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럽병사의 비밀』 리뷰 : 김구 선생도 피해 가지 못한 인류의 대재앙, '스페인 독감' (2025. 2. 15. 작성)

『셀럽병사의 비밀』은 검색하면 "세계사, 과학, 인문학을 넘나드는 대한민국 최초의 의학 스토리텔링 프로그램. 그때 그 유명인은 왜,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을까? 역사 속 인물과 현대 셀럽들의 죽음을 통해 알아보는 질병과 의학의 세계"라는 프로그램 소개문을 접할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생소할 수 있는 의학과 질병의 역사를 누구나 알만한 역사 속 유명인들을 통해 고찰하며 그들의 생활이나 죽음(보통 의문사일 경우)에 대해 탐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는데요. 우연히 재방송을 통해 일부 방송(3화 오드리 헵번 편)을 재미있게 본 뒤로 재방송과 ott 서비스를 통해 기존 회차들을 감상하고 이후 될 수 있으면 본방을 볼 수 있도록 시간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번 8화는 본방을 통해 감상할 수 있었지만, 리뷰 자체는 사정이 있어 며칠 늦어지게 되었네요. 특이하게 스페인 독감을 다룬 『셀럽병사의 비밀』 8화는 그동안의 진행 방식과 약간 차이를 보였는데 물론 이번 회차에서도 우리가 알만한 역사 속 셀럽(유명인)들이 언급되긴 합니다.
 
부제에서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이름을 모를 수 없는 인물이 스페인 독감에 걸렸었다고 언급을 하고 있는데, 이번 8화가 특이한 것이 이 스페인 독감과 연관된 셀럽이 단 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에요. 『셀럽병사의 비밀』의 지난 회차들을 살펴보면 엘비스 프레슬리, 아돌프 히틀러, 오드리 헵번, 나폴레옹 등 누구나 알만한 역사적인 인물들을 딱 한 사람 잡아 그들이 생활 형태와 거기에서 비롯된 질환 등을 MC와 게스트들이 추론하는 방식이었던 반면 8화에서는 김구 선생만이 아닌 다양한 인물들이 튀어나와 좀 더 광범위하게 주제를 다루는 걸 확인할 수 있었거든요. 이번 8화에선 김구 선생은 물론이요, 화가 클림트와 에곤 쉴레, 뭉크, 인도의 간디 등 이름을 알 법한 인물들이 다수 쏟아졌다고 해도 좋은데 이는 '스페인 독감'이라는 전염성 바이러스가 주제이기 때문에 비롯된 결과물일 수 있습니다. 

근래 사람들을 고생시킨 코로나 바이러스 때처럼 과거의 스페인 독감 역시 동서양과 계층을 막론하고 세계를 휩쓴 병이라 유명인들이 이 질병에 감염된 케이스가 많아 딱 한 사람만을 꼬집어 탐구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일 듯. 8화 초반에 의문스럽게 돌연사했지만 그 실상은 스페인 독감 환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게 바로 유명 화가 클림트와 그 제자 에곤 쉴레였는데요. 클림트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이어 그 제자인 에곤 쉴레와 그의 아내까지 사망하는 등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다수의 희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의 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물론 당시 오스트리아는 스페인 독감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이것이 독일군이 퍼트린 독가스 때문이라거나 하는 헛소문이 퍼졌다는 사실도 함께요. 재미있게도 스페인 독감은 병의 진원지가 스페인이 아님에도 스페인 독감이라는 억울한 명칭이 붙여졌는데, 이는 전염병이 퍼졌을 당시 국제적인 상황이 원인이었다는 듯.
 
이는 1차 세계대전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참전국들은 전염병에 대한 정보를 통제했던 반면,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스페인은 언론이 정부로부터 검열을 덜 받는 상황이었고 이 덕택에 자국에서 퍼진 스페인 독감의 현 상황에 대해 자세하게 기사를 내보낼 수 있었던 때문이었는데요. 당시의 스페인 언론은 충실하게 언론의 역할을 해낸 것뿐이지만, 스페인 독감에 대한 정보를 많이 언급한 덕에 결국 이 독감의 명칭이 스페인 독감으로 굳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게 아이러니 했습니다. 프로그램에 따르면 스페인 독감의 진원지는 당시 단체로 군영생활을 하던 미국의 군 캠프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당시 미국 역시 독감의 위세 때문에 술을 마시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는 등 독감과 관련된 가짜 뉴스가 퍼진 사례가 언급되기도 해요.

그리고 제일 놀라웠던 건 당시 미국 내에서 스페인 독감의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죄를 지은 군인들을 이용해 직접 환자들과 접촉시켜 병에 걸리게 하는 생체 실험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당연히 현재라면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재미있게도 저런 실험을 무모하게 진행하면서도 실험 대상자 중에는 대다수가 면역자였다거나 이미 바이러스의 전파력이 약해진 상황이라 아무도 전염되지 않았다는 게 실험의 결말. 또 8화에서 언급되듯 이 스페인 독감에 전염되어 사망하거나 혹은 사망을 피해간 인물들이 하나 둘이 아니었고 무오년 우리나라에도 스페인 독감이 위세를 떨쳤다는 사실이 언급됩니다. 당시 일제강점기 치하였던 우리나라에도 스페인 독감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았으며 당시 조선총독부는 독감으로 인한 사망의 원인을 규명하지 못한 채 엉뚱하게 파리를 원인으로 지목하여 사냥을 한다거나, 독감의 원인을 당시 조선 사람들의 위생 문제라고 주장하여 반발감을 심어 이후 3. 1 운동에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주었을 거라는 설명이 등장하기도 하고요.
 
『셀럽병사의 비밀』 8화는 스페인 독감이 알고보니 인수공통전염병인 조류 독감의 한 종류였다는 것을 마지막에 반전처럼 전달합니다. 이 스페인 독감의 원인을 규명하는데 큰 공헌을 한 건 요한 훌틴이라는 병리학자로서, 8화 오프닝은 그가 알래스카의 영구 통토층에 있는 무덤을 파는 현장부터 고증하는데요. 요한 훌틴은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분석한 기사를 읽고, 스페인 독감의 유전적 정보를 규명할 수 있다고 확신하게 됩니다. 과거에도 요한 훌틴은 스페인 독감으로 감염된 사람들의 폐 조직을 얻기 위해 영구동토층에 매장된 시신을 찾았지만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50여 년이 지나서야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한 여성의 시신을 발굴하며 조직을 얻는데 성공하게 되는데요. 이런 요한 훌틴의 행적 덕택에 기어이 스페인 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를 해명할 수 있었다는 사실로 어떤 의미에서 이번 8화는 스페인 독감의 악명과 더불어 이 바이러스를 규명하기 위해 싸운 사람의 집요한 업적을 탐구한 회차였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