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배트맨 비긴즈』는 시리즈물의 시작이다 보니 후속작인 『다크나이트』보다는 그 스케일이 덜해 보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배트맨의 탄생과정을 보는 재미가 있었고 다시 보았을 때 악역들이 도시 하나를 쑥밭으로 만들려는 걸 본다면 그 스케일이 반드시 작다고도 할 수는 없었네요. 아직 배트맨이 히어로로써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약간 핀치에 빠지는 것도 볼만했고요. 후반부 환각제에 취한 인간들이 배트맨에게 덤벼드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좀비 영화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만약 환각제가 도시에 퍼지는 걸 막지 못했다면 고담이 어떤 식으로 몰락했을지가 상상이 되어서 약간 오싹했다고 할까, 모든 인간을 좀비 혹은 정신병자로 만들어 버린다면 그야말로 고담은 죽음의 도시가 되었겠죠? 이런 테러의 방식도 조커나 베인의 방식과는 다르게 왠지 상상하니까 무서운 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최종보스로 등장하는 빌런은 배트맨의 스승인 라스 알굴로 그림자동맹이나 라스 알굴, 배트맨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면, 시리즈의 마지막인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그들의 존재가 다시 부각된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단 생각이.
『배트맨 비긴즈』에서 내용을 끌어온 이상 라스 알굴의 딸인 탈리아를 등장시키지 않을 수도 없었을 듯 하긴 해요. 영화 『배트맨 비긴즈』 후반부 웨인가의 기계를 탈취하고 도시 중심으로 들어가기 전에, 라스 알굴이 마스크를 쓰는데 이것이 왠지 베인의 마스크와 유사했던 느낌도 나던 게 혹시 감독이 의도한 거였으려나요. 그리고 그림자동맹 특유의 문신이 이 일원들 몸에 잠깐씩 보이는데 『다크나이트』 후반 죄수의 딜레마 이벤트에서 활약하는 죄수의 몸에도 이 문신이 있던 걸로 기억합니다. 처음 볼 땐 몰랐는데 『배트맨 비긴즈』까지 다시 보고 『다크나이트』도 재탕하면서 확실히 알겠더군요.
또 이번 영화의 서브 빌런으로 등장하는 스케어크로우를 맡았던 배우 킬리언 머피는 같은 감독의 영화 『인셉션』에서도 중요한 역할로 등장했던 게 기억이 났습니다. 그런데 스케어크로우는 악역들 중 좀 허당같은 이미지가 강해서 그러나 귀엽기까지 하더라고요. 마치 공포의 기수인 척 나타났다가 레이첼의 전기충격기에 한방에 가는 모습이 심각한 와중에 웃기더란 것. 『다크나이트』에선 초반 등장했을 때 잘 몰랐는데, 『배트맨 비긴즈』까지 다 보고 나니 『다크나이트 라이즈』에서 다시 얼굴을 잠깐 비췄을 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반면 히로인인 레이첼은 좀 미묘한 게 주인공 브루스 웨인의 정신적 지주에 가까웠다는 느낌을 주는 여성이 다음 시리즈인 『다크나이트』에서 다른 남자를 선택한 데다 최후까지 비극이라 캐릭터로썬 활용이 아쉽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집사인 알프레드는 웨인 저택이 불탈 때 이야기를 보면 정말 브루스를 제대로 잡아줄 줄 아는 사람이라서 브루스 웨인의 또 다른 아버지라고 해도 좋을 위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종의 남성영웅 이야기에서 친아버지 말고도 정신적인 아버지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주요하게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 거 같은데, 여기에선 알프레드가 그에 해당되는 듯.
물론 빌런인 라스 알굴도 어떤 의미에선 브루스 웨인 - 배트맨의 정신적인 아버지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긍정적인 아버지의 상을 갖춘 인물로 고담에서 유일하게 양심적인 경찰이라고 할만한 고든도 해당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배트맨 비긴즈』가 후속편들보다 아직 상황이 덜 심각해서인지 모르지만, 이 편의 고든은 인간적으로 더 정감 가는 장면이 많이 연출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네요. 아마 『다크나이트』보다 『배트맨 비긴즈』를 먼저 보았더라면, 『다크나이트』 중반 고든의 페이크에 꽤나 충격을 먹었을 게 분명해요.
그리고 각각 세 영화 시리즈가 설정과 연결이 긴밀하게 되어있으면서도 전작을 보지 않은 사람이 그중 하나만 택일해서 보더라도 내용 이해가 어렵지 않은 게 특징이었다고 할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시리즈는 『다크나이트』-『배트맨비긴즈』-『다크나이트 라이즈』의 순서대로 봤는데도 전작을 보지 못했어도 극장에서 『다크나이트』를 인상적으로 봤고, 『다크나이트 라이즈』 개봉 당시 처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배트맨』 영화 시리즈를 접했던 동생도 영화를 재밌게 봤다고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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