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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십이국기 1권 : 제1부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리뷰

by 0I사금 2025.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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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오노 후유미의 공포소설이 새로 나온 것이 없나 찾아보았습니다. 아쉽게도 최근 들어온 신간은 더 없어 보였는데 바로 옆에 예전부터 놓여있던 소설 『십이국기』 시리즈가 눈에 띄더군요. 『십이국기』는 예전에 애니메이션 시리즈로 먼저 접한 적이 있었는데 작가 오노 후유미의 이름은 실은 이 『십이국기』 시리즈를 보게 되면서 알게 된 경우입니다. 그런데 이 작가가 판타지 소설만이 아니라 공포소설을 많이 썼고 우리나라에서도 몇 가지 소설들이 번역되었는데 그중 가장 최근에 도서관에 들어왔던 참신한 소재로 내용을 전개했던 『잔예』나 『귀담백경』같은 공포소설들을 먼저 흥미롭게 읽었기 때문에 오노 후유미의 신작 공포소설은 더 없나 기대하고 있던 게 있었습니다. 『십이국기』 시리즈는 한창 애니가 방영될 때 저도 흥미를 가져서 번역된 소설 시리즈를 찔끔찔끔 살펴보는 수준이었고 실은 전권을 제대로 완독했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기왕 오노 후유미의 새로운 소설을 찾지 못한 거 이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재밌게 본 기억도 나서 이번에 제대로 읽어볼까 하는 생각으로 빌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관련 서적을 검색해보니 현재 도서관에 비치된 소설 시리즈는 절판된 상황이고 다른 출판사에서 새로운 표지를 하고 새 시리즈로 출간된 모양입니다. 일단 도서관에 있는 책이 낡은 것이 아니고 전권이 있는 이상 이 시리즈로 전권을 읽어나갈 생각이에요. 책을 읽으면서 옛날 본 애니 시리즈가 자주 오버랩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입니다. 관련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면서 애니메이션 초반 내용이 원작과 약간 다르다는 점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는데 일단 주인공들의 숫자가 다른데 애니메이션에선 주인공 나카지마 요코와 왕따인 스기모토 유카와 그 남자 친구인 아사노까지 우연히 휘말려 들어 이 세계로 들어가는 반면, 원작에선 요코 혼자만이 ‘케이키’에게 이끌려 십이국 세계로 넘어가더군요.

 

처음엔 주인공 숫자가 줄어들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이 애니메이션과 다르고 갈등이 줄어들어 좀 심심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제 예상과 다르게 주인공 나카지마 요코의 모험은 험난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특히 원작 소설에서는 요코가 혼자라는 상황이 강하게 드러나 고독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불신, 겪는 고난들이 거의 일인칭 시점으로 자주 드러납니다. 즉 요코의 심리에 대해 소설이 더 자세하게 보여주며 자신들에게 호감을 베푸는 척 다가왔던 십이국 사람들이 계속 배신을 하는 일이 벌어지자 그들을 경계하는 등 성격이 공격적이 되어가는 것이 바로 보입니다. 반면 애니에서는 왕따에 중2병 기질이 있었지만 실은 내면적으로 굴곡이 많던 스기모토와 생각없이 태평한 아사노에 대비되어 요코가 처음엔 무기력해 보이더라도 두 사람에 비하면 많이 차분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도 주위에 말이 통하는 사람이 있고 지켜야 할 사람이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https://www.youtube.com/watch?v=zOma_45q04A

유튜브에서 찾은 당시 애니메이션 엔딩 곡 월미풍영(月迷風影).  원판 엔딩을 찾고 싶었는데 한국판 번안곡도 괜찮은 것 같아서 올려봅니다.

 

요코가 사람들을 불신하게 된 상황도 차이가 있는 게 원작 소설에선 십이국의 사람들이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요코 자신도 왜 여기에 왔는지 알 수 없는 탓에 환멸과 분노를 느낀 경향이 있지만 애니메이션에서는 그런 점과 더불어 자신이 선택되었다고 믿은 나머지 교국의 사주를 받은 스기모토 유카의 배신으로 인해 크게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거든요. 그런데 이 스기모토란 캐릭터는 원작과 아예 다른 오리지널이라기보단 어느 정도 원작에 있는 캐릭터에서 따온 경향이 있는데 원작 소설에서 요코의 같은 반 아이들 중 아이들에게 무시당하는 왕따 소녀의 이름이 스기모토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성격의 차이가 있는 것이 애니의 스기모토는 앞서 말했듯 중2병 기질이 있고 음침하다는 이유로 미움받지만 오히려 내면적으로 다른 애들을 약간 무시하는 입장에 가까웠는데 원작 스기모토는 그야말로 아이들에게 비웃음거리가 되는 무력한 입장이며 요코와 같이 십이국 세계로 가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초반 요코가 다른 애들의 미움을 살까 봐 왕따를 방조하는 입장에 서는 등 요코의 나약하고 위선적인 면을 부각하는 정도로만 등장하더군요.

 

애니에서의 스기모토는 그 성격이 모난 점과 자신들을 죽이려 한 교국 왕의 말에 넘어가 친구였던 요코를 공격하는 등 발목을 잡고 그에게 상처를 입혀서 당시 애니 방영 시에 『십이국기』 팬들로부터 좋은 소리를 받지 못한 캐릭터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이 캐릭터가 오리지널적인 측면이 강하더라도 의미가 있단 생각이 드는 것이 요코와 대립구조를 만들어내면서 애니 특유의 분위기를 더 긴장감 있게 진행시키고 갈등을 좀 더 극적으로 전개시켰다는 데서 큰 공헌을 한 셈이거든요. 그리고 이 캐릭터가 있어서 주인공 요코의 성장이 더 두드러진 측면이 있어서 애니 오리지널이고 중반까지 악역 노릇을 했지만 개인적으로 좋게 평가했던 캐릭터였습니다. 당시 지인이 애니메이션을 먼저 보고 나중에 소설을 읽고 초반 내용은 오리지널 캐릭터들이 없어서 좀 심심하단 평가를 한 적도 있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물론 원작 소설도 주인공이 1권서부터 죽음의 위협과 험난한 위기를 겪는 등 심상치 않게 전개되지만요.

 

하여간 스기모토가 나중에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정신을 차려서 일본으로 돌아간 덕택에 어느 정도 요코와 현실 세계의 연결고리가 되며 다음 시리즈인 대국 타이키와도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생겨요. 원작에서는 요코가 아예 수상쩍은 남자(케이키)와 엮여 잠적을 해버렸다던가 하는 오해를 사는 반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스기모토가 요코의 집을 찾아가 어느 정도 사정을 설명해주는데 - 십이국 이야기는 빼고 사고로 바다에서 헤어졌다 정도로 - 그의 행동 덕에 유일하게 현실에서 요코를 걱정해 주던 요코의 어머니가 어느 정도 맘을 정리하는 듯한 태도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당시 애니에서 인상적이었던 대사가 어머니는 ‘요코는 현실에서 힘들었으니 다른 곳에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말하는 반면, 스기모토는 ‘그래도 요코는 이곳으로 돌아오고 싶었을 거’라고요. 어쩌면 요코의 심정을 가장 헤아려준 캐릭터는 스기모토가 아니었나 싶을 정도.

 

그런데 소설 상에서 드러나는 요코의 타인의 눈치보면서 좋은 아이로만 지내고 싶어 하는 성격이라던가 남편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요코의 실종을 맞닥뜨려서야 분노를 터뜨렸던 요코 어머니의 성격을 보면 바로 전에 리뷰한 자기주장을 하는 여자는 나쁜 여자라고 믿는 통념에 일침을 가한 『나쁜 여자가 성공한다』와 같은 책의 내용이 강하게 연상됩니다. 아예 책에선 요코의 아버지는 요코에게 여자에는 순종적인 것이 좋은 것이라고 강요하며 청바지도 입지 못하게 하고 요코의 어머니는 공부를 잘하는 그에게 여자애는 공부보다 집안일을 하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등 좀 시대착오적인 모습을 강하게 드러내거든요. 그런데 이런 편견을 가족들에게 강요한 것은 한 번도 반항이란 것을 못해본 그들의 책임도 없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나마 그들이 강한 감정을 표현한 것은 요코가 행방불명이 된 이후의 일인데 십이국으로 넘어간 뒤의 요코의 일대기는 그야말로 억눌렸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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