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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사라진 직업의 역사』 리뷰

by 0I사금 2025. 3.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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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직업의 역사』는 그 직업의 변천사는 시대적으로 살펴봤을 때 대개 구한말에서 일제강점기 사이에 걸쳐있습니다. 일단 기록이 그 시대에 좀 많기 때문인 거 같고, 그 시대가 가장 역사적으로 큰 변화가 컸던 시기라 민중의 생활 양상이 크게 영향을 받았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책에서 언급하는 사라진 직업은 총 9가지로 전화교환수, 변사, 기생, 전기수, 유모, 인력거꾼, 여차장, 물장수, 약장수인데 이들은 거의 복고풍 드라마나 일제강점기를 다룬 사극이 아니면 등장하지도 않는 직업들이라는 것에 동감하실 겁니다. 읽고 있는 저만 하더라도 이 직업들을 접하면서 떠올리는 이미지가 거의 복고풍 드라마의 그것들인데요. 게 중에는 유모나 기생 같은 경우는 역사가 깊기도 하겠지만은 그 마지막은 거의 일제강점기에 사그라진 면모가 있거든요.

책에서 소개해주는 직업의 종류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 대개 사회의 하층민들이 전전하던 직업이라는 것과 당시 시대에서도 그다지 대접을 받지 못하던 직업이었다는 겁니다. 특히 기생이나 전화교환수, 여차장 같은 경우는 여성들이 진출할 수 있는 한정적인 직업임에도 굉장히 천대를 받았다는 건데, 기생을 제외한 여성들의 직업은 당시의 개화분위기와 여성의 사회진출 의식과 맞물려 생겨난 것들임에도 그 시급이 적었을 뿐만 아니라 직업 그 자체가 아니라 성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로 여겨져 성희롱이나 성폭력 같은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었다는 겁니다. 이런 시선은 70년대까지 이어져 공장에 다니는 여공들이 비슷하게 천대를 받았다는 사실도 넌지시 이야기해 주는데 사람들의 의식이 그다지 쉽게 변하지 않았음을 시사하는 거지요.

종종 책을 읽다 보면 저자분의 시선에 동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저런 여성들이 마냥 천대만 받은 것은 아니라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 중 가족을 위해서 혹은 나라를 위해서 고생한다는 미담 류의 이야기를 기사화하는 경우도 있었다고도 하는데 실은 이 미담이야말로 그거 하나로만 구조적인 문제를 덮으려는 속셈일 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 기준 '천한' 직업을 가진 여성들도 이렇게 하는데 '천하지 않은' 인간들은 무엇을 하느냐고 훈계하려는 의도로, 그 기저에는 결국 저 여성들을 같은 인간이 아닌 가장 '천한 인간'으로 구분 짓고 있었다는 겁니다. 이것은 실은 매우 중요한 이야기인데 단순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에도 비슷한 일이 버젓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의 성공이나 영웅적인 일화를 신화화하면서, 다른 평범한 사람들 혹은 기회가 막힌 사람들에게 구조나 사회를 탓하지 말고 좀 더 노력하라는 둥, 너희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것은 너희가 노력을 하지 않고 게으른 탓이라는 둥 속이 뻔히 보이는 이야기를 하는 책이나 기사가 지금도 넘쳐난다는 거예요. 그리고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은 직업의 변천사를 다룬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당시 지식인들의 한계입니다. 당시의 지식인들은 대다수 조선인들을 계몽시켜야 할 선구자적인 위치에 놓여있다고 스스로 믿고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온 조선인들의 생활을 무조건 '미개한 것'으로 여기고 바꾸라고 거의 강조하다시피 하는데, 이런 그들의 시선은 책에서 언급되는 당시 외국인들의 시선과 전혀 다를 바 없습니다. 

즉 당시의 지식인들은 개화라는 사상에 치중하여 주체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한 그들은 당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하층민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구조를 어떻게 변화시키기보단, 눈에 보이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어 하층민들에게 오로지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고요. 예전에 '지크프리트 겐테'라는 독일인 기자의 한국방문기인 『조선, 1901』이 오히려 이 당시 지식인들보다 더 중립적인 관점으로 쓰인 책으로 보일 정도니 할 말이 없어요. 하지만 책의 흥미로운 내용들 덕에 책 자체는 암울한 시대를 담고 있어도 암울한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참고로 이 책에서 아쉬운 점은 내용이 아니라 외부적인 면인데 인쇄된 페이지를 보면 책의 양 옆의 여백이 상당히 좁아 글자가 조밀하게 박혀있는 느낌이라 읽기에는 굉장히 피로한데, 페이지를 좀 여유롭게 했으면 읽기에 더 편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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