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드라마 『마더』는 재미있는 영화가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LTE 비디오 포털(현재 유플러스 모바일TV)을 뒤져보다가 당시 무료로 전 회차가 서비스되던 것을 발견하고 보게 된 작품이었습니다. 『마더』는 다른 곳에서 소개글 비슷한 글을 본 기억도 있고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같은 제목을 가진 영화 몇 편이 떠오르기도 했는데요. 드라마 『마더』는 다름 아닌 길예르모 델토로 감독의 영화 『퍼시픽 림』에서도 나온 아역 배우 아시다 마나가 주연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더라고요. 대강의 줄거리는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학대받는 소녀 레나의 담임인 나오(원래는 철새 연구가로 해당 연구실이 문을 닫아 임시로 초등 교사 일을 하게 됨)가 레나를 구하기 위해 유괴를 감행한다는 내용이었고요.
물론 드라마를 자세히 보시면 알겠지만 이는 표면상으로만 유괴일 뿐 레나 역시 나오를 쫓아가는 것에 동의를 한 것. 처음엔 드라마라 편수도 길 테니 볼까 말까 망설였는데 11부작이라면 그렇게 많은 방영분도 아니고 별생각 없이 본 1화가 상당히 흡입력이 있어 계속 다음 편을 보게 만들었고 결국 이틀을 걸려 11편을 전부 정주행하게 되었는데 아마 드라마를 보면서 이렇게 운 것도 상당히 드문 일이 아닐까 싶었어요. 처음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원래 모성이 강한 여성이 학대받는 소녀를 지나치지 못해 범죄에 손을 대게 되었나 했지만 그런 예상과는 달리 주인공인 스즈하라 나오는 딱히 애들을 좋아하지도 않고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좀 냉정한 느낌의 여성으로 등장합니다.
거기다 무슨 사정인지 몰라도 어머니와 다른 여동생들과는 10년 넘게 연락도 하지 않은 소원한 관계라는 사실도 드러나고요. 초반 나오는 자신이 맡은 반의 레나가 학대를 받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은 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아이를 구하기 위해 뛰어드는 모습은 보이지 않아요. 오히려 먼저 나오에게 접촉을 하는 것은 어린아이인 레나였고요. 나오가 레나를 구하기 위해 직접적으로 움직이게 된 계기는 레나가 어머니의 애인에게 학대를 당하고 길가에 버려진 거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발견한 것으로 나오는 다름 아닌 레나에게서 과거 친모에게서 버림받았던 자신을 떠올렸던 거였죠. 드라마는 어린 시절 버림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살았던 여성이 한 아이의 어머니를 자처하게 되면서 자기 연민과 트라우마에서 벗어나 주변인들과 관계를 가지게 되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한 축에서, 동시에 현실의 '아동학대'라는 중범죄가 어떤 방식으로 일어나는지를 한 축에서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보통 양모와 친모 사이에 놓인 자식들 이야기라면 기른 정이 우선이다 낳은 정이 우선이다 싸우다가 낳은 정을 중시하는 이야기가 좀 더 흔한 반면 드라마 '마더'는 양모의 심리 - 레나의 엄마를 자처하는 나오, 나오를 길러 준 양모 스즈하라 토코, 어린 시절 나오를 맡아 준 시설의 모모코 할머니-를 비롯, 친모의 심리 - 나오의 친모인 모치즈키 하나, 레나의 친모인 미치키 히토미 - 를 둘 다 비중 있게 다뤄주면서 기른 정과 낳은 정 둘 중 어느 쪽 먼저 우선할 게 아니라 모성이란 모습도 제각각의 모습을 띄고 있지만 사람을 성숙하게 이끄는 애정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할까요. 오히려 드라마는 아동학대의 원인으로, 부모가 원래 악한 인간이니 자기 일은 아닐 거라고 선을 긋는 사람들의 잘못된 편견이나 부족한 여건, 미숙한 현실의 시스템이 주범일 수도 있다고 레나의 친모인 미치키 히토미의 이야기를 통해 풀어쓰면서도 동시에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따지고보면 불리한 여건 안에서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것이 아동학대라는 점인데 그래도 미치키 히토미는 나오의 죄를 뒤집어쓰고 원망을 들어도 변명을 하지 못했던 나오의 친모인 모치즈키 하나와 대비된다고 할까요. 드라마에서는 히토미의 사정만이 아니라 레나 유괴를 시도한 뒤 나오가 겪는 현실적인 문제, 돈을 도둑맞은 뒤 거처와 식사도 제대로 구하지 못하거나,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할 때까지 전전긍긍하는 모습도 자세히 나오는 데다 심지어 레나를 자기 딸 츠구미라고 둘러대면서도 미숙한 행동 때문에 들통날까 조마조마하고 츠구미의 학교나 호적 등록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지도 작 중 과제처럼 등장합니다. 학교와 호적 문제가 유괴라는 범죄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면 제대로 된 수입이 없어 거처를 옮기고 식사도 제때 못하거나 아이가 아프게 되는 일 등은 현실의 부모들이 아이를 키우면서 겪을 어려움이라 생각되더군요.
또 드라마의 재미있는 점으로는 소수의 인물(미치키 히토미의 애인 우라가미 마사토)을 제외하면 마냥 악한 인물도 마냥 선한 인물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처음 레나의 유괴를 짐작하고 나오를 쫓은 기자 후지요시 슌스케는 돈을 요구하는 모습 때문에 이놈도 별 수 없는 놈이려니 했다가 오히려 돈을 요구한 사실도 과거 아동학대범에게서 아이를 구해내지 못한 트라우마와 관련된 것이라는 게 드러나고 그 후에는 현실적으로 나오 일행을 돕는 등 의외의 면모가 드러나 처음 등장했을 때와 후반에는 그 이미지가 180도로 바뀐 인물입니다. 그리고 나오의 첫째 여동생 메이의 아기에게 심장질환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 메이가 아이를 지우겠다고 하자 선뜻 찬성을 하고 연락을 끊은 약혼자 역시 별 수 없는 놈인가 싶었지만 메이가 맘을 바꾸어 아이를 출산하자 다시 그를 찾아와 재청혼을 암시하는 결말을 보여주기도 하고요.
작 중 가장 긍정적으로 나오는 남성 캐릭터는 둘째 여동생 카호의 애인인 코헤이인데 비중은 적지만 카호와 그 가족의 곁을 여러 소동 속에서 계속 지켜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드라마의 눈여겨볼 점은 사건의 대다수가 우연적인 사고에 의해 일어나는 것 같으면서도 상당한 복선이 깔려 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1화부터 등장한 철새의 모습은 다름 아닌 나오와 레나 모녀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를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고, 레나가 별자리 관련 책을 보고 있는 것은 나오가 자기 진짜 생일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과 그의 친모 모치즈키 하나가 스즈하라 토코에게 나오의 진짜 생일과 별자리를 알려주는 것, 또한 드라마에서 설명되듯 철새들이 이동을 할 때 별자리를 보고 이동을 한다는 이야기와 연결됩니다.
철새가 어린 시절부터 이동 방법을 부모 새들에게 배우면서 성장한다는 대사 또한 드라마의 주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고요. 새 모양 종이접기를 통해 나오가 자기 친모를 알아내는 것이나 9화 나오의 범행이 밝혀질 때 내리는 여우비 또한 드라마의 복선. 1화에서 미치키 히토미가 레나에게 사 준 햄스터는 죽음을 맞지만 모치즈키 하나의 유품인 잉꼬 부부는 살아서 레나와 함께 한다는 것은 레나가 어떤 어머니와 있을지에 따라 그 운명이 달라질 것임을 예고합니다. 작 중 레나가 하늘색을 좋아한다는 것과 작 중 자주 등장하는 바다의 이미지 그리고 레나가 크림소다를 좋아한다는 설정은 서로 매치가 되며, 하늘색 목도리와 하늘색 색연필이 각 사건을 밝히는데 공헌을 한다는 점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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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마더』는 우리나라 방송사인 tvN에서 동명의 제목으로 리메이크 된 바 있습니다. 시청은 하지 못했지만, 한국 리메이크 버전도 완성도가 높다는 평을 찾을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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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의 OST가 특히 좋았습니다. Hinaco의 「泣き顔スマイル(우는 얼굴, 스마일)」
https://youtu.be/bximyHdnC_4?si=dz8Ib-QS4QIt3U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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