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지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0권의 내용, 바로 '선조실록'을 보면서 선조에게 엄청나게 짜증을 낸 적이 있었는데 이번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11권의 주역은 엄연히 광해군이었지만 여전히 선조에게 짜증을 내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선조의 그림자는 '선조실록'을 넘어서 '광해군일기', 거기에다가 좀 더 널리 잡자면 '효종'대까지도 갈 수도 있겠다 싶더군요. 임진왜란을 통해 조선이 망하지 않은 것은 조선 내부의 견고한 제도가 어느 정도 역할을 한 것도 사실이고 전쟁 시에 상당한 사람들이 활약을 한 덕이 있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광해군일기'편에 들어서면 이 임진왜란은 조선을 흔들어놓긴 했을 망정 긍정적으로 변화를 주지는 못한 거 같습니다.
오히려 전대의 모순이 더 강화되는 측면이 있는데 이것은 전쟁 시 활약을 했던 사람들 중 상당수가 거의 전사하거나 숙청당하는 수모 때문에 세상의 눈을 피해 은거해버린다거나 하는 이유로 그들이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던 기회가 없던 점, 상당수 백성들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소통로가 여전히 막힌 탓인데 솔직히 전쟁과 같은 난리를 겪으면 사회적인 불만이 쌓이기 때문. 이를 가라앉힐 만한 어떤 제도를 마련해야 되는 게 옳을 텐데 그런 것도 마련되지 못했고, 기득권층의 타락은 현재진행형이었는데 임진왜란 동안 보여준 선조의 행동은 오히려 이런 점을 더 악화시키는 역할을 했다고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모순덩어리가 굴러가는 마당에 어쩌면 병자호란은 정해진 수순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왕실의 어떤 왕이든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겪지 않은 왕이 없다지만 광해군은 특히나 그 큰 난리를 치루면서 선조의 몫까지 해내지만 전쟁이 끝난 뒤 돌아오는 선조의 싸늘한 시선뿐입니다. 흔히 선조의 방계콤플렉스라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것과는 반대로 다른 해석이 책에 등장하는데, 방계콤플렉스라고 하기엔 임란이 터지기 전까지 선조의 입지가 위태로운 적은 없다는 점이 증거이고 오히려 선조의 개인적인 감정,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의병장들을 대한 태도에서 보이듯 자신보다 뛰어난 이들에 대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보이는데 이것만 봐도 선조가 얼마나 그릇이 좁은 인간인지 파악이 되더군요. 솔직히 열등감을 갖는 거야 상관없다지만 그런 감정으로 일국의 후계자문제를 흔들어버린다거나 하는 일로 다시 붕당을 유발하니까 문제. 이 붕당은 날이 갈수록 커져서 효종실록까지 가면 참 기가 막힌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
광해군 시기에도 옥사가 많이 발생하였는데 책에선 이것을 세자 책봉과 왕위에 오르기까지 위태로웠던 광해군의 성장과정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흔히 개혁군주라고 알려진 것보다는 광해군 역시 전대 왕들처럼 왕권강화를 목적으로 두고 있고 궁전을 보수하는 일을 벌여 안그래도 피폐한 백성들을 더 힘들게 하거나 일부 대신들을 지나치게 의존하여 그들에게 권력이 지나치게 몰리게 하는 등 부정적인 면모도 보입니다. 물론 방납제의 폐단을 시정하거나 하는 등 새로운 정책을 시도한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만. 특히 외교문제에 있어선 현실적으로 일을 처리하려 한 경향이 커 보이는데, 문제는 당시 성리학을 신봉하던 대다수의 신하들은 임진왜란 같은 비상사태를 겪고도 변화가 없었던 것이죠.
그나마 소수의 몇명만이 광해군을 지지했을 뿐인데 그것마저 드러나지 않았고요. 오히려 임진왜란 이후로 사회의 변화를 억제하기 위해 오히려 기존의 제도와 분위기를 더 강화하는 측면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나라꼬락서니는 몸이 아픈 인간이 후유증으로 정신마저 망가진 꼴을 보는 것도 같습니다. 고통은 별로 성장을 주진 못한다는 게 진리랄까요. 우스운 일은 유교적인 명분을 삼아 반정에 나선 이들 역시 나중에 인조실록을 보면 알겠지만 명의 의리 운운하면서도 후금(청)에겐 대놓고 뭐라 하지 못하는 등 쩔쩔매는 꼴을 보였다는 거죠. 광해군은 결국 인조반정으로 축출되고, 계속 때를 기다렸지만 결국 유배지에서 숨을 거둡니다. 다만 여러 번의 역모사건에서 광해군이 연루되었음에도 인조 정권이 광해군을 사사한다거나 하는 일은 못했는데 찾아보니 이것은 인조반정의 명분이 허약했다는 증거였고요.
다음권 인조실록에서도 아예 노골적으로 언급되는데 만화에선 인목대비가 광해군을 죽이라고 난리 쳐도 신하들이 그렇게는 못하다는 장면에서도 드러내고 있지요. 애초에 폐모론은 명분이었을 뿐이고. 인목대비 이 여인도 불쌍한 여인인데 따지고 보면 이 불행도 선조의 업보였으니 남편 잘못 만난 격이랄까요. 광해군은 축출된 이후에도 결국 복권되지 못하고 군으로 남았는데, 현대에서나마 그나마 객관적인 평가가 이뤄져서 다행이랄지... 정작 왕으로 남은 선조나 인조가 사람들 사이에서 얼마나 평가가 박한지 보면 말이죠. 또 볼만한 점은 이번 편의 주인공인 광해군이 꽤나 미남으로 그려져 있다는 점입니다. 솔직히 지금까지 나온 왕들 중에서 제일 미모가 뛰어난 거 같습니다. 아버지인 선조나 조카뻘인 인조는 못생겼는데 반해 젊었을 적부터 계속 얼굴을 비춘 지라 볼만하더군요. 이 미모는 특이하게도 다음 권의 소현세자가 물려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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