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하던 『십이국기』 제2권입니다. 어느 정도 애니 시리즈를 보고 스포일러를 많이 알고 있어서인지 읽어나가는 속도가 수월하게 빨라졌습니다. 그리고 이번 2권에 들어서면 이야기의 흑막이 밝혀지고 그동안 의문시되었던 소설 내의 내용들에 대해 밝혀지기 때문에 단순 요코의 고생담 말고도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개되어 흥미를 더하는데요. 읽다 보면 오래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원작의 내용을 충실히 담으면서 몇몇 장면은 애니 오리지널로 바꾸어서 좀 더 다른 분위기를 낸 면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권인 1권의 마지막 씬은 교국 기린 코우린이 자신의 주인인 각왕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요코의 손을 칼로 찌르고 사라지고 다친 요코는 길가를 헤매다가 쓰러지는 부분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2권의 시작은 그렇게 쓰러진 요코를 반수인 라크슌이 구하는 것으로 시작되는데요. 이 라크은 아마 『십이국기』를 본 팬들에게서 인기가 많은 캐릭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평소 생김새도 쥐라서 귀엽기도 하고) 이렇게 아량 넓은 캐릭터는 정말이지 드물단 생각입니다. 단순 사람에게만 친절할 뿐만 아니라 보면 확고하고 자신의 결정에 흔들리는 면이 없어서 좋은 캐릭터인데 보면 그냥 생각 없이 호감을 베풀거나 맘이 약한 탓에 친절하기만 하다면 다른 사람들한테 이용받아 상처받기 일쑤인 경우가 많은 법이니까요. 반면 라크슌은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어도 그냥 자기가 사람이 좋아서 그러는 거고 누군가의 맘에 들기 위해서라거나 자신이 좋은 일 하면 그에 맞는 보상을 누군가가 해주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그런 것이 아닌 자기가 원래 그러하니까 친절을 베푸는 것이고,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그건 그 사람 문제일 뿐이라고 여기는 내면이 단단한 캐릭터라는 게 보입니다.
보면 남들눈에 잘 보이려고 좋은 사람인 척 애쓰는 전형은 십이국 세계로 넘어오기 전의 요코나 요코에게 감정이입을 했을 독자들일 텐데 보면 요코가 그동안 십이국으로 건너와 사람들에게 배반당하고 상처 입게 된 데에는 쉽게 사람을 믿고 자신이 착한 일을 하면 남들도 그에 맞게 대해주겠지 하는 생각이 깔려있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설이 전개되면 자신이 스스로 결정하기보단 남들이 뭐라고 명령해 주길 바라는 나태함도 한몫했다고도 나오고요. 이런 점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그 사람이 자신의 기대대로 움직여주길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요코가 수우도가 만들어낸 환상의 푸른 원숭이한테 시달리며 요마에 습격받았을 때 라크슌을 버리고 도망친 것을 후회하면서 타인이 어떻게 행동하든 그것은 자신의 결정이나 행동과 상관없으며 만약 배반한다 하더라도 그건 상대방이 비겁해지는 것일 뿐이라고 외치며 원숭이를 베어버리는 장면은 소설이나 애니에서든 백미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볼 땐, 소설과 달리 애니에선 안국 기린인 엔키의 비중이 늘었는데 원작을 보니 요코는 나중에야 엔키를 만나지만 애니메이션에선 이미 현실에서 타이키를 찾는 엔키를 요코가 우연히 본 장면이 있더라고요. 또한 오리지널 캐릭터인 스기모토 유카나 아사노군이 있어 요코의 발목을 시시때때로 잡고, 해객이나 반수에게 너그럽다는 안국으로 배를 타고 건너갈 때까지 여러 사고가 끊이지 않았던 데 반해 소설 상에서는 이 장면이 제법 간단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덕에 소설에선 라크과의 재회가 빨라진 측면이 있더군요. 또 원작 소설과 애니의 차이점은 원작 소설에선 요코가 안국 연왕과의 만남 이후 자신을 계속 공격했던 인물들이 누구인지 후반에서야 파악한 데 반해, 애니에서는 처음부터 해객을 경계했던 교국의 각왕이 배후라는 것이 드러나며 나중에 전말이 들켰을 때 분노에 못 이겨 요코를 죽이려 덤벼들었다가 그것을 막아서는 자신의 기린 ‘코우린’을 죽게 만들면서 업보를 치르는 차이가 있더군요.
그런데 소설 상에서 묘사되는 각왕의 모습을 보면 분명 주인공을 위협하는 악당의 역할이며 해객이나 반수와 같이 자신들과 다른 존재를 경계하고 믿지 않는 등 독단적인 면을 보이는 왕인 것은 맞으나 자신의 한계와 능력에 대해선 정확하게 파악하는 냉정한 인물이라는 점도 독특합니다. 자신은 결코 다른 나라의 명군(안국과 같은)이 될 수는 없으며 그들이 잘 사는 데에는 그들이 다른 세계에서 한번 건너갔던 ‘태과’라는 점이 작용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 그것에 열등감을 보이기도 하며 자신 혼자만 최악으로 떨어지는 것은 견딜 수 없다는 이유로 파멸해 가지만 동시에 자신이 왕으로 선택된 것은 그저 분에 넘치는 행운이었을 뿐이며, 자신은 지방 관리로 끝났어도 이상하지 않고 왕의 그릇도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코우린에게 고백하는 모습을 보이거든요. 자신의 한계를 직시하고 그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그에 따르는 분노는 어쩔 수 없어서 그것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렸다고도 볼 수 있는데 이런 모습이 묘하게 현실적인 인물상을 띄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면 애니에서 여러 가지 장면을 원작에서 나름 추리고 종합하되 매체 나름대로 극적인 재구성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마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매체 차이 때문에 이런 재구성이 필요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렇게 재구성한 내용 덕택에 소설에선 경왕으로 각성한 요코가 위왕의 반란을 제압하고 경왕으로 등극하는 부분이 사서의 기록처럼 짤막하게 표현된 반면 애니메이션에서는 반란을 제압한 뒤의 요코의 씁쓸한 심리라던가 스기모토 유카와의 이별 등 좀 더 새로운 장면들이 추가되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그 내용이 다음편인 대국 타이키 이야기와 조금 연결되는데, 예전에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보고 대국 이야기는 미완의 측면이 있어 궁금한 나머지 대국 관련된 부분들만큼은 책으로나마 빌려본 기억이 납니다. 보면 역자 후기에도 오노 후유미의 『십이국기』 이전 소설인 ‘마성의 아이’에 관련된 언급이 나오더군요. 『십이국기』 시리즈는 띄엄띄엄 읽었지만 『마성의 아이』는 공포소설이라고 생각해서 미리 빌려본 적 있어서 소설 이해에 도움 되었다고 할까요.
저자 후기에 보면 작가의 말이 자신은 판타지 소설은 잘 알지 못하고 ‘판타지 소설’을 써달라는 요구에 여러 고심을 하다가 ‘이방의 중국 이야기’를 쓰기로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보면 소설 상에서 묘사되는 십이국의 모습은 중국 고대와 비슷하다는 묘사가 여러번 나옵니다. 보면 나라의 제도도 옛 중국과 비슷한 것도 같은데 다만 사람들이 리목이라는 나무에서 태어나고 부모의 유전자를 물려받는 그런 설정이 아닌지라 머리색이나 눈색이 정말 다양하다는 특이점이 있어요. 보면 주인공의 머리색도 우리가 아는 적발이 아니라 진짜 빨강머리에 가깝다는 묘사가 나오고요. 일단 중국을 모티브로 했다고 하지만 실제 중국이 아니라 중국의 옛 고전소설 『서유기』나 『수호전』, 『봉신연의』에서 표현되는 중국으로 봐달라는 글이 있습니다. 보면 삽화가 중간중간 있는데 그림이 제법 섬세하고 예뻐서 눈이 갑니다. 대강 이런 분위기예요.
이 그림은 소설 마지막씬 247페이지의 삽화입니다. 케이키와 재회한 요코의 모습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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