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 떠도는 괴담들 중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번역된 괴담들이 많은데, 이런 경로를 통해 '백물어'라고 하는 괴담이 있는 걸 최근에 알았습니다. 아마 이 백물어라는 괴담은 사람들이 모여서 한 사람씩 괴담을 이야기하고 마지막엔 유령이 등장한다는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런 류의 괴담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 괴담을 알고 있어서 이 책의 제목에 끌렸나 봅니다. 그리고 단순히 단편집이라고 생각해서 빌려온 이유도 있고요. 근데 정확하겐 단편이라기보단 에피소드별로 나누어진 사건들을 해결하는 네 명의 주인공 이야기더군요. 책을 다 읽고 나서 느낀 것은 예전에 읽은 일본 소설 『기담수집가』와 어딘가 비슷하다는 느낌입니다.
기담이나 괴담 류의 신비한 이야기 같지만 그 본질은 실은 인간의 저지른 추악하고 슬픈 사건이고, 책 속의 주인공들이 그 진실을 파헤쳐간다는 점에서요. 하지만 『기담수집가』와 『항설백물어』는 상당히 다른 구도를 취하는데, 『기담수집가』는 한 에피소드의 주인공들이 자신이 겪은 기이한 이야기를 에비스라는 인물에게 의뢰하면서 그 사건이 기이한 일이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꾸며놓은 사건이라는 것을 밝히는 것인 반면 『항설백물어』의 주인공들은 좀 더 주체적으로 기담을 끌어들여 추악한 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즉 『항설백물어』의 기담은 사건을 해결하는 일종의 도구로 존재하지요. 패턴이 반복적인 것은 비슷합니다. 처음은 기담과 같은 이야기지만 나중에 진실이 밝혀진다는 구조예요.
검색을 해보니 『항설백물어』는 실제로 전해지는 일본의 괴담집 『회본백물어』에 등장하는 「아즈키아라이, 하쿠조스, 마이쿠비, 시바에몬 너구리」라고 하는 7가지 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설명이 되어있더군요. 어디서 본 이야기지만 일본만큼 괴담이나 요괴, 귀신 이야기가 넘치는 나라가 없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일본 소설 중에 이런 공포 소설이 많은 것도 방대한 자료가 전해져 오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담이나 괴담 매니아인 입장에서 이런 점이 약간 부럽기도 하고요. 한 가지 덧붙이자면 『항설백물어』는 배경이 현재가 아니라 옛 일본이기 때문에 일본사나 일본문화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읽다가 인물들을 구분하지 못해 헤매거나 용어를 잘 알지 못해 이해하기 힘들 거 같습니다.
물론 주석이 자세하게 달려 있긴 하지만 승려와 신관의 흉내를 내며 부적을 파는 사람을 뜻한다는 '어행사'나 '신탁자'나 인형사인 '산묘회' 같은 용어는 처음 보면 낯설 수밖에요. 눈여겨 볼 점은 이 소설의 결말이 악인들이 징벌받는 것으로 끝난다는 점이 많이 통쾌한데, 주인공들이 징벌을 내리기보단 자신이 저지른 죄를 못 견뎌 자업자득으로 파멸하는 경우더라고요. 물론 범인들 중엔 악인만이 아니라 이상심리로 괴로워하는 좀 안타까운 사연도 있었지만요. 으스스한 이야기, 옛 시대를 배경으로 한 고풍스러운 느낌도 나는 이야기, 추리 소설 풍의 이야기를 좋아하신다면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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