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발견하여 빌려오게 된 『입시전쟁 잔혹사』는 우리나라의 입시위주 교육 문화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으며, 이것과 관련된 사회 풍토와 분위기, 여러 교육정책과 바뀐 교육정책들의 부작용 내지 한계, 입시위주의 교육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데는 결정적으로 한국인들의 사고관이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책입니다. 이 책이 속 시원한 이유는 우리나라의 학벌주의가 문제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근본적인 문제, 우리나라가 학벌위주 사회가 된 것은 사람들이 학벌을 대단하게 여겨서가 아니라 이 학벌이 바로 '계급'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했기 때문이에요.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동안의 칼럼이나 논설에서 학벌 운운하는 글들이 가장 중요한 전제를 빼먹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는데 어린 시절부터 힘들게 공부를 시킬 수밖에 없는 이유, 좀 더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학간판이 취직에 이득이 되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바로 신분상승의 유일한 출구이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또 책을 보면 참 재밌는 사례가 많이 나오는데 그 유명한 '무즙파동'이라거나 과외열풍이나 과외금지, 혹은 기러기아빠 일화들도 제법 실려있습니다. 단지 지나간 일이라고 웃을 일은 결코 아니지만은.
책은 우리나라의 양반들이 과거제에 올인했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풀어내는데, 과거제도의 비리 이야기는 지금쯤에는 거의 우스운 역사 일화 취급받는 정도지만 실질적으로 현재 사회도 그때와는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때는 비록 양반들(몰락 양반과 가짜양반도 진짜 제대로 된 양반이 되기 위해 시험을 본 것 포함)의 자기 지위를 지키기 위하거나 혹은 되찾기 위해 시험을 본 데 반해 지금은 더 많은 사람이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계급상승 시험에 올인한다는 차이점이 있달까요.
게다가 우리나라의 교육에서 어머니 파워가 센 이유도 유교적 사회에서 큰 아들의 입신양명은 바로 어머니의 보상으로 돌아오기 때문이고 이것이 일제강점기에는 나라를 잃어 입신양명이 아닌 출세지향으로 바뀌었어도 마찬가지. 그리고 그 시절의 사고방식이 죽 내려와 현재의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책에서 하나 더 지적하는 점은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 만연한 사고방식입니다. '억울하면 출세하라'라는 흔한 말이 결코 괜히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며 구조적인 문제점을 사회의 합의로 고쳐나가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풀어내는 것은 개인에게 돌리는 각개약진적 사고방식에서 비롯된 것인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승자독식의 사회를 완화시키기보단 그 열차에 몸을 싣고 독식하는 방식을 선호했다는 점입니다. 한때 사회에서 지나치게 유행한 일종의 자기 계발서 붐도 여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개인적으로 들더군요. 거기에다 한국 특유의 빨리빨리 문화가 좀 더 문제를 악화시키고 있다고요. 저자의 글에 의하면 이런 정글 같은 경쟁 체제는 아주 오랫동안 이루어진 고질적인 문제이기에 금세 해결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엘리트들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것이기에 엘리트들의 각성 또한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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