해당되는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하여튼 이미 읽은 것이지만 제대로 리뷰를 써보자 해서 빌려왔습니다. 근데 예전에 빌려왔을 때는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이 아니라 후대 작가의 작품이라 그런지 아서 코난 도일의 홈즈 시리즈와는 분위기가 다른 여타의 작품들이 좀 있어서 집중을 제대로 못한 나머지 내용이 기억날락 말락 하는 작품들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처음 몰입이 방해되는 것을 꾹 참고 읽었더니 재미가 새로운 작품들도 여럿 있더군요. 이 작품집의 앞과 뒤에 코난 도일의 글이나 첨가된 여러 가지의 글이 있지만 일단은 순서대로 작품만 리뷰해 봅니다. 참고로 이 작품집은 홈즈라고 표기한 게 아니라 홈스라고 표기되어 있더군요. 어차피 둘 다 통용되는 것이겠지만 홈즈 쪽이 더 입에 붙는 면이 있어요.


첫 번째 단편 「케이프타운에서 온 남자」는 스튜어트 M 카밍스키란 작가의 단편입니다. 아무래도 아서 코난 도일의 본편 시리즈와 분위기가 가장 유사한 느낌을 받았는데 남녀의 치정극 같으면서 반전이 들어간 것도 그렇고요. 범죄자들이 자신이 트릭을 완성시키려 홈즈를 끌어들이는 경우가 본 시리즈에도 있지 않았나 싶었는데 이번 단편이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홈즈가 워낙 명탐정이라서 범인들을 역으로 몰아붙이는 게 당연지사. 그리고 남녀의 치정극이 아니라 부녀가 이혼한 부부인 척 짜고 범죄를 계획한 것이 이 소설의 반전이었어요. 


두 번째 「주 경계의 민들레 사건」은 하워드 엥겔이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소설의 특징은 홈즈의 주특기인 '연기력'을 최대한 활용하여 범인의 자백을 이끌어내는데요. 아내 독살 누명을 쓴 남자의 사형집행을 저지하기 위해 홈즈가 사건에 뛰어드는데, 이번 단편에선 범인의 행동과 심리가 부각되는 느낌이었어요. 결론은 한 여자의 비뚤어진 내조가 범행 동기. 남편의 경쟁자를 파멸시키고 남편을 성공시키려다 결국 홈즈에 의해 범행이 탄로 나는 데, 왠지 이 단편을 읽으면 예전에 심리학 책에서 읽은, 여자가 남자에게 내조하는 것은 남자를 사랑해서라기보단 남자를 자신의 대리로 여겨 그 성공과 명예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라는 글이 기억나는데 이게 극단으로 치달으면 이 소설처럼 되지 않나 싶습니다.


특이한 것은 제 기억 속의 홈즈 본 작품들 중엔 여자가 악의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경우는 얼마 없었는데- 대개 사고이거나 정신착란 증상 비슷한 이유- 이 단편집에선 악한 여성 살인마가 등장하는 경우도 있더군요. 나중에 언급할 「놀라운 벌레」도 그렇고요.


세 번째 단편 「세넨 코브의 사이렌」은 피터 트레메인이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단편은 배의 물품을 약탈하여 빚을 해결하려고 한 비뚤어진 천재 발명가의 범죄였어요. 공학도로도 박식한 홈즈의 모습도 볼 수 있고요. 왠지 19세기 과학의 발전과 사람들의 미신이 섞인 그런 배경을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현재라고 해서 이 시대의 사람들과 크게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네요. 아마 작가의 의도도 그렇지 않나 싶기도 하고요.


네 번째 단편 「비 묻지 않은 양말」은 앤 페리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 단편집에서 이례적으로 모리어티의 존재가 부각됩니다. 주식조작을 위해 자산가의 아이를 납치하고 돌려주는 방법을 계속함으로써 피해자를 협박하는데, 평범한 납치가 아니라 최면술을 이용했다는 것이 특이하더군요. 홈즈가 사건을 해결하긴 합니다만 모리어티는 잡을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다만 피해자들의 불안을 덜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지요.


다섯 번째 단편 「익명 작가」는 에드워드 D 호크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왓슨이 투고하는 잡지 편집자의 부탁으로 한 소설가의 정체를 추적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 잡지에 투고하는 인물 중에 도일의 이름도 언급된다는 것. 소설가는 동생을 먹여 살리는 젊은 여성이었고,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꺼려했지만 결국 이름을 밝히고 소설을 출판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살인사건. 후대의 작가들이 쓰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당시 영국 사회가 미혼모들에게 불리한 사회였음을 알려주는 소설인 듯해요. 어쩌면 지금도 다르지 않을지도 모르고요.


여섯 번째 단편 「흡혈귀에 물린 자국」은 빌 크라이더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홈즈의 본편 시리즈에서도 흡혈귀와 관련된 단편이 하나 있는데 그 이야기는 이복동생을 미워한 형의 소행이었고 본의 아니게 어머니가 흡혈귀로 몰린 사건이었지요. 아마 이 단편은 그 소설에서 영감을 받지 않나 싶었는데, 철두철미하게 미신을 믿지 않는 홈즈의 태도가 이 단편에서도 잘 살아납니다. 결과는 미모 출중한 유부녀의 관심을 끌고 남편과 이간질시키려던 가정교사의 소행이며 범행도구는 거머리였지요. 재미난 것은 사건을 의뢰한 인물의 이름이 에이브러햄 스토커였는데 이 인물이 소설 내에서 이 사건에 영감을 받아 흡혈귀를 다룬 소설을 쓰겠다는 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아마 브램 스토커를 모델로 한 인물이 아닌가 싶네요.


일곱 번째 단편 「홈스를 태운 마차」는 길리언 린스콧이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작품집 내에서 가장 특이한 분위기를 가진 소설이에요. 왓슨의 시점이 아니라 제삼자인 우연히 사건에 말린 마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처음 읽었을 때 제일 지루하다고 여긴 이 소설이 작품집에서 제일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부가 내기를 위해 몰래 훔쳐낸 개를 마차에 숨겨놓고 그 마차에 홈즈가 탑니다. 그런데 그 우연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홈즈는 왕실 테러범을 잡지요. 처음 생뚱맞은 인물이 튀어나오는 데다 분위기가 여타의 작품과 달라 몰입이 어려운 이 작품이 이 작품집에서 제일 눈에 띄는 소설 같습니다.


여덟 번째 단편 「아라비아 기사의 모험」은 로렌 D 에슬먼이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집트 투탕카멘 왕의 유적을 조사하던 인물이 보관하던 서류를 몽땅 도난당합니다. 범인은 그가 고용한 방탕한 청년으로 행실 때문에 집에서 쫓겨나자 의뢰인이 호의로 받아준 건데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격이었죠. 서류 자체는 소실되었지만 범인이 사진으로 찍어둔 덕택에 다행히 사건은 해결됩니다. 근데 여기서 쓰인 카메라의 이름이 '코닥'인데 설마 요새 쓰이는 그 코닥이려나요?


아홉 번째 단편 「체셔 치즈 사건」은 존 L 그린이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이것도 첫 번째 단편처럼 살인마들이 직접 홈즈를 찾아온 격인데, 첫 번째 단편이 홈즈를 나름 이용해보려고 한 것이라면 이것은 죽임을 당한 피해자가 사건을 증명하기 위해 살인자를 그렇게 인도한 격이었죠. 그리고 그가 남긴 수수께끼의 메시지를 파악함으로써 사건이 밝혀집니다. 홈즈 본편 시리즈에서도 수수께끼의 글을 해독하는 작품이 종종 있었는데 이 작품인 경우는 영어를 온전히 알면 더 이해하기 쉽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열 번째 단편 「암흑의 황금」은 L. B 그린우드란 작가의 작품입니다. 홈즈 소설을 리뷰하면서 본의 아니게 홈즈 시리즈가 제국주의적 관점을 극복하지 못했다고 멋대로 평가한 적도 있었는데 실제로 홈즈 시리즈가 그런 경향이 보이는 작품이 더러 있는 것은 맞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네 개의 서명」인데 그리고 홈즈란 주인공의 성격 탓에 여성이 약간 경시되기도 하는데 아무래도 이 단편은 홈즈의 두 가지 단점을 동시에 극복하려는 소설 같습니다. 실존하는 피그미 부족이 등장하는데 이 피그미 부족과 그들을 돕는 남자를 돕기 위해 홈즈가 나서지요. 사건의 해결은 홈즈의 추리보단 피그미족과 그들을 도우려는 부부의 힘으로 마무리되지요. 재미난 것은 이 단편에 양념으로 첨가된 듯한 왓슨의 곤경이랄까요?


열한 번째 단편 「놀라운 벌레」는 캐럴라인 휘트라는 작가의 작품입니다. 두 번째 작품과 비슷하게 독살이 등장하고 범인이 여성이라는 점이 특이한데, 왠지 이 마지막 단편에 등장하는 홈즈의 성격에 다른 단편들보다 더 나빠 보이는 게 눈에 띕니다. 특히 여자를 싫어하는 점이 두드러지더군요. 이번 사건은 홈즈 본 시리즈에도 많이 등장한 유산 상속 문제였는데, 사건의 열쇠가 시체를 먹는 구더기에서 발견되었다는 게 특이했습니다. 구더기를 해부하고 실험하여 독살이라는 것을 밝혀내는데 왠지 이걸 보니 예전에 본 미드 『CSI』 시리즈가 생각나더군요. 초반에 언급된 밀랍인형이란 소재도 사건에 이용되었고요. 마지막은 홈즈가 왓슨에게 자신의 우정을 보여주면서 훈훈히 마무리됩니다.


뭔가 홈즈 본편 시리즈와는 다른 분위기라 낯선 느낌도 나지만 역시 홈즈란 인물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매력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라고 해도 반감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새로운 재미가 더해지는 경우도 있고요. 물론 이것도 작가의 역량이 따라야 하며 캐릭터가 가지는 본디의 매력이 반감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따르겠지만요. 이 작품집엔 소설 외에도 아서 코난 도일이 밝히는 『셜록 홈즈』 이야기, 셜록 홈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글, 아서 코난 도일의 소설에서 활용한 단어들을 연구한 글, 작품집에 실린 작가들의 짤막한 소개글들이 있는데 이것은 시간 날 때 읽어보면 재밌을 듯합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