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에 나온 영화 『어벤져스』 시리즈나 『캡틴 아메리카』 후속작들이 스케일이 크고 화려했기 때문인지 묘하게 영화 『퍼스트 어벤져』는 스케일이 작고 화려한 맛이 적은 영화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봤더니 굳이 그렇다고도 하기 어렵단 생각이 다시 들었는데 영화의 배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데다 전장의 묘사가 많이 등장하는 법인지라 결코 스케일은 작다고는 하기 어려울 법해요. 거기다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과학 기술의 수준은 과거의 그것들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그렇게 각인된 것은 후반 시리즈들의 성공이나 빌런의 규모가 차이가 있기 때문이려나 싶기도 하고요. 『어벤져스』 1편은 외계인이, 2편은 인공지능 생명체가 나라 하나를 말아먹는 수준이고 비슷하게 인간 빌런이 등장하는 캡틴 아메리카 후속작 시리즈들은 그 빌런들이 해 먹은 짓이 단순 세계정복 이런 수준이 아닌지라...
영화에서 묘사되는 인간관계에도 좀 더 초점을 맞추었는데 스티브 로저스의 절친인 버키 반즈는 그 비중이 그렇게 큰 편은 아님에도 영향력이 은근 엄청난 편. 슈퍼 솔져 실험에도 성공한 로저스가 그저 채권팔이 홍보용 대사로 전락했음에도 이것도 나름 애국일 것이라고 애써 납득하는 상황을 바꾸어버린 것이 바로 먼저 입대한 버키가 하이드라에 포로로 잡혔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부터 거든요. 두 번이나 하이드라에 납치당하고 결국 두 번 개조당하는 버키의 운명도 참 애꿎다 싶을 지경. 즉, 로저스가 진짜 전장의 '캡틴 아메리카'로 거듭나는데 계기를 준 인물이 버키 반스라는 것. 혈청 실험 이전 비리비리해서 얻어맞고 다니던 스티브를 보호하거나 챙겨준 것도 이 버키였다는 것이 초반 양아치랑 영화관에서 시비가 붙은 로저스 일화에서도 확인이 되는데 이 보호자 관계가 후속작인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반전된다는 것도 나름 재미있는 비교 거리예요.
그런데 여기서도 버키가 묘하게 전통적인 히로인 역할 닮은 게 보통은 히로인이 납치되면 그것을 주인공이 구하러 가고 주인공의 절친이 그것을 돕는데 여기선 친구인 버키가 하이드라에 붙잡히자 그를 구하러 가는 로저스를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 히로인 페기 카터라는 거... 페기 카터와 스티브 로저스의 연애 플래그도 상당히 착실하게 깔아주는 편입니다. 하지만 시대 배경이 1940년대이기 때문에 남녀가 둘 다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보수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요량인지 서로 마음은 있는데 처음엔 서로 전달이 안되다가 캡틴 아메리카가 전장에서 페기의 사진을 간직하는 것을 보여주는 등 조금씩 진전이 되는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그런데 보수적인 시대였다고 해도 여자가 남자의 상관이고 성격 면에서도 여자 쪽에서 더 강단이 있다는 것도 특징. 그리고 영화 막판에서야 애정을 확실히 확인하는데 이 커플의 결말을 생각하면 참 답답할 정도로 안타깝더군요.
캡틴 아메리카의 동료인 하워드 스타크도 꽤 비중이 있는 편인데, 실은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나 슈트만이 아니라 버키를 구하기 위해 로저스가 일탈을 시도했을 때 도와준 인물 중 하나가 하워드 스타크이기도 합니다. 좀 아쉬운 점은 하워드 스타크가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이기도 하고 또 전장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비롯 주요 인물들에게 꽤 우호적인 역할로 나오는 데다 후에는 페기 카터와 함께 쉴드의 창립 요원이 되고 특히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에서 버키를 알아보기도 하는 등 참전 용사들과 친분은 많았을 법도 한데 이 하워드 스타크 쪽에서도 비중을 좀 더 할애하여 로저스나 버키 등과의 신뢰 관계도 묘사하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이랬다면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의 이야기는 더 비극적인 색채를 띄었겠지만... 하워드 스타크의 포지션이 영화 내에서는 좀 아쉽게 허비되었단 생각.
영화가 캡틴 아메리카 비긴즈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영화의 완성도가 적은 편은 아니나 전체적으로 영화 한 편이 다음 『어벤져스』 시리즈를 위한 거대한 떡밥이나 예고편과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캡틴 아메리카란 히어로가 어떻게 탄생했느냐를 말해주고 있지만 동시에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세계관이 어떻게 되어 있느냐를 알려주는 영화라서요. 대놓고 북유럽 신화에서 따온 우주 구도가 언급되기도 하며 (이건 영화 『토르 : 천둥의 신』도 마찬가지) 테서렉트의 등장은 『어벤져스』 1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기도 하고요. 캡틴 아메리카라는 좀 낯선 히어로의 시작이라는 점이나 영화 자체가 좀 더 거대한 규모로 제작된 다음 시리즈들의 예고편이나 마찬가지인지라 이 영화가 처음 개봉했을 당시에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흥미로웠을 것 같지는 않아요. 『어벤져스』 1편이 성공하고 그다음에 나온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와 『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가 출중하게 나온 덕에 『퍼스트 어벤져』도 나름 재평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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