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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드라마(2022년~2023년)

『드라마 스테이지 2021 : 산부인과로 가는 길』 리뷰 (2022. 3. 18. 작성)

by 0I사금 2024.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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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미처 몰랐지만 tvN에서 단막극 형식으로 실험적인 소재를 가진 드라마를 방영했었더군요. 찾아보니 "《드라마 스테이지》는 2017년 12월 2일부터 방영되고 있는 tvN의 단편 드라마 시리즈이다. 이 시리즈는 CJ E&M에서의 신인 스토리텔러 지원 사업인 오펜(O’PEN)의 ‘드라마 스토리텔러 단막극 공모전’에서 해마다 10편을 선정하여 제작 · 방송된다"라고 위키백과에서 자세한 설명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꾸준히 만들어졌다면 꽤 유서 깊은(?) 시리즈라고 해도 좋을 듯.


일단 제가 가장 보고 싶었던 에피소드는 2021년 『드라마 스테이지』의 7화에 해당하는 '산부인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요즘 한국에도 좀비 소재를 한 작품들이 많이 실사화되는 것 같은데, 좀비들로 도시가 뒤덮인 현실과 만삭의 산모가 주인공이라는 익숙하지만 아찔해 보이는 소재로 이것을 어떻게 살렸을까 궁금하더라고요. 리뷰 영상을 통해 스포일러를 대거 확인했지만, 그래도 압축 버전보다 직접 보는 것이 이해가 더 빠른 지라 7화를 결제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전개는 알고 있는 편이지만 재미있게 볼 수 있었어요. 리뷰 영상에서는 만삭의 산모나 할머니보다 느린 좀비라는 설정 때문에 좀비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코믹한 장면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이런 웃긴 설정을 뺀다면 은근 좀비물 클리셰와 위기 상황을 잘 그려낸 것 같다는 생각.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느린 좀비한테 사람들이 금세 잡혀서 감염되었나 의문이 들었다가 처음에 좀비인 줄 모르고 도움 요청했다가 물린 사람들이 나오거나 좀비가 다가온 줄 모르고 물린 사람들이 좀 있어서 이 부분은 나름 납득하면서 볼 수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좀비는 흔히 시체가 다시 살아난 걸로 여겨지는데, 시체가 폴짝폴짝 운동신경을 발휘하며 뛰어다니는 것도 납득이 안 가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드라마에선 좀비가 어떤 경로로 어떤 원인으로 퍼졌는지는 상상의 너머에 맡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으레 이런 좀비물은 어떤 식으로 좀비가 나타났는지 원인을 파헤치는 장르가 있고, 원인은 미스터리로 남긴 채 위기 상황에 빠진 사람들이 재난을 피하는 장르도 있던데 이 드라마는 후자에 가까워요. 다만 여기에 한국식 코미디를 약간 곁들인 좀비물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좀비들의 퀄리티나 행보가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지 않았어요. 좀비로 감염된 사람들의 얼굴에 반점이 생긴 것은 공포 효과는 좀 떨어질 수 있으나 이건 감염자와 감염되지 않은 사람들을 분류하기 위한 설정인 것 같고요. 후반부 들어 나오는 좀비들의 퀄리티는 나름 괜찮은 면도 있었어요. 좀비들이 사람을 습격하거나 패닉에 빠져 도망가는 사람들 묘사라던가, 고립된 장소- 산부인과 병원이나 주차장, 쇼핑몰 내부 -에서 좀비들과 맞닥뜨리는 장면도 충분히 공포를 잘 살려낼 수 있는 상황이었고요. 그런데 이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소품이 소품인지라 공포심은 금방 희석되고 암울함은 많이 사라지는 게 특징. 음료 뽑아먹으려던 좀비가 자판기 음료수에 정신이 팔린다거나 좀비 입에 쪽쪽이 물려서 제압한다거나.


'산부인과로 가는 길'이 독특한 점으로 여기 나오는 여성들은 하나같이 강한 여성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좀비 사태가 터진 도시를 걸어가는 주인공이나 이 주인공을 도와주는 요구르트 아주머니나, 병원에서 혼자 버티는 간호사라거나... 흔하게 사람들이 말하는 '엄마는 강하다' 이런 도식적인 클리셰가 아니라 자기 일을 끝까지 하기 위해, 가족을 만나려고, 자식을 낳아야 하니까 살아남는 긍정적인 인간의 형태를 현실적으로 녹여낸 것 같아서 좋았습니다. 오히려 멘탈이 약했던 건 후반부에 나타난 군인이었는데, 이 캐릭터가 멘탈 붕괴한 이유도 제대 하루 남긴 상황에서 좀비로 비상사태 터져서 맛이 갔다는 현실적인 이유에 터지더라고요.

한국적인 현실을 곳곳에 녹아낸 것을 빼면, 좀비물의 클리셰도 충분히 잘 살려냈다고 할 수 있어요. 좀비물에 한 번은 등장하는 만삭의 산모, 갑작스러운 좀비들의 출현으로 아수라장이 되는 도시, 가까운 사람들이 하나 둘 좀비로 변하여 위기 상황에 빠지는 것, 좀비들이 가득 찬 거리와 건물, 좀비들을 물리칠 줄 아는 강한 조력자(요구르트 아줌마)와 이런 와중에 나타나는 사이코 타입의 빌런(말년 병장 군인), 위기 상황에서도 자기 임무를 끝까지 해내며 희생하는 인물(간호사) 등... 마지막에 막 태어난 자식과 함께 생존을 위해 준비하는 주인공의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깔끔한 엔딩이었고요.


전개에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중반 남편이 있는 회사를 겨우 찾아갔을 때, 내연녀랑 함께 좀비가 된 남편의 뚝배기를 깨지 않은 점이라고 할까. 부인 출산을 앞에 두고 있는 놈이 주차장에서 내연녀랑 불륜 저지르다가 감염된 건데 남편을 한대라도 갈겼으면 좀 속이 시원했겠다 싶었네요. 그리고 주인공을 도와준 요구르트 아줌마와는 병원에 도착하면서 헤어지는데, 엔딩에서 아줌마가 몰던 요구르트 차량만 어질러진 것을 본다면 그녀가 배터리가 다 된 차를 두고 자식을 만나러 떠난 건지 아니면 좀비가 되어버린 건지 알 수 없어서 조금 암울한 느낌도 들었어요. 그래도 주인공도 무사했겠다 최대한 행복 회로를 돌리면서 엔딩을 받아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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