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한국사』는 『벌거벗은 세계사』보다 더 이른 시간에 방영을 하기도 하는 편이라 본방 사수하기가 어렵지 않은 편이기도 하고요. 원래는 『벌거벗은 세계사』 재방송을 보고 싶어서 채널을 돌린 건데, 본방으로 본 『벌거벗은 한국사』 124화의 재방송을 해 주길래 그냥 한 번 더 보게 되었습니다. 이번 124화 내용은 고려의 개혁군주였던 광종에 대해 다루었는데요. 비록 용두사미에 아쉬운 전개를 보여주긴 했지만 드라마 『고려거란전쟁』 덕에 고려사에 흥미와 관심이 생겼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는 비록 중반, 정확하게 양규 장군 사후부터 막장 전개를 타서 결코 좋은 감상은 남지 않았지만 고려사 관련 내용이 나오면 예전보다 더 몰입하면서 보게 된 것 같거든요. 드라마 상에서도 현종이 지방 호족들의 모욕에 시달리거나 피난을 가면서 백성들이 호족들의 착취에 눌려 사는 걸 알게 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던데요. 드라마에서 어느 정도 부풀린 경향이 있기야 하겠지만 어느 나라든 중앙에서 통제력을 잃어버리는 일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왕권 강화는 중요한 과제였을 겁니다.
이번 회차 게스트는 『벌거벗은 한국사』에서 지난 회차 고려거란전쟁과 무신정변을 다룬 회차에서도 나오셨던 박재우 교수님이십니다.
무신정변을 다룬 『벌거벗은 한국사』 107화를 보면서 고려의 왕권이 땅에 떨어지고 무신들이 권력을 휘두르면서 고려가 몰락의 길을 걸어갔다는 걸 실감한 바 있었는데요. 새삼 왕권이 얼마나 지키기 힘든 것인지 느낄 수 있다고 할까요? 광종은 고려 역사 속에서 그 임무를 확실하게 수행하려고 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였는데 그 행적이 명군인지 폭군인지 갈린다고 하지만, 고려가 건국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그 시기는 결코 녹록지 않은 시절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어요. 결국 누구 하나는 피를 봐야 했고 오명을 쓸 수밖에 없던 시대였다고요.
『벌거벗은 한국사』에서는 광종의 젊은 시절부터 왕위 즉위까지, 왕위에 올라선 다음 펼친 온건한 개혁 정책 시기와 후반부 공포정치 시기 총 3단계로 나누어 설명합니다. 그런데 고려 초기 호족 세력이 크고 왕권이 약했을 때 궁여지책으로 근친혼을 많이 했고 그로 인해 왕실 관계가 매우 복잡해진 지라 한 번에 이해하긴 여전히 힘들지만요. 이게 신기해서 엄마께 설명을 해 드리려고 하니 복잡하다며 듣기 싫어하신 건 덤. 어쨌든 저 시절 호족 세력이 날뛴 것을 보면 고려 왕실이 저런 혼인 방법을 쓴 것이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었어요.
개혁을 추진하려고 치면 발목 잡는 호족 세력 때문에 광종이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후반부 광종이 공포정치와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이용해 숙청을 감행하면서까지 왕권 강화를 시도한 게 이해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 후반부 공포정치 때문에 광종의 평가가 갈린다고 하지만 광종이 이때 과격한 방법을 써서 호족 세력을 꺾은 덕에 후대에 태평성대가 가능해졌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심지어 그 태평성대도 여요전쟁이라는 국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뒤에 가능해진 거였는데 그 시절을 버틴 성군인 현종도 피난길에서 지방 호족들한테 수모를 당했을 정도였다고 하니...
결국 왕권 강화라는 목표 아래에선 온건한 방법은 한계가 있고, 누구 하나는 대신 오명을 쓰면서까지 과격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방송에서 광종을 조선시대 태종 이방원과 유사하게 해석하기도 했고요.
광종의 업적 중 노비로 전락한 양인들을 면천해 주는 노비안검법, 귀화 지식인 등용(호족 견제를 위해 후주 출신 쌍기와 같은 중국 출신 문인들을 대거 기용했다는 설명. 재미나게도 이번 주 게스트도 과거 드라마에서 쌍기 역할하신 배우)이나 집안 빽이 아닌 실력으로 관료를 뽑는 과거제도의 시행 등이 언급되는데 과거제는 현대로 치면 공무원 시험이나 마찬가지고 이걸 본격적으로 시행한 게 광종이며 이때부터 조선시대까지 약 천 년 동안 유지되었다고 하니 이게 진짜 대단한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솔직히 과거제도 없었으면 못난 놈들이 집안 빽으로 한자리 잡고 떵떵거릴 가능성이 높았는데 호족 견제 차원이라고 하지만 실력을 보고 관리를 뽑는다는 건 진심 저 시대에 파격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저 고려 시대 양민이었으면 공포정치니 뭐니 해도 결국 광종을 우러러보게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를 당장 착취하는 게 지방호족이라면 그 지방호족을 때려잡는 황제는 얼마나 대단하게 보였겠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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