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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비소설 기타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 리뷰

by 0I사금 2025.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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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예전에 한국의 옛이야기, 구전설화를 분석한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라는 서적을 읽고 감명을 받아 리뷰를 길게 쓴 바 있습니다. 책을 읽었을 당시 제 상황이 많이 좋다고는 할 수 없었던 시기였기 때문인지 이 책에서 위로를 많이 받은 적이 있었는데 차라리 흔해 빠진 자기 개발서보다는 옛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서 시대가 변하더라도 본질 자체가 변하지 않는 이야기 속에서 뭔가 의미를 찾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은 똑같이 가공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하지만 양산형 자기 개발서가 현실에 불가능한 성공을 잡으려고 발버둥 치는 밑 빠진 독이라거나 속 빈 강정이라면 옛이야기는 그래도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뭔가가 와닿고 또 사람들이 뭔가를 담았다는 생각이 들었으되, 그것이 허망한 성공담이 아니라 사람의 삶에 대해 나름 통찰을 담았다는 생각이 깊게 들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에 가서 이 책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를 발견했을 때 바로 떠올린 책이 저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었습니다. 다만 책의 지향점이 각각 다른 것은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들로부터 전해지는 이야기 속에 담긴 삶에 대한 통찰이라면 이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는 옛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무의식과 인간의 성장에 대한 일면을 깨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사람의 본질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던가 인간이 어떤 식으로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을 해 나가는지 고찰하는 점은 두 책이 많이 비슷하다고 느꼈는데  재미있게도 저자의 글에 따르면 이 책의 참고 자료 중에 하나가 앞서 언급한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의 저자분이 쓰신 책이라는 점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두 책의 유사성을 느낀 것도 이런 점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싶어요.


책에서 알려주는 흥미로운 부분은 우리 옛이야기를 인간의 무의식, 한 사람의 인간이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의 과정을 은유하거나 혹은 등장하는 남녀의 사랑 혹은 사악한 남자와 여자의 방행, 대립 등이 단순 사람들이 생각하는 로맨스나 선악 구도를 담은 것이 아닌 남성 내면의 여성, 여성 내면의 남성 흔히 융 심리학에서 아니마와 아니무스라고 불리는 그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분석하기도 한다고요. 어떤 이야기에서 악을 물리치고 행복을 얻는 이야기들은 자기 내면의 숨겨진 부분을 인정하고 변화를 받아들여서 성숙해지는 과정, 즉 어른으로 성장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으되, 어떤 이야기는 전래 동화에 사람들이 흔히 갖는 편견과는 다르게 상당히 불행한 결말, 배드 엔딩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결말로 끝나버리는 이야기는 이런 남성성이나 여성성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고 성장하지 않아 파국을 맞이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요.


하나 더 책에서 지적하는 중요한 부분은 옛이야기가 편견이나 차별적인 관념, 혹은 가부장적인 인식을 재생산할 수도 있다는 비판에 대한 지적입니다. 실제로 옛날 동화들은 겉으로 보기엔 멍청한 인간이 운만 좋아서 신분 상승을 하거나 수동적인 여자가 좋은 남자를 만나 팔자를 편다고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많으나 이런 이야기들을 외피만 보고 해석하는 것은 일종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고요. 민담을 포함하여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이야기는 자본주의나 봉건주의 더는 가부장제 이전부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던 '비정치적'인 이야기로 어떤 의도를 가지고 창조된 것이 아닌 사람들의 무의식이 가는 대로 만들어진 공통적인 이야기이며 민담을 이해할 때는 가치 중립적인 태도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것. 실제로 현대에 재생산된 이야기 속의 신데렐라 콤플렉스나 무조건적 신분상승이라는 속물적인 인식은 옛이야기의 본질을 놓치고 겉만을 차용한 후대에 의해 덧칠이 되었을 가능성이 없지도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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