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정년이』 4화 리뷰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번 4화는 일단 예고편에서 암시된 것처럼 주인공인 윤정년한테 큰 난관이 찾아왔기 때문에 조금 각오(?)를 하고 보기는 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답답한 부분이 많았었던 회차였던 것 같네요. 일단 오프닝부터 짚어보면 윤정년의 어머니 공선과 강소복의 만남으로 인해 과거 서사가 약간 더 풀리긴 했는데 공선이 소리꾼을 그만두게 된 계기에는 아무래도 성대에 문제가 생겼다는 게 원인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오랜만에 재회한 강소복에게 자신은 소리를 하고 싶어도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요. 한때 각광받던 천재이긴 했지만 성대 결절 등을 이유로 노래를 할 수 없게 되었다면 이후 공선의 삶은 어느 정도 비참했을지, 주위로부터 어떤 취급을 받았을지 대강 상상이 가는 부분도 있었고요.
또 이번 회차에서 놀랐던 점은 당시 시대 배경으로써 '국극'이라는 분야 자체가 문화적으로 낮게 취급받는 현실이 묘사되었다는 점인데요. 강소복 단장이 왜 매란국극단의 이름을 팔지 말라고 단원들에게 신신당부를 했는지 이해가 갈만한 내용이 작중에서 등장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시대를 생각해 보면 저 때가 전쟁이 끝난지 얼마 안 된 시점이고, 과거 시절인지라 지금보다 더 사대주의 경향이 강했을 테니 자국의 문화에 대해선 편견을 가지고 있을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또한 50년대 배경인지라 시대적인 한계라든지 편견이라든지 이런 것이 묘사되는 장면도 있던데 매란국극단에서 퇴출된 이후 방송국 피디에게 연락한 윤정년이 패트리샤 김이란 가수에게 레슨을 받을 때 이혼에 대해선 낯설어 하며 여자가 참아야 하는 줄로만 알고 있는 장면이 그렇더라고요.
하지만 패트리샤 김이 이혼으로 불이익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자신다움을 잃을 수 없다는 말이나, 그 말에 뭔가 감명을 받는 듯한 윤정년의 모습을 본다면 이때의 경험이 결국 윤정년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역할이 되는 듯. 일단 국극 단원이 되는 걸 반대하던 어머니 공선의 이야기는 윤정년의 고집으로 어떻게 넘어가긴 했는데 문제는 윤정년이 친구인 홍주란을 대신하여 카페 알바를 하다가 가수 대신 노래까지 부르게 된 일은 예상대로 화근을 부르게 됩니다. 결국 그것이 단장인 강소복의 귀에 들어가 변명의 여지도 없이 쫓겨나는 결과를 맞이하는데요. (그런데 카페 알바를 하는 걸 단장에게 알린 게 누구인지는 불명) 여기서 찡했던 점은 실제로 카페 알바를 했던 건 홍주란이며, 홍주란의 사정을 알고 있던 윤정년이 끝까지 그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서 홍주란을 보호하려고 했다는 점이었습니다.
홍주란을 보호하는 윤정년의 모습은 그야말로 왕자님 같은 포지션이라 혹시 원작에서 윤정년과 로맨스를 구축했던 부용의 캐릭터가 홍주란에게 일부 간 것은 아닐까 추측이 들었을 정도. 어찌 보면 『정년이』에서 홍주란의 포지션은 과거 인기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연생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 싶기도 했고요. 이번 4화는 아무래도 주인공의 고난이 이래저래 닥치는 회차라 고구마 상황은 피치 못하긴 했지만 이번 4화는 윤정년과 다른 여캐들의 케미를 보는 재미가 있었단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3화에서 놀라운 연출을 보여줬던 공연이 없다던가 항상 자신만만하고 타인들에게 꿀리지 않던 윤정년이 환경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국극단에서 퇴출된 이후 상대적으로 주눅이 든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아서 좀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일더라고요.
이런 걸 보면 윤정년이 그동안 매란국극단에서 룰을 부수며, 현실이라면 민폐라고 생각을 했음에도 드라마를 보면서 저 캐릭터를 꽤 응원했구나 싶었달까요. 가수 데뷔 전 윤정년은 방송국 피디를 따라 사교모임에 끌려다니게 되는데 여기서 매란국극단 사람들과 마주하면서 기가 죽은 모습도 좀 안쓰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또 이 자리에서 윤정년은 허영서가 자기 어머니와 갈등을 빚는 장면 - 자기들 기준에 못 미치는 국극을 한다며 어머니에게 평가절하당하는 허영서의 모습을 우연히 엿보게 되고 이로 인해 허영서에게 오해를 사고 마는데요. 하지만 여기서 자신의 뺨을 때리는 허영서에게 지지 않고 도로 갚아주며 원래 성격을 보여주는 등 이 둘이 맞붙는 장면이 왜 이렇게 짜릿했는지 모르겠네요. 윤정년과 홍주란이 헌신적인 쌍방 같다면 윤정년과 허영서는 라이벌이면서 동시에 치열한 혐관 로맨스 같다는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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