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동양신화』 1권은 창조- 전쟁- 태평성대-치수 이야기 그리고 간간히 여신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뤘다면 이번 2권에서는 서사적인 이야기들 보다는 신화 속의 기이한 인물, 동물, 식물, 사물 그리고 사람들이 꿈꾸던 이상향들에 대한 설명이 주를 이룹니다. 대개 중국 하면 중화=한족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실제 중국은 수많은 이민족들로 이루어진 나라이고 당연히 신화도 다양한 민족들의 신화가 혼합되어 있는데 이 책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신화는 동쪽의 동이(東夷)계 신화와 서쪽의 화하(華夏)계 신화로 구분 지을 수 있다고 합니다.
동이계 종족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은 민족이며, 화하계 종족을 대표하는 것인 주 민족이라고 하는군요. 다만 중화주의가 중국에 너무 강박적인 탓에 은과 주의 시조신화와는 다르게 다른 민족들의 신화를 알게 모르게 폄하하는 시선도 있기 때문에 신화를 감상하면서 이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중국 내의 여타 민족의 시조신화는 대부분 토템신앙의 영향을 받아 그 시조 이야기에 짐승과의 접촉이 대부분 등장하는데 이를 한족이 기록하면서 이민족의 야만성으로 내려보려 하는 시선도 있었다는 것이죠.
이번 2권에서는 중국 내 이민족들의 신화와 산해경에 등장하는 많은 요괴와 신들 그리고 기이한 나라들의 이야기가 등장하면서 중국신화를 접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을 일러두고 있는데, 기이한 동물과 나라, 민족들의 모습은 고대인들의 무한한 상상력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타민족에 대한 기형적인 묘사를 하면서 은연중에 중화주의를 강화하려는 측면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비슷하게 신화를 이용하여 중화주의를 고수하려는 정치적인 경향도 현재 중국에 존재하고 있다는 점도요. 신화를 이용한 자민족 우월주의는 어느 나라나 있다고 보는 편이지만 중국 같은 경우는 이것이 크게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위험이 있어요.
그리고 우리나라의 신화 속 요소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많지만 알려진 것과 다르게 우리나라의 신화 속 요소가 중국에 영향을 건네준 것도 있다는 것이 눈에 띄는데요. 예를 들어 고구려 신화 속의 바람의 신 '비렴'은 단군신화 속 풍백과 같은 신인데,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니라 그 이름 '비렴'이 우리말 바람과 같은 어원에 있을 가능성으로 보아 우리나라 고유의 신으로 추측된다는 사실입니다. 이 비렴은 벽화에서 사슴 비슷한 모습을 한 탓에 전설 속의 신수인 '기린'으로 오해를 많이 받았다는군요. 본디 신화나 전설은 나라와 민족끼리 영향을 주고받는 것이지만 일방적으로 영향을 받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이번 2권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산해경'입니다. 중국신화 속의 모든 기이한 동물들은 여기에 기록되어 있는데 전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봤다가 반도 못 읽고 반납한 기억이 있었는데요. 왜냐면 '산해경'은 서사구조의 신화책이 아니라 백과사전식으로 기이한 동물과 요괴의 이름, 생태, 묘사를 설명해 주는 책이라 읽을 때 매우 지루하게 생각했거든요. 이번 '이야기 동양 신화' 2권에서는 산해경에 등장하는 기이한 동물들의 이름과 묘사만이 아니라 왜 고대인들이 그런 동물들을 생각했는지에 대한 추측도 들어있어 읽기가 수월했습니다.
책의 마지막은 고대인들이 꿈꾸던 낙원과 저승의 상반되는 모습으로 마무리됩니다. 생각보다 의외였던 것이 동양인들은 서양인에 비하여 죽음에 대해 더 관대한 시선을 보내지 않았나 싶었는데 오히려 이 책에서는 저승을 다스리는 위압스런 존재들과 죽음을 몰고 오는 위험한 존재들 그리고 땅 밑에 존재하는 죽음의 세계가 등장하면서 오히려 고대인들이 가졌던 죽음에 대한 압박스런 두려움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마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순환과 윤회에 대한 믿음은 후대에 불교가 들어오면서 퍼진 것이라는군요.
이렇게 해서 중국신화를 오래간만에 통째로 복습하는 동시에 새로운 이야기도 더 접하게 되었는데요. 눈여겨볼 점은 이 책의 마지막 저자의 글에서도 있었습니다. 저자의 글에 보면 학문의 세계에서도 강대국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을 우리가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중국이 설령 중화주의적 목적을 위해 신화를 이용한다 해도 이 신화는 중국 하나만의 것이 아니며 동양 대륙 전반에 걸쳐져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 두지 않으면 안 될 듯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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