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릭시르에서 출간된 새로운 『십이국기』 6부 '도남의 날개' 편을 감상했습니다. 『십이국기』 시리즈의 여섯 번째라고 표지에 적혀 있긴 합니다만 이 숫자는 책의 숫자가 아니라 각각의 개별적인 이야기에 붙는 순서라 이야기가 단권으로 완결되는 경우가 아니라 각각 상하 두 권으로 이루어진 경우 - 예를 들면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같은 경우-는 두 권에 해당되는 이야기를 통틀어 『십이국기』 시리즈의 네 번째라고 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십이국기』 시리즈의 0편이라 표기된 마성의 아이까지 포함하면 이번 '도남의 날개' 편은 『십이국기 6』이라고 쓰여 있기는 하나 실제로는 엘릭시르에서 출판된 『십이국기』 시리즈 중에서 여덟 번째 소설이며 이것까지 포함하여 『십이국기』 시리즈가 상당수 번역되어 나온 셈이라죠.
속표지의 삽화와 책 속의 한 장면. 오른쪽 흑백 페이지는 황해 주민인 간큐와 슈쇼가 서로 가치관 차이로 다투는 장면을 묘사한 것인데 그림체가 섬세하고 예뻐서 눈 호강 되는 장면이기도 했고 왠지 예전 출판본보다 삽화가 더 늘어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도남의 날개' 편은 애니화 된 작품도 아니고 따로 소설을 빌려본 적은 한 번 뿐인지라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상세한 이야기는 기존 출판된 책의 감상에서 적은 바 있습니다. 새로운 번역본이 외래어 표기법에 충실한지라 이름 표기가 달라져서 조금 낯설기도 했습니다만 이름 자체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 (예를 들면 슈쇼우>슈쇼, 리코우>리코) 읽으면서 딱히 문제 되는 것은 없었습니다. 읽어나가면서 슈쇼가 독설가에 가까우면서 은근 맞는 말만 하기 때문에 그 캐릭터가 밉지 않다고 다시 느끼기도 했고요. 보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슈쇼의 입을 빌려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특히 처음엔 슈쇼에게 집적거리던 멍청한 남자애한테 쏘아붙이는 장면이나 가솔인 게이카가 잔소리할 때 한 소리 해 주는 장면은 다시 봐도 속 시원하다고 해야 하나요.
책에 실린 또 다른 삽화로 주의 왕자 리코(옆은 간큐)와 견랑진군의 모습입니다. 사진이 좀 흐리게 찍혔지만.
슈쇼의 캐릭터는 나이 대에 비하면 상당히 똑똑한 편이라 상대 어른들의 허를 찌르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어린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이 모르는 것에 모른다고 인정하는 부분을 보면 아이 같으면서도 상당히 어른스러운 구석도 있다는 것이 보여서 확실히 현실에는 있기 어려운 캐릭터라는 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슈쇼가 승산을 위해 겪는 일들을 본다면 이건 『십이국기』 내에서 왕이 사라진 나라가 어떻게 기울어져 가는지를 묘사해주는 격인데, 대국처럼 크게 헬게이트가 일어난 것도 아닌 서서히 기울어져 가는, 그렇다고 살만한 나라는 아닌 세계의 모습이 어떤지를 보여준다고 할까요? 대국 같은 경우는 다음 편에서 왕과 기린에게 동시에 사고가 생기면 어떤 식으로 나라가 망해가는지 상세하게 알려주는 편인데 반면 다른 나라들 아마 왕이 없는 나라, 요코가 오기 전 경국이나 현재의 교국 같은 곳은 어떤 식으로 백성들이 살아가게 되는지 슈쇼가 왕이 되기 전 공국의 상황으로 파악이 가능한 것도 있었고요. 요마가 창궐하여 민가에서 사람이 죽어가고 사람들끼리 사기 치거나 강도질을 벌이는 등 민생이 피폐해져 가는 모습이 묘사되는 편입니다. 그 와중에서 살만한 사람은 또 살고 있는 것도 현실적.
그리고 상당히 세계관에 대한 설명이 전권에 비하면 상세하게 나온다는 느낌을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궁금해했을 승산하기까지의 과정은 황해에서 슈쇼가 어떤 일을 겪는지를 통해 보여주고 있고, 일반 백성들의 삶은 물론 황해의 주민들의 삶이라거나 요마나 신선의 종류도 한번 씩 언급되기도 하고요. 특히 주염이라 불리는 요마가 등장하는 부분은 인간 시점이 아니라 요마의 시점으로 사람 사냥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어 읽으면서도 상당히 섬뜩한 느낌을 주고 있어요. 작가분이 원래는 공포소설을 주력으로 쓰신 분이라 그런가 싶기도 하고요. 읽으면서 새삼 놀랐던 부분은 이 『십이국기』 세계 내에서도 노비란 것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태강'에는 사람을 사고파는 것을 엄격히 금지한다고 나와있지만 떠돌아다니는 부민들 같은 경우는 먹고살기 위해 부잣집에 가솔로 들어가기 위해 자신의 신분증인 '정권'을 부러뜨려서 관의 보호를 포기하는 행위를 한다는 설명이 나오는데 현실에서도 노예제는 금지되어 있지만 여러 가지 꼼수를 써서 착취를 정당화하거나 은밀한 곳에서 노예나 마찬가지인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이런 부분에서 소설이 은근 현실 반영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책 > 소설과 만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CSI 마이애미 #1. 플로리다 겟어웨이』 리뷰 (0) | 2025.01.26 |
---|---|
『십이국기 8 :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 리뷰 (0) | 2025.01.25 |
『십이국기 5 : 히쇼의 새』 리뷰 (0) | 2025.01.24 |
『십이국기 4 :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下』 리뷰 (0) | 2025.01.24 |
『십이국기 4 :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上』 리뷰 (0) | 2025.01.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