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나 전설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방법에는 신화나 전설의 소재를 차용한 창작물을 읽거나 아니면 신화의 모티브를 차용한 영화나 소설, 혹은 일상생활의 이야기 등을 예시로 들면서 설명해 주는 책을 읽는 게 좋더라고요. 이미 알게 모르게 신화나 전설은 어린 시절 동화책으로도 접하거나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내용은 익히 아는 경우가 많고 그래서 줄거리만 요약한 텍스트를 다시 읽는 건 좀 지루하게 여겨지기도 하기 때문에 신화와 전설에 나름 새로운 해석을 덧붙이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 드는데 『우리 곁에서 만난 동서양 신화』가 딱 그런 종류의 책입니다. 이 책은 내용을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동서양의 익숙한 신화들을 풀어주는데 그 주제를 나누면, 영화/그림/절(사찰)/길/일상 이렇게 다섯 가지가 됩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굉장히 유명한 영화 『글래디에이터』나 『반지의 제왕』, 『매트릭스』 같은 영화가 나오는데 이런 식으로 사람들이 익히 아는 작품으로 적극 예시해 준다면 신화원형비평의 모습을 더 알기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참고로 신화원형비평이란 신화의 원형이 소설이나 영화 같은 창작물에서 재현된다고 보고 해석하는 방법을 일컫습니다. 책에선 그리스신화와 북유럽신화와 같은 서구신화만이 아니라 한국의 신화와 인도신화, 중국신화, 일본신화와 같은 대표적인 동양신화도 다양하게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동양신화 중에서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신화나 중국신화완 달리 일본신화나 인도신화는 많이 낯선 모습이더군요.
아마 익히 알려지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은 인도신화와 같은 경우는 그 신화의 밑바탕을 이루는 사고관이나 세계관이 우리들이 신화관과는 많이 다른 모습도 있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쉽게 지나치는 일상 속의 신화, 우리 신화 속의 성주신들이 집을 지키게 된 경위, 요일을 뜻하는 단어들은 북유럽 신들의 이름에서 따온 거라든가 구급차에 그려진 뱀의 모습이 그리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모습에 따온 거라든가 서양에선 사과가 동양에선 복숭아가 신성한 과일로 여겨지게 된 이야기 등을 설명해주고 있어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건 신화가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 사는 익숙한 곳에서도 많이 깃들어있다는 걸을 반증하는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신화의 본질은 가끔 상상력을 자극하는 멀리 사라진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모습을 탈바꿈하는 지속불멸한 것이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언급되는 우리나라의 성주신 혹은 가택신들은 저승사자인 강림차사와도 인연이 깊습니다. 본래 가택신 이야기를 다룬 문전본풀이는 아버지 남선비의 외도로 망한 집을 어머니 여산부인이 부엌 조왕신으로, 어머니의 원수를 갚은 일곱 아들들이 문전신으로, 여산부인을 살해한 못된 첩인 노일제대귀일의 딸이 측간신으로 변하여 지키게 된 이야기지요. 우리 옛말에 부엌과 측간이 멀수록 좋다는 말은 위생관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신화가 밑바탕이 된 이유도 있을 듯해요.
또 이 문전신과 조왕신은 강림차사가 염라대왕을 잡으러 갈 때 도움을 주는 것으로 다시 등장하는데요. 본디 강림차사가 현세에 있을 때 첩을 여럿 둔 인간이라 자기 본부인을 등한시했는데, 고을 원님이 그에게 과양생이 부부의 아들 삼 형제의 죽음을 밝히기 위해 염라대왕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리자 첩들은 다 강림을 외면하지만 그의 본부인만은 강림을 돕기 위해 가택신들에게 기원을 드리게 됩니다. 가택신인 문전신과 조왕신은 그동안 강림의 행실이 괘씸하지만 그의 본부인의 마음이 측은하고 기특하여 그가 염라대왕을 잡아올 수 있게끔 도와주게 되는데 한국 신화 속에서도 여러 신화의 신이나 장소들이 겹치기 출연하는 경우가 많은 건 우리 신화도 그리스 신화 못지않게 긴밀한 연결성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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