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겨울왕국』이 개봉했을 당시에는 디즈니 작품들에서 변화가 많이 보인다는 평가가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여성상의 모습이나 여성 캐릭터의 대우가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제가 인상적으로 본 다른 작품 『공주와 개구리』 때에도 남녀 캐릭터의 변화라든가 최초의 흑인 공주라던가, 내용 상에서 파격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등 인상적인 변화가 많았거든요. 이후 보게 된 『겨울왕국』은 흔히 떠올리는 기존의 디즈니 작품에서 여러모로 나아간, 혹은 변화를 시도하여 성공한 작품이란 생각이 드는데 일단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엘사와 안나 두 자매 공주입니다.
일단 남자 주인공이라고 부를 수 있는 캐릭터(크리스토프)가 있고 그 역시 나름 활약을 하긴 합니다만 어디까지나 이야기는 두 자매의 성장에 초점에 맞추어졌다는 느낌입니다. 혹여나 이 작품도 막판에 남녀의 키스로 다 해결되나 싶더니 내 묵은 상상력을 비웃듯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두 소녀의 자매애였어요. 작품 내내 사랑타령을 해댔는데 넓은 의미에서 보면 가족애도 사랑에 해당되니까요. 근데 결말이 이러니까 왠지 다른 의미로 속 시원하기까지 했어요. 아, 엘사랑 안나가 키스했다는 얘긴 아니에요.
어디까지니 이번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것은 엘사와 안나이며 내용의 특이점으로 주인공들을 위협하는 세력이 생각보다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도 이 작품의 특이점입니다. 위즐튼 공작은 순전 개그캐릭터에 가깝고 후반에 진면목을 드러낸 한스는 그다지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막판에 엘사가 스스로의 굴레를 벗어 넘기는 계기를 제공해 버리니까요. 한스의 캐릭터는 어느 정도 반전이라고도 할 수 있었는데 어째 초반에 안나와 급하게 사랑에 빠지는 게 좀 이상하긴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캐릭터의 변화도 기존 디즈니의 급격한 멜로라인 진행을 비웃고 그것을 탈피한 것처럼 보여서 재밌게 느껴졌습니다.
두 주인공 캐릭터도 매력적인데 동생인 안나는 기존의 공주님 캐릭터들과는 달리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언니를 찾기 위해 거친 길도 마다않는 등 매우 씩씩한 모습을 보입니다. 언니의 힘을 두려워한 부모가 성의 문을 닫아 덩달아 갇혀 살면서 세상물정 모르는 철부지 공주님으로 자라나 했더니 웬걸 적응력도 빠르고 간간히 개그씬을 보여주며 망가지는 등 매력적인 모습으로 극을 활보하는데요. 안나가 워낙 씩씩하다 보니 남주인공 쪽인 크리스토프가 좀 묻히는 감도 있지만 크리스토퍼도 간간히 시크한 모습을 보여주며 안나를 돕는 등 나름 매력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외모는 내 취향이 아니었지만.
https://youtu.be/moSFlvxnbgk? si=707 IGZnEo9 qQw4 wF
반면 언니인 엘사는 주위를 얼어붙게 하고 눈을 불러오는 힘 때문에 부모에게 우려를 샀고, 자신의 힘으로 동생을 다치게 한 것 때문에 트라우마가 되어 자신을 억누르고 사는 게 일상이 되어 굉장히 조용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성격이 되었음에도 저 위에 "Let It Go" 씬에서 보여준 강렬함이라던가 아렌델 왕국이 얼어붙자 자신을 잡으러 온 일당을 상대로 액션 신을 보이는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서 제 눈을 홀리게 만들었습니다. 캐릭터의 모티브가 안데르센 동화인 『눈의 여왕』의 여왕으로 추측했는데 자료를 찾아보니 맞더라고요. 직접 읽어 본 동화 속 눈의 여왕은 악역보다는 중립적인 인물이었고요.
거기다 평소 부모의 말에 복종하여 자신의 기질을 억눌러야 했던 모습은 어떤 의미로 주위의 압박에 시달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동질감을 불러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부모의 뜻을 따르기 위해 자신의 생각을 묵살해야 하거나 본래 타고난 기질도 나쁘다는 평가를 받아 억지로 착한 아이처럼 굴어야 했던 사람들은 의외로 많을 테니까요. 엘사의 캐릭터는 그런 사람들을 떠올림과 동시에 그가 도망치면서 자신의 힘을 각성한 것처럼 터뜨리는 장면은 어떤 의미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엘사처럼 위태로운 캐릭터도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할까요.
또 다른 매력적인 캐릭터로는 눈사람 올라프였는데 엘사가 만든 눈사람이 생명력을 얻고, 엘사를 찾는 안나와 크리스토퍼를 인도하는 역할을 함과 동시에 안나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거기다 빠지지 않는 개그씬은 전부 올라프가 도맡았는데 이 녀석이 활약할 때마다 극장에서 앞 좌석에 앉은 어린아이가 너무 좋아라 하더군요. 왠지 캐릭터성에서 『공주와 개구리』의 반딧불이 '레이몬드'를 떠올리게 만들어 이 녀석도 후반에 사라지면 어쩌나 했는데 웬걸 다행히 엘사의 힘으로 살아날 수 있어서 해피엔딩이 되었습니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영화가 시작되기 이전 디즈니의 옛 작품을 새롭게 만든 것처럼 보이는 『말을 잡아라 (Get Horse)!』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나요? 흑백 TV 시절의 미키와 미니가 곤란을 겪다가 3D화면으로 변하고 각종 도구로 사건을 극복하는 이야기가 5분 정도 흘러나왔는데 이게 또 재밌더라고요. 처음엔 이 영상이 시작하자마자 극장에 잘못 들어왔나 싶어서 당황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디즈니의 엄청난 센스가 아닌가 싶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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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크레딧이 올라가면서 효린의 "Let It Go"가 나오는데 이 노래도 좋았어요. 나중에 본 우리나라 더빙판은 전문성우가 참여한지라 퀄리티가 좋았습니다. 역시 더빙은 성우가 해야 좋더라고요. 참고로 처음 본 것은 자막버전인데도 당시 극장 안엔 어린아이들이 관객으로 바글바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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