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십이국기』 '도남의 날개'를 읽은 뒤에는 다른 시리즈가 들어올 기미가 없어 한동안 잊고 지냈는데 일단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하자마자 반가운 마음에 꺼내들긴 했습니다. 이번 책의 내용도 『십이국기』의 단편집을 제외한 시리즈 중 큰 줄기 가운데 타이키 탈환을 다루는 내용이란 것을 알았는데 구 번역본에선 '황혼의 물가, 새벽의 하늘'이라 제목이 번역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번 엘릭시르 버전은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이란 제목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제목의 어감이 좋기로 치자면 이쪽 엘릭시르 버전이 맘에 들더라고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을 해보니 제가 마지막으로 읽은 '도남의 날개' 같은 경우는 시리즈의 숫자로 따졌을 때 6부에 해당하는데 (물론 '마성의 아이'가 0부로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이 두 권으로 나누어져 나왔음에도 4부 하나로 통일되었단 것을 생각하면 시리즈의 숫자는 일반적으로 세었을 때 두 권을 더하긴 해야겠지만) 이제 읽게 된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은 8부고, 분명 중간에 빠진 것이 하나 있어 아리송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서 혹시 신간이 더 있나 찾아봤어도 책이 나오지 않았고 혹시 착각을 한 건가 싶어서 돌아오긴 했는데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더니 구 번역본에서 마지막권으로 나왔던 '화서의 꿈'이 7부로 먼저 발간된 것이더라고요. 아마 도서관에선 검색도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7부 화서의 꿈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것으로 추정되며, 8부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이 먼저 들어온 것 같더라고요. 좀 아쉽긴 했지만 일단 『십이국기』 신간 중 가장 기대했던 것은 이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이니 만족하며 책을 대출했습니다. 왠지 빌려오면서 책의 두께가 다른 책들보다 두껍단 생각을 했는데 구판에선 두 권으로 나왔던 책이고 내용도 제법 스케일이 큰 편이라 그러려니 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좀 오래되었지만 애니메이션에선 이 타이키 탈환 이야기는 미완의 이미지라 그런 건지 아니면 애니메이션 제작사의 사정인지 '도남의 날개'와 함께 영상화되지 않은 부분인데 책을 다시 읽어가면서 전편들과는 다른 그 암울함에 새삼 다시 놀라기도 했습니다.

이번 새로 나온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의 컬러 삽화 이미지입니다. 그동안 큰 시리즈에서 왕과 기린들이 주연으로 활약한 것과는 달리 이번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의 진주인공은 바로 대국 장군 리사이라고 봐도 될 듯.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의 구성은 리사이가 현재 처한 상황과 과거의 사건이 회상되어 나오는 액자식 구성, 그리고 타이키(번역본에선 외국어 표기법에 따라 다이키)의 현상황 이 세 가지가 반복되어 나오는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일단 리사이의 비중도 비중이겠거니와 심리 상황과 그 성장까지 자세하게 나오는 한편, 전편의 주인공인 요코나 엔키 같은 경우는 한 단계 물러서서 조력자의 포지션에 머무르기 때문에 조연과 같은 위치이고 (물론 작중 세계관에 대한 의문과 현재 상황에 대한 판단과 해결을 이 둘이 내리기에 이 둘의 비중도 적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포지션으로는 그렇단 이야기) 이번 편의 주인공은 리사이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제목인 '황혼의 기슭, 새벽의 하늘'이란 말도 어찌 보면 리사이의 현 상황, 더 나아가선 대국 사람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은유가 아닐까 했는데 리사이와 대국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날이 저물어가는 황혼이지만 그 끝이 보이고, 곧 새벽과 같은 상황이 올지 모른다는 의미를 내포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십이국 세계로 돌아온 타이키가 뿔과 기린의 힘을 거의 잃어버렸어도 '언제부터 우리가 하늘에 기댔으며, 대국의 백성이 언제부터 하늘의 것이 되었느냐'며 마음이 약해진 리사이를 타일러 대국으로 떠나는 부분을 본다면 이 둘의 앞날이 평탄할 것 같진은 않아도 타이키가 그렇게 멘탈이 약한 존재는 아니요, 힘을 잃었어도 기린은 기린이라는 것이 드러난다는 점이 보였는데 작중 리사이는 하늘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왜 대국을 고통 속에 방치하느냐며 원망하는 소리를 했고 경왕인 요코는 하늘도 실수를 할 수 있으며 완벽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결국 현 상황을 가지고 하늘이나 초월자든 누군가를 원망하는 것은 소용없고 어쩌면 작중에서 작가가 누누이 이야기했듯, 지금 상황을 해결할 방법을 스스로 생각하라는 주제를 보여주고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일단 다시 내용 본편으로 들어간다면 타이키는 어찌 됐든 무사히 탈환이 되었다 하더라도 앞으로 그들이 해결해야 하는 이야기가 산적해 있고, 작중 해소되지 않은 떡밥들도 상당한데요. 『십이국기』 독자들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궁금해 마지않는 태왕 교소우의 행방, 살아있기는 하나 어디에서 무슨 상황이 닥쳐서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건지가 가장 큰 의문이며, 모반을 일으킨 아센의 목적이 정확하게 무엇인지가 두 번째입니다. 작중에서 아센은 교소우가 가진 왕좌와 대국 그 자체에 욕심이 없어 보이며 오히려 그것들을 증오해서 파괴한다는 듯한 묘사가 나오므로 아센의 동기가 뭔가 원한에 가깝다는 것이 드러나는 데다 심지어 아센을 적대하는 사람들이 세뇌당하듯 아센의 편에 선다는 기묘한 상황까지 더불어 아센의 정체까지 무엇인가 의문이 남을 수밖에 없어요. 하도 궁금해서 예전에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십이국기』에 대한 추론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다. 좀 오래 전이긴 하지만 그중 좀 가능성 있다 싶은 글들을 발견한 적이 있었거든요.
아센의 정체에 대한 글들 중 좀 설득력 있는 설은 일단 두 가지로, 아센은 인간을 흉내 내는 요마로 인간들을 세뇌할 수 있는 것은 주술을 쓰기 때문이라는 설이 하나, 또 하나는 아센은 실은 교소우의 혈연이라는 설입니다. 일단 요마와 인간의 공존은 견랑진군 에피소드에서 보여준 적이 있어서 가능성 있단 생각이 들었는데 다만 견랑진군이 버려진 아이 출신으로 현재는 황해를 떠돌며 인간과 거리를 두고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 요마가 다른 곳도 아닌 한 나라의 왕궁에 거처할 수 있는가, 사령을 다루는 기린이 있는데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점이 따라오긴 합니다. 그래서 남은 가능성 있는 설 중 하나가 아센은 실은 교소우의 가까운 혈연, 자식일 수 있다는 추측인데 교소우가 과거 부부의 연을 맺었는지는 확실하게 나오지 않으므로 확신할 수 없지만 대국의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식을 잃었다가 나중에 장수가 되어 재회를 했다거나, 『십이국기』 세계관에서 선적에 등록된 사람들은 일단 나이를 먹지 않는다는 점도 있고 아센의 원한이 왕좌에 대한 탐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증오에 가깝다는 점들을 보면 나름 설득력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라 진실은 언젠가 다음 시리즈가 나와봐야 알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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