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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십이국기 3권 : 제2부 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 리뷰

by 0I사금 2025.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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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십이국기』 3권입니다. 소설의 제1부이자 경국 왕인 나카지마 요코의 성장기는 저번 2권으로 마무리되고 이번 편은 바로 대국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애니메이션으로 접한 시기가 좀 오래되어서 기억이 흐릿한데 아무래도 애니의 흐름도 소설이 나온 순서랑 비슷하게 흘러갔던 것 같은데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소설은 처음부터 타이키의 시점으로 이야기의 서문을 여는 반면 애니에서는 보는 시청자들을 이끌어줄 대리자적인 존재가 필요해서인지 전작 주인공 요코가 경왕으로써의 운명을 받아들이고 케이키와 함께 봉산에 올랐을 때 그곳의 여선들을 만나 타이키의 이야기를 듣는 액자식 구성 형태로 내용이 진행되었습니다. 시즌마다 주인공은 분명 다르지만 요코의 비중이 커지고, 요코에게 이입하여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형식이 되는지라 『십이국기』 애니 시리즈는 요코가 모든 작품을 통틀어 주인공처럼 여겨진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을 읽었을 때에는 이 대국 타이키의 이야기는 경국 요코와는 관련 없이 독자적인 이야기로 진행되더군요. 뭔가 낯설기도 하고 각 캐릭터가 한 이야기의 중심인지라 참신하기도 하고요.

전작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를 읽었을 때에도 느낀 거지만 그때의 주인공인 요코나 타이키나 공통점이 많다고 느껴졌습니다. 일단 둘 다 십이국 태생으로 '식'에 의해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아이로 태어난 '태과'라는 점도 그렇지만 일본에서 살았을 무렵 본능적으로 느낀 것인지 이질감을 느껴서 잘 어울리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쓰거나 그들에게 상처를 입혀선 안된다는 심정으로 착하게 군다는 점 등등... 보면 어린아이가 '착한 아이'로 지내려면 그 내면에 얼마나 많은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는 것이 여실히 보인다고 할까요? 다만 요코는 경국 왕으로 선택되었다 하더라도 '인간'인지라 어느 정도 자신의 껍질을 벗어던지고 솔직해진 반면 타이키는 본성이 자비로운 기린인지라 이 착함이 단순 위장이나 껍질이 아닌 그대로라서 더 안타까운 경우라 해야 하나요? 요코가 원래 안 착한 아이란 소리는 아니고, 요코 같은 경우는 본인이 가진 개성마저도 구시대적인 부모 탓에 자유로운 부분이 좀 심하게 억눌린 경우인 것 같고 타이키는 본연의 착함이 주위 사람들의 편견으로 오해를 받는 케이스로 보이더군요. 요코는 성격 자체는 굉장히 올곧은 편인데 부모의 잘못된 양육으로 자기 의사를 표현 못하게 된 문제가 있었고요.

그런데 보면 이번 3권에서 현실에서의 타이키의 부모 - 비록 친부모는 아니지만 태과 역시 출산을 통해 태어나니까 일단은 - 역시 요코의 부모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는 것이 일단 어머니들 성격이 지나치게 주위 사람들에게 굽히며 자식들에게 약한 모습을 자주 보이는 편이라 좋은 엄마라고 하기엔 미묘하더군요. 분명 가족 중에서 요코의 어머니나 타이키의 어머니가 자식을 제일 사랑하지만 자식이 다른 가족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것, 요코는 아버지에게 타이키는 할머니에게 엄격하고 때에 따라서는 억지나 강요에 가까운 대접을 받아 그것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입힌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걱정하기도 하지만 정작 자신들 역시 주위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자기 입장을 추스리기도 힘들어해서 아이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제대로 케어해주지도 못한다는 점이요. 지나치게 순종적이고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이 어머니가 될 경우 결국 자신과 같은 입장을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안좋은 쪽으로의 대물림을 보는 느낌인데 보면 이게 단순 소설상의 일이 아니라 현실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라는 것이 좀 그렇습니다. 그래서 판타지소설인데도 이런 점 때문에 읽는 사람들에게 와닿는 구석이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코나 타이키 같은 경우 아버지 입장이 부정적으로 묘사되는 것도 비슷합니다. 애니상에서는 그나마 순화되었지만 전편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편에선 요코의 아버지가 딸의 실종을 듣고도 굉장히 냉담한 반응을 보여 '아버지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타이키의 아버지는 아예 부각 자체가 안되어 자식들에게 어떤 영향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타이키가 안국 기린 엔키에 의해 사는 곳이 발견되어 산시에 의해 이끌려 십이국 세계로 건너온 뒤에는 편안한 나날을 보냈다는 점인데요. 일단 기린이라는 종족 특성 탓인지 십이국 내로 건너와서 적응이 빠른 면모도 있었던 걸로 보이는데 다만 일본에서 '착한 아이'로 지내면서도 사랑받지 못한 기억 때문인지 여선들의 배려에 보답하지 못하는 것에 일종의 채무감을 느끼는 등 상당히 애어른스러운 면모가 보여 일찍 철 든 아이는 행복을 그대로 만끽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게 절로 소설에서 보입니다. 그리고 대국 편은 굉장히 안타까운 것이 이미 스포일러를 알고 있기도 하지만 그 끝은 상당히 비극이라는 점도 있고 거기다 이야기가 어딘가 미완에 가까운 측면이 있어 사람들의 궁금증을 매우 자아냅니다. 소설로 봐도 애니로 봐도 상당히 흥미로운 부분이 많은 이 대국은 과연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소설 상에서 타이키가 현실(일본)에서 갑자기 사라진 것을 그 상황의 사람들 입장에선 가미카쿠시 당했다고 여겨질 법 한데요. 보면 오노 후유미의 최근 나온 공포소설 중에 이런 가미카쿠시를 다룬 이야기가 많았고 그것이 일종의 도피이면서 동시에 공포를 가지고 오는 이야기들이 제법 있었는데 작가가 이쪽으로 관심이 많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면 『십이국기』 전에 나온 『마성의 아이』도 그와 관련된 소재였었고요. 그리고 판타지 성장 소설이라 그런 건지 『잔예』랑은 분위기가 매우 달라서 놀라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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