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성탈출』 신 시리즈는 극장에서 미처 보지는 못하고 전작들은 죄다 영화 채널에서 방영해 주는 것으로 대신 감상했었는데 1편 『혹성탈출 : 진화의 시작』에 이어 2편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까지 실망한 적이 없는 영화였습니다. 묘하게도 영화 평을 찾다 보면 왠지 유인원 종류가 인간처럼 하고 다니는 것이 징그럽다거나 거부감이 들어 처음에 영화를 안 봤다는 분들도 본 것 같았는데 실은 저도 처음엔 그랬고 영화를 직접 보고 나서야 이 영화 시리즈는 정말 대단한 작품이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까지 보고 나서야 이번에 개봉하는 마지막 시리즈 『혹성탈출 : 종의 전쟁』은 필히 극장에서 관람해야지 결심하며 개봉 당시 영화를 보러 갔습니다. 하지만 당일이 공휴일이었던지라 대기표가 너무 길어 표 끊는 데에만 시간을 허비하는 바람에 결국 앞의 오분 정도의 영상은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물론 내용 자체를 이해 못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영화의 내용이 1편과 2편이 연결되다 보니 만약 전편을 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내용이 어려울까 싶었는데 기본적인 설정 - 바이러스가 퍼져 인류는 멸망, 대신 유인원들이 인간처럼 지능을 깨닫고 문명을 이룩, 그 유인원들의 리더가 시저이며 살아남은 인간들과 유인원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짐-만을 알고 간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다고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감독의 의도일지 몰라도 전편에서 시저와 관련이 깊었던 인물들 1편에서 주인이었던 윌이나 2편에서 신뢰 관계를 쌓았던 말콤과 같은 캐릭터들은 이번 3편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데 전편의 인간 주인공들이 나름 좋은 인상을 남겼던 것을 생각하면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좀 아쉽다 싶을지도 모를 부분입니다. 다만 내용의 배경을 생각해보면 이 인간 주인공들도 살아남기 어려웠을지 모른다는 추측은 가능할 듯.

시저의 존재감이 인간들에게 알려진 듯 시저를 노리고 인간들이 전쟁을 걸어 오는 것이 영화의 시작으로 시저는 '자신이 벌인 전쟁이 아니다'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처럼 살아남은 인간 병사들을 살려 보냅니다. 하지만 이것이 화근이 되어 이 3편의 악역인 대령에 의해 시저의 아내와 아들 푸른 눈이 살해당하고 시저는 동족들을 먼저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고 자신은 복수심에 불타 대령을 쫓게 됩니다. (하지만 여기에 페이크가 작용하여 시저와 유인원들이 동시에 함정에 빠지게 됩니다.) 그 와중에 자신들과 마주친 어떤 인간 병사를 살해하고 그가 보호하고 있던 말 못 하는 소녀(노바)를 만나게 됩니다. 노바는 작중에서 진짜 이름이 밝혀지지 않고 나중에 모리스가 그 이름을 노바라고 지어주는데, 모리스는 전편에서 말콤의 아들과 친분을 가졌던 것처럼 이번 편에서도 어린아이와 가장 먼저 친구가 되는 등 정이 많은 모습을 보이더군요.

참고로 저 노바란 이름은 이번 편에 새로 멤버로 투입된 동물원 출신 유인원이 소녀에게 선물한 아무래도 자동차의 로고로 추정되는 물건에서 따온 건데요. 이 동물원 출신 유인원은 특정한 이름은 없고, 신캐릭터지만 독특하고 어리버리한 행동거지(유인원들 중에서 유일하게 춥다고 패딩 같은 것을 챙겨 입거나, 인간들이 말하는 배드 앱스 같은 말을 따라 한다거나)로 관객들을 웃기지만 민폐는커녕 오히려 시저 일행에게 큰 도움을 주는 등 활약하는 개그 캐릭터입니다. 보면 심각한 분위기 와중에 개그씬은 전부 담당한다고 할까요? 동시에 시저의 무리들이 시저나 모리스 정도를 빼면 대화 대신 수화를 이용하는데 반해 이 유인원은 대화를 어느 정도 능숙하게 하면서 시저 무리를 제외한 다른 유인원들에게도 변화가 오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캐릭터이기도 해요. 모리스는 대화는 할 수 있지만 굉장히 말을 아낀다는 느낌이며 시저나 인간 등장 씬을 제외하면 대다수의 대화가 수화로 이루어져서 영화는 영어 자막과 한국 자막을 동시에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중반 시저 일행은 인간 군인들이 인간들을 살해한 것을 목격하고 숨이 붙어있는 병사가 노바처럼 말을 하지 못한다는 것에 놀라게 되는데, 이는 중후반부 대령의 입으로 밝혀지지만 1편에 퍼진 바이러스가 변이를 일으켜 인간의 언어능력과 사고력을 상실하게 만들고 마치 짐승처럼 만든 결과라고요. 예고편에서 언급되었던 것처럼 유인원이 더 똑똑해지는데 반해 인간은 점점 지능이 퇴화한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 원인이 여기 있었던 것으로, 이번 편에 등장한 악역인 대령은 전편의 악당 드레퓌스와는 다르게 인간 측에서도 상당히 냉혹한 태도를 취하는 인물로 묘사되며 인간에게 퍼지는 바이러스를 막기 위해 감염된 자신의 아들까지 살해했고 그 방식에 분노한 다른 인간들이 반기를 들어 그의 군대와 전쟁을 벌이려 한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이 와중에 놀란 것은 자신이 목격한 단편적인 것들을 통해 이 모든 것들을 알아챈 시저의 판단력이랄지...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거지만 부제로 붙은 종의 전쟁은 유인원과 인간의 전쟁이면서 또 인간끼리의 전쟁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이번 편의 유인원들은 인간끼리의 내분에 휘말려든 셈이나 마찬가지. 인간들의 숫자가 갈수록 줄어드는 마당에 네 편 내편 가르는 꼴을 본다면 역시 인간은 뭉치기 힘든 존재라는 것을 여실히 말해주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번 편에 등장하는 두 리더 시저와 인간 측의 대령을 본다면 각기 다른 리더십을 볼 수 있는데 시저는 그래도 유인원들의 생존을 위해, 그 협력을 이끌어내는 존재라면 대령은 자신들 인간의 미래가 자멸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혹은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자신이 하는 일이 옳지 못한 것을 어느 정도 인식은 하면서도 냉혹한 카리스마로 남은 사람들을 이끌어가는 인물로 대비가 됩니다. 다만 시저가 영화 속에서 자신이 죽인 코바의 환영에 시달리고 대령은 자기 아들의 유년 시절 사진을 걸어둔 것으로 보아 둘 다 어느 정도 죄책감은 있던 게 아닌가 싶더라고요.

영화를 마지막까지 보고 공통적으로 느낀 것이 있다면 이 영화 시리즈의 악당들 중 한 명은 살해당하고 남은 한 명은 스스로 자멸하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 있는데 1편에서 만악의 근원이라 할 젠시스의 CEO는 코바에 의해 살해당하고 유인원 보호소에서 유인원들을 학대하던 도지 랜던은 시저를 제압하려고 전기 충격기를 꺼내들었다가 감전사, 2편의 코바는 시저에 의해 살해당하고 인간 측 지도자 중 하나였던 드레퓌스는 폭탄을 터뜨리려다 휘말려서 죽음, 3편의 대령은 자기 아들과 같은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자살하고 그 휘하 병사는 시저를 죽이려다 총에 저격당해서 사망. 특히 영화 속 대령의 죽음 묘사는 작 중 악역임에도 불구하고 연민이 들게 묘사되어 마지막까지 복수의 끈을 놓지 못했던 시저마저도 차마 복수를 하지 못했을 정도. 이 장면은 복수심 때문에 우연히 마주친 노바의 보호자를 살해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인 장면이었다고 할까요. 이런저런 험난한 과정을 거친 끝에 유인원들은 새로운 터전에 도착하지만 인간인 노바와 어쩌면 남아있을지 모를 인간들의 앞날이 어찌 될 것인지 의문과, 그리고 극을 이끌어온 시저의 죽음과 함께 묘하게 씁쓰레한 맛을 남기며 대서사시의 끝을 맺습니다.
※ 참고로 영화 보면서 생각난 건데 삼부작 명대사 좀 고르자면 다음과 같네요.
1편 진화의 시작 : NO--!!
2편 반격의 서막 : 트러스트(Trust)...
3편 종의 전쟁 : 목 말라?(수화로 자막은 thir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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