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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기담수집가』 리뷰

by 0I사금 202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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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 책을 빌릴 때는 보통 단편소설 부류를 찾았기 때문에 표지에 장편소설이라고 쓰여있는 이 책을 피했습니다. 책을 읽을 때는 단편이 좀 더 읽기 쉽고 재밌다는 생각 때문에요. 그런데 『기담수집가』는 직접 읽게 되니 장편소설은 맞지만 총 7가지의 이야기들이 다르게 등장하면서 동시에 그 내용이 이어지는 일종의 연작소설이라고 봐도 되겠더군요. 총 7가지의 이야기의 제목은 차례대로 「의뢰인 No. 1 자기 그림자에 찔린 남자 - 의뢰인 No. 2 거울 속에 사는 소녀 - 의뢰인 No. 3 마술사의 슬픈 예언 - 의뢰인 No. 4 사라져 버린 물빛 망토 - 의뢰인 No. 5 겨울장미의 비밀 - 의뢰인 No. 6 금안은안사안(金眼銀眼邪眼) - 의뢰인 No. 7 모든 것은 기담을 위해」 이런 제목으로 진행됩니다. 


이 이야기들은 개별적이면서도 마지막 일곱번째 이야기에선 서로 겹치는 구성을 보이는데, 첫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마지막 일곱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에게 어떠한 확신을 심어주게 되고, 여섯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일곱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과 밀접한 관련이 있지요. 개인적으로 개별적으로 진행되는 이야기가 어떤 고리를 통해 연결이 될 수 있는 구성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인데 소설에서는 에비스라는 수수께끼의 인물이 신문에 무시무시한 기담을 수집한다는 광고를 내고 그 광고를 본 일곱 명의 사람들이 자신이 인생에서 겪은 기묘한 이야기를 에비스에게 이야기하는 구성입니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은 그들은 단순히 상금만이 아니라 자신이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의문과 답답함을 누군가에게라도 하소연하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지요. 그리고 그 이야기의 실마리를 풀어내는 건 에비스의 시종인 히사카지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그들이 겪은 이야기가 수수께끼의 기담이 아니라 실은 인간이 벌인 사건에 불과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깨우치게 합니다. 기담의 사전적인 뜻은 '이상하고 괴상한 이야기, 이상야릇하고 재밌는 이야기' 정도로 얘기할 수 있는데 사람들이 으시시하게 여기는 도시전설이나 괴담도 크게는 이 부류에 들어가는데요.


소설 내에서도 입찢어진 여자에 대한 언급이 나오더군요. 이 입 찢어진 여자가 우리나라로 건너와서 빨간 마스크가 되었는데 것보다 좀 더 고유의 것을 찾자면 홍콩할매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싶던데요. 즉, 여기서 기담은 자신은 겪지 않고 남들이 겪었다고 전해지는 놀라운 이야기, 사실이나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데 따지고 보면 오히려 사실이나 진실과 거리가 멀지만 사람들에게 으레 믿어지는 그런 이야기를 통틀어 기담이라고 할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대게 자신은 겪지 못한 이야기이기에 그 공포나 신비감이 더해지기 마련이니까요. 


각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은 자신이 겪은 기담이라고 믿는 일화의 이면을 에비스의 시종인 히사카로 하여금 깨닫게 되는데 「의뢰인 No. 3 마술사의 슬픈 예언」, 「의뢰인 No. 5 겨울장미의 비밀」의 주인공들은 그동안의 의문이 풀려서 마음을 정리할 수 있게 되고, 「의뢰인 No. 1 자기 그림자에 찔린 남자」, 「의뢰인 No. 6 금안은안사안(金眼銀眼邪眼)」의 주인공들은 현실의 복잡한 문제가 그로 인해 풀리게 되기도 하며, 「의뢰인 No. 2 거울 속에 사는 소녀」, 「의뢰인 No. 4 사라져 버린 물빛 망토」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믿음이나 환상이 깨져버린 것에 실망하기도 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이 이렇게 세가지로 나뉜 것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기담'에 갖는 감정이 달랐기 때문인데, 미스터리한 사건 때문에 공포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사람인 경우 그 미스터리가 풀리면 자신이 별것도 아닌 것으로 초조해했다는 것을 알고 안심할 수 있지만 그 기담을 영양분 삼아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싶었던 사람인 경우는 좌절하게 되는 거 같더군요. 두 번째, 네 번째 의뢰인의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고 할까요. 하지만 개인적으로 현실에 발붙이지 못하고 허황된 것을 쫓을 바엔 일찍 현실을 깨닫고 새 출발 하게 하는 것이 더 나은 일이라고 여겨졌는데 다섯 번째 의뢰인은 오히려 미스터리가 풀리게 되자 새 삶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되거든요.


새삼스럽게 하는 생각이지만 기담의 주인공이 되어 자신을 특별하게 여기고 싶어하기 보단 자신도 남들과 다를 바 없으며 자신이 특별한 만큼 남도 특별하다는 생각을 하고 사는 게 살아가는데 더 이로울 거 같더라고요. 책 속에 등장한 일곱 명의 사람들에게는 은연중에 그런 특별함을 간직하고 싶어 하는 공통점이 보이던데 그들이 만약 그 기담의 주축이 되었다면 그 끝이 결코 행복하진 않았으리라는 추측도 가능하더군요.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진정 기담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평범한 의뢰인들이 아니라 좀 더 초월적인 인물들이었죠. 기담이라는 것이 성립가능한 요인도 그런 초월적인 존재를 현실 속으로 끌어들이기에 가능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기담이라는 제목에 이끌려 봤지만은, 자신이 기담만큼 신비로운 존재가 되려는 생각은 말자는 교훈을 느낄 수 있었달까요? 신비로운 이야기나 기적적인 이야기는 그렇게 쉽게 일상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니까요. 물론 소설 속의 인물들에게 에비스라는 신비로운 인물이 나타났지만 기담의 중심은 단연 그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일부가 될 테니까요. 그리고 기담이라는 것 자체가 '있을 법하지만 실제로 일어나기 힘든 이야기'라면 그 기담 속의 주인공처럼 된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도 결국 불분명한 상태로 던져버리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단순히 기담을 좋아한다면 그 이야기를 즐기는 것에만 국한하고 자신에게 확실한 현실에 충실해야 한다고 이 소설이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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