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구석에 만화책이 하나 꽂혀 있길래 대충 훑어봤더니, 여자아이가 임신 어쩌고 하는 내용이 있어서 성교육 만화책이 잘못 들어온 건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앞표지를 찾아보니 저자의 이름에 '오히라 미쓰요'라는 이름이 있더군요. 오히라 미쓰요의 자서전은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모르지만 아마 친구의 추천으로 읽은 기억이 나요. 『친구야, 너라면 어떻게 할래?』라는 제목은 언뜻 보면 평범해 보이는 제목이지만 실상은 이 책의 주제를 담고 있는 글입니다. 오히라 미쓰요 씨는 이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처럼 꽤나 암울한 학창 시절을 보내신 분인데 자서전 『그러니까 당신도 살아』에서 그 내용들을 확인할 수 있지요. 중학교 시절 심한 왕따와 집단 따돌림을 겪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그것 때문에 사람들과 더 관계가 틀어져 탈선한 뒤 방황하였으나 주위 분들의 도움으로 맘을 바로 잡고 지금은 청소년 담당 변호사로 일하시고 있다고요.
이렇게 간략하게 글로만 적었지만 책 속에 드러나는 아이들의 행위는 잔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요. 피해자의 물건을 훔치고, 피해자에게 쓰레기를 부어버리거나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는 등 최근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더라도 왕따 문제는 그냥 어린애들 싸움이라고 넘어가선 안 되는 수준이라는 걸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다 책을 보면서 가장 분통이 터지는 것은 왕따의 근본적인 주동자를 처벌하기보단 오히려 피해자의 입막음에 치중하는 학교의 행위 때문인데, 이런 미숙한 학교의 처리방법은 오히려 왕따를 더 심하게 만들어 결국 저자가 자살시도까지 하게끔 만들지요.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일들이 -저자의 현 나잇대를 생각한다면 더 전의 일일 것이니- 외국이나 우리나라나 왕따 문제에 한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방도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는 겁니다.
하여간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저자인 오히라 미쓰요씨는 책에서 여섯 가지 사례- 가출, 절도, 각성제복용, 시너 흡입, 원조교제, 날치기 등의 문제를 일으킨 청소년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해결책을 찾아주는데요. 아무래도 실화를 바탕으로 한 모양인지 사건이 어느 정도 선에서 해결된 뒤라도 넘어야 할 문제점과 장애물이 많이 남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 더 중요시할 점은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말하길, 오히라 미쓰요 씨는 청소년사건을 담당하는 변호사이긴 하나, 흉악사건과 관련된 것은 맡지 않는다고 하는데 미성년자라는 이유로 모든 일이 용서받을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실제 책에 언급된 사례 중, 부모님과의 불화 때문에 뛰쳐나온 남학생이 스트레스 해소 삼아 날치기를 시도했다가 여성에게 상해를 입힌 사건에 나온 '부모에게 심한 소리를 듣는다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는 말에서 확인이 가능하지요.
책에서 언급되는 아이들 사례는 어느 정도 갱생이 가능한 아이들이거나 어떤 사건(학대, 강간)의 피해자가 된 아이들인 경우인데, 이런 아이들인 경우는 주위에서 제대로 잡아준다면 제대로 살아갈 수 있음을 알려주는 거 같습니다. 저자의 이런 사고방식은 자신도 왕따가 문제 되어 탈선했으나 그것 때문에 결구 주위사람들(부모님)에게 상처를 입힌 것에 대한 후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아이들이 탈선하는 데에는 어른들의 폭력이나 방치도 문제지만, 또래 청소년들의 문제도 없지 않다는 점이지요.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하나 더 느낀 것은 일본의 청소년 범죄나 탈선 문제가 심각하게 여겨진 것이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인데, 이와 관련해서 비슷한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을 쓰신 분은 원래 교사로, 위의 저자 오히라 미쓰요씨처럼 청소년 탈선을 막기 위해 애쓰시는 분인데 이분이 겪은 사례의 일부를 인터넷서 접한 뒤 책을 두 권다 세트로 주문했었는데 일본 곳곳에서 벌어지는 숨은 문제점들이 어린애들을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고 할까요? 이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례는 아버지에게 수시로 성폭력을 당한 여학생의 이야기였는데, 의존증을 보이는 여학생의 어머니는 딸에게 참고 견디라고 강요하고, 급우들은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같이 졸업사진을 찍는 것도 거부하며 이지메하더군요. 결국 이 여학생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맙니다. 읽으면서 가장 울컥한 감정이 들던 사례였는데 실은 이런 일이 특수하게 벌어지는 일도 아니라는 것 때문에 더 끔찍한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선진국이라고 말들 하지만 일본이란 나라도 사회적 약자를 보듬을 수 없다는 것을 명백하게 드러내준다고 할까요. 정부가 아니라 이렇게 개인적으로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은 그 반증이라고 봐야 될 듯.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자면 저런 청소년들의 문제가 비단 일본의 것은 아니라는 것.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례들을 흔흔찮게 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겁니다. 이슈가 되었던 학대를 견디다 못해 결국 모친을 살해하고 만 남학생의 사례나 잇따른 학생들의 자살 사건만 보더라도 확인이 가능한데 이런 사건들이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이번 한 번으로도 그칠 거 같지도 않으니 암울한 느낌이 들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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