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은 제 기억으로 TV의 영화 채널 OCN을 통해 보게 된 영화였습니다. 방영 당시 제목을 보고 같은 제목의 영화 『혹성탈출』이 떠올랐고 그 영화나 그 영화의 시리즈가 아닐까 싶었는데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아보니 기존 시리즈와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리부트라고 나오더라고요. 좀 어릴 적에 영화를 소개해주는 TV 프로그램에서 『혹성탈출』 시리즈의 내용과 반전에 대해서 설명해 준 것을 어렴풋이 본 기억이 나는데 대강 흐릿하지만 기억을 해보자면 주인공이 우주선을 타고 지구로 돌아왔나 싶었는데 그 지구에서 문명을 이루고 있던 것은 인간이 아니라 유인원들이라는 결말이 영화 소개 채널에서 고대로 나왔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이거 스포일러를 엄청나게 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지만.

어쨌건 영화 자체가 인지도도 있고, 실은 주변에서 두 번째 시리즈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극장에서 보고 오고 영화 내용을 말해준 적 있었는데요. 영화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는 침팬지는 왠지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거부감이 들었는데 딱히 할 일도 없고 유명한 시리즈니 한번 봐볼까 하는 생각에 TV 앞을 지켰습니다. 영화 초반부에는 정글 한 복판에서 사냥꾼들에게 붙잡히는 침팬지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이 침팬지 ‘반짝이는 눈’은 젠 시스 연구소에서 치매를 치료하는 약물의 실험용으로 쓰이는데 그 와중에 새끼를 낳고 그 새끼를 지키려고 난동을 부리다 사살됩니다. 앞에선 영화를 보기 전에 왠지 침팬지가 징그러워서 영화 보기 싫었다고 했지만 영화를 보면서 그런 거부감은 줄어들고 실험용으로 끌려온 동물의 입장이 가여워지기 시작했는데요.

이때 등장한 영화의 주인공인 시저의 모습은 꽤 귀엽더군요. 결국 그 소동으로 연구소의 프로젝트는 폐기될 위기에 처하고 유인원들을 안락사 처분이 내려지는데 윌(제임스 프랑코 분) 휘하에서 연구를 돕던 연구원 프랭클린 덕에 아기 시저는 안락사 당하지 않고 윌의 집에서 살게 됩니다. 영화 상에서 윌은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었는데 보면 미국도 집에 치매 환자가 있을 때 고충이 크겠다는 것이 영화를 통해나마 간접적으로 느껴지더군요. 보면 정신질환이나 치매 같은 질병은 전문적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가족들의 인내심도 매우 필요한지라 여러모로 스트레스를 받겠다 싶은데 보면 옆집 이웃과 종종 마찰을 일으키는 것도 그렇고 고용한 간병인마저 힘들어서 못하겠으니 요양원 보내라고 하는 등의 상황이 벌어져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전문 요양원은 매우 들어가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있고 왠지 미국도 상황이 크게 다를 것 같진 않은데, 엘리트 연구원이긴 합니다만 회사의 압박을 받아 연구가 수포로 돌아가는 것도 그렇거니와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그 삶이 쉽게 돌아가진 않는다는 착잡 미묘함이 왠지 느껴진다고도 할까요. 그리고 이런 집안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이 바로 시저의 등장입니다. 시저는 어머니 반짝이는 눈의 약물 실험 결과가 유전된 탓인지 다른 침팬지 종보다 매우 비상한 면모를 보이며 주인인 윌과 그 아버지를 따르는데요. 보면 실제로 침팬지는 매우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동물이란 것을 안다면 이 시저의 모습은 참으로 독특하며 무리 중 가장 특출나면서도 공격성은 적은 모습이 영화 내내 보이는 게 신기하기도 했어요.

윌도 자기 아버지의 치료를 위해 약물을 개발하고 그 결과물이 시저이긴 했지만 그를 단순 실험용이나 애완용으로 보는 게 아닌 가족처럼 여긴다는 게 보이는데, 보면 시저가 인간들의 행동에 분노해도 그것이 살상이나 잔인한 복수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윌과 그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교감을 했던 시절이 있기 때문으로 보여집니다. 즉 동물이든 인간이든 누군가에게 이해를 받고 사랑을 받는다면 비뚤어질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뭐, 인간들 중엔 날 때부터 맛이 간 놈이 실제로 있을지도 모르지만.) 후속작의 스포일러에 의한다면 영화 중반 실험체가 되어 심상치 않은 포스를 보여준 실험용 유인원인 ‘코바’는 이런 시저와는 전혀 달리 학대로 얼룩진 과거를 가졌고 그것이 인간을 적대하는 결과로 이어졌단 것을 보면 말이죠. 하지만 시저가 인간에게 가진 애정 또한 모든 사건을 발단시킨 원인이 되는데 전부터 마찰이 있었던 이웃집 파일럿 남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후속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셈이더군요.

그는 치료약을 투여받고도 다시 치매가 재발한 윌의 아버지가 실수를 저지르자 그를 몰아세웠고 시저는 윌의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이웃집 남자를 공격하는데 결국 이웃집 남자가 시저를 윌과 갈라놓은 계기를 제공한 셈이더군요. 이 소동으로 인해 시저는 유인원 보호소에 끌려가는데요. 그런데 여기서 사건을 악화시키는 인물로 보호소의 직원이자 유인원들을 괴롭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에서 말포이를 맡은 배우였습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낯익은 배우를 발견하면 으레 반갑기 마련인데 『해리 포터』시리즈에선 그나마 얄밉게 나왔어도 정감이 가고, 주인공과 화해를 하는 캐릭터였던데 반해 여기선 그야말로 야비한 존재로 등장합니다. 이 인물의 행동으로 인해 시저는 변화하고 결국 유인원들을 해방시키게 되는데 보면 원래 머리가 비상했다고 하지만 우리를 탈출하여 윌의 집에서 지능을 향상시키는 약물을 훔쳐오는 등 엄청나 활약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시저는 자신처럼 수화를 할 수 있는 서커스 출신 오랑우탄을 만나는데요. 스포일러에 의하면 이 오랑우탄은 후속편에서도 중요하게 등장하는 역할이라 하더군요. 그리고 오랑우탄은 굳이 약물이 아니더라도 지능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였고요. 이후 유인원들을 해방시킨 시저는 인간의 목숨을 빼앗지 않는데 보면 말포이가 죽는 것도 정말이지 의도했다기 보단 안 좋게 우연이 작용한 결과였고 오히려 보호소에서 일하던 말을 더듬던 착한 직원 같은 경우는 유인원들에게 살해당할 뻔한 걸 살려주는 등 인간들에게 그렇게 수모를 당하고도 살려주는 모습을 보입니다. 시저가 행하려고 한 행동이 인간을 향한 ‘보복’이 아니라 유인원들의 ‘해방’이라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걸로 보이기도 하고요. 보면 시저의 이름부터가 그가 갖는 캐릭터와 상징을 고대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네요. 역사 속 시저는 평가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영웅이라는 점에서부터. 그리고 영웅은 보통 사적인 이익이나 감정 표출이 아니라 대의적인 면에서 행동한다는 점부터요.

그렇게 연구소와 보호소의 유인원 그리고 동물원의 유인원들을 해방시킨 시저는 과거 윌과 함께 놀러온 적 있는 국립공원의 숲에 정착하고 자신을 데리러 온 윌에게 자신이 있을 ‘집’은 여기라고 말합니다. 그의 뜻을 존중한 윌은 결국 발길을 돌리는데요. 후속편에선 이 윌이나 그의 애인이 등장하지 않고 실험의 실패로 인간에게 치사율 높은 바이러스가 퍼진다는 영화 엔딩의 암시를 보면 이 윌 일행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대강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윌을 대신하여 시저와 교감하는 다른 인간이 바로 다음 시리즈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될 텐데 이번 영화를 흥미롭게 본 결과 후속작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을 극장에서 보지 않은 것이 좀 후회가 됩니다. 영화 평을 찾아보면 다음 시리즈가 완결이 아니라 또 후속편의 떡밥을 남기면서 궁금증을 자아내는 걸로 보이더군요.
'영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혹성탈출 : 종의 전쟁』 리뷰 (0) | 2025.05.17 |
---|---|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 리뷰 (0) | 2025.05.16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2차 리뷰 (0) | 2025.05.14 |
『매드 맥스 : 분노의 도로』 리뷰 (0) | 2025.05.13 |
『하우스 오브 왁스』 리뷰 (0) | 2025.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