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홍당무』는 어릴 적 금성출판사의 문고본으로 한번 접한 적이 있는 소설입니다. 내용의 구성이나 분량을 비교해 봤을 때 금성출판사 번역본이나 큰 차이가 없을 책이지만 왜 시간이 지나서 굳이 다시 찾아봤느냐 한다면 이 소설을 재밌게 읽은 기억이 있고 추억도 되새길 겸이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워낙 유명한 책이라 출판사별로 다양한 책이 나와있는데 제가 읽은 것은 동쪽나라 출판의 주니어 퍼펙트 세계명작 중 하나로 조금 너덜너덜한 상태의 책이었습니다. 참고로 『홍당무』라는 제목은 소설 상의 등장하는 주인공(소설가 쥘 르나르의 분신)의 별칭이며 소설 상에선 한 번도 주인공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소설은 작가인 쥘 르나르의 어린 시절 자전 소설이라고 봐도 무방하겠지만 유쾌하고 어수룩한 개구쟁이 꼬마의 일화 속에는 상당히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들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어요. 나이 먹고 다시 읽은 지금에서야 어린 시절 이 소설을 읽으며 느꼈던 묘한 느낌의 실체가 무엇인지 확실해진 느낌입니다.
이 소설은 제가 예전에 리뷰한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못지않게 소설 상에 아동학대의 그림자가 걸쳐 있어요. 하지만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와는 달리 『홍당무』에서 보이는 아동학대는 직접적인 것이 아닌 정신적인 방치에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소설 상의 등장하는 제삼자들이 파악하기 어렵게 되어 있더군요. 소설을 보시면 알겠지만 홍당무의 어머니 르픽부인이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로 그려져 있는데, 작가의 자전소설이라는 점과 쥘 르나르가 평생 어머니와 사이가 나빴다는 점을 보면 이 모자지간의 응어리가 의외로 상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어머니 르픽부인에 비하면 아버지 르픽 씨는 어느 정도 호의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긴 하나, 이 아버지도 학대받는 막내아들(홍당무)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데서 본의 아니게 학대에 가담한 셈이지요.
거기에다 홍당무가 정신적 학대를 받게 된 근원에는 집안의 틀어진 분위기에 있다는 것이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데, 소설 상에서 홍당무가 엄마를 사랑하지 않는단 말에 아버지 르픽 씨 역시 '나라고 네 엄마를 사랑하는 줄 아느냐'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 애정 없는 부부 사이가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내용에 들어가기 앞서 짤막한 페이지에 실려있는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쥘 르나르의 아버지는 권총 자살을, 어머니는 우물에 투신하여 자살을 선택했다고 나오는데 이것만 봐도 소설 상에 은근하게 드러나는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가 실제와도 다르지 않았단 것을 판단할 수 있습니다. 문제의 근원이 홍당무에게 있는 것은 아님에도 가장 어린 아들이 덤터기 쓴 것은 어처구니없는 일이지만요. 하지만 모든 사람이 홍당무의 이런 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라서 어느 정도 안목을 갖춘 이들은 이 집안의 분위기가 비정상적임을 눈치채는데요.
이것은 내용 중반 홍당무의 머릿니 때문에 일어난 소동에 등장하는 마리 나네트 할머니의 "너희 식구들이 너를 너무 괴롭히는 거 같다"는 말이나 홍당무가 대부라고 따르는 아저씨와의 대화에서 어느 정도 드러나지요. 소설 『홍당무』의 내용은 대개 유쾌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지만 앞서 언급한 집안 분위기와 아동학대의 그림자를 벗어버리기는 쉽지 않은데, 이런 집안의 영향력이 아이에게 안 좋은 방향으로 표출되는 이야기도 더러 있습니다. 학교 기숙사에서 홍당무가 이쁜 외모에 붉은 뺨을 가져 선생님에게 귀염 받는 동급생 소년을 시기한 나머지 그 소년과 교사의 관계를 수상쩍은 사이라고 일러바쳐 교사를 해임시키고 그 교사가 떠나가던 날 유리창을 박살 낸 뒤 손에서 난 피를 얼굴에 문지르며 자신의 뺨도 빨갛다고 소리 지르는 이야기는 홍당무가 얼마나 애정이 고팠는지를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사건입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는 다른 내용보다 더 분위기가 심각하고 분량도 긴 편이구요.
또 바깥에서 놀다가 두더지를 발견하여 두더지를 이유없이 집어던져 죽이는 것, 혹은 가재를 잡는 미끼로 쓰겠다고 고양이를 죽이고 죄책감에 시달려 앓아눕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동물학대 행위는 아이 특유의 잔혹함도 있겠지만 아이의 스트레스가 더 약한 동물을 향해 터진 셈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근데 소설이 나온 시기가 1894년, 소설 속의 배경은 대충 계산해 봐도 그보다 삼십 년 정도 전인데 그 시대는 아동심리는커녕 어른의 심리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지 못했던 시대인지라 뭐... 오래간만에 추억을 새기는 소설을 재탕한 것이지만, 미묘하게도 소설 속의 어둔 부분에 대해서만 쓰게 되었습니다. 『홍당무』의 근본적인 줄기는 홍당무와 르픽부인 모자간 갈등은 맞지만, 그래도 놀기 좋아하고 순진하며 상상력이 뛰어난 어린아이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다만 놀라운 것은 이런 어두운 유년시절의 이야기를 이렇게 유쾌한 형식으로 그려나간 쥘 르나르란 작가의 능력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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