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아메리카 : 시빌 워』는 아예 영화 개봉 당시 시사회 평이 좋다는 기사까지 뜬 데다 영화 평론 블로그 같은 데서도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 때와 유사하게 호평이 이어져서 다시 기대가 솟았습니다. 영화는 대략 두 시간을 좀 넘는 긴 분량인데 상당히 지루한 점 없이 영화가 진행되더군요. 다만 몰입도라던가 긴장감이라던가 주제의식 면에선 전작인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가 더 깊이가 있었다고 보는데요. 아무래도 주제 의식 차원에서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가 더 강렬했던 것은 영화의 중심에 서 있는 악역의 위치가 어떠하냐에 따라 크게 좌우되기 때문인 듯해요.
전편의 주제가 인간의 자유와 통제에 대한 문제를 파고 들어서 그것이 엇나갈 경우 가지고 오게 된 공포심까지 드러낸 반면 이번 편은 캐릭터 각자의 비극과 흑막의 위치도 세계 정복이나 뭔가 거대한 사상이 아닌 개인의 비극 때문에 이뤄졌기 때문인 듯. 이런 점 때문에 큰 주제 의식보다는 개개인의 성찰과 성장으로 영화가 마무리된 느낌인데 다만 그런 점 때문에 관객 입장에서 히어로든 빌런이든 캐릭터에 대한 공감대는 더 커질 수 있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내에서 그동안 『어벤져스』 시리즈에서 종종 보여줬던 히어로와 빌런의 싸움에서 말려든 민간인 피해가 부각됩니다. 일단 영화 오프닝은 1991년 어떤 요인을 암살하는 버키 반스의 과거 괴로운 영상으로 시작하여 럼로우 일당을 쫓던 어벤져스 일행으로 전환되는데 여기서 자폭하려는 럼로우를 저지하려다 스칼렛 위치의 실수로 민간인 피해가 발생하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럼로우는 캐릭터성이 독특해서 이야기가 더 있었으면 했는데 영화 초반에 죽어서 좀 아쉬웠다고 할까요? 나중에 드라마나 부가 영상 같은 것으로 이야기를 더 추가해 줬으면 좋겠단 생각도 들었고요.
그리고 이로 인해 어벤져스 일행을 제제하기 위한 '협정'이 발의되어 UN 산하 기구로 만들려 하는데 캡틴 아메리카는 이렇게 통제가 내려질 경우 히어로들의 임무에 차질이 생겨 반드시 발목이 잡힐 경우를 예상함과 동시에 이 통제는 자신들 히어로들이 스스로 책임져야 할 의무에서 도망을 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에서 반대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협정을 지지하게 된 아이언맨은 자신들의 행위가 어떤 식으로 주변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는지를 실감한 데다 서서히 주변인들에 대해 신경을 쓰게 되는 심리가 많이 부각되어 가는지라 분명 주인공의 반대편에 있음에도 그 입장이 이해가 가는 편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소코비아 내전 당시 일반인들이 어떤 피해를 입었는지가 이번 편에서 많이 그려지며 분명 이번 편에선 아이언맨이 주요 적대 세력으로 등장함에도 마냥 밉지 않고 그 심정이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고요. 거기다 막판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장면에서 다름 아닌 버키 반스가 윈터 솔져로 하이드라 밑에서 움직일 때 살해한 인물 중 토니 스타크의 부모가 있었다는 게 드러나고 최대 흑막 역시 소코비아 내전 당시 일반인이었으나 가족을 모두 잃은 인물이었다는 점이 밝혀지는 부분도 있는지라...
어벤져스가 수배자로 전락하기까지 합니다만 이번 편에서 로드 대령이 크게 다치거나 토니 스타크의 부모님 이야기가 드러나는 등 아이언맨도 상당히 출혈이 컸던 지라 동정적인 느낌이 많이 들더군요. 오히려 이번 편의 주제도 확실한 답보단 전편과 마찬가지로 관객들에게 넘기는 열린 결말에 가깝단 생각이 들고요. 영화에서 캡틴의 주장은 예전에 모 범죄 심리학 서적에서 등장한 악의 평범성 - 인간이 더 위에 있는 사람에게 명령을 받으면 책임이나 의무 의식이 희박해져서 '위에서 시켰으니 난 책임 없다'라는 정신 상태가 되어 위험한 명령이나 용납 못할 일까지 해내는 경우-을 연상시키는 부분도 있었어요.
어쩌면 이런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 다름 아닌 윈터 솔져였을 때의 버키 반스인데 영화에서 버키 반스의 입장이 상당히 안타깝게 그려지는 게 안 그래도 온전하지 못한 상태에서 살인도구로 쓰인 기억이 정신이 온전해졌을 때 돌아와 죄책감에 계속 시달리는 데다 흑막의 조작으로 테러리스트 누명까지 쓰고 이 와중에 블랙 팬서의 아버지까지 죽는 바람에 블랙 팬서가 집요하게 쫓게 되는 등 상당히 고생을 합니다.
그래도 나중에 오해가 다 풀려서 버키 반스의 안전 문제는 그가 맡게 되지만요. 그래도 버키 반스의 캐릭터가 맘에 든 점은 분명 자신의 의지로 한 일은 아니나 사람을 죽인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확실히 했단 점입니다. 이건 이번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상당히 독특한 주제의식을 표명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 블랙 팬서가 마지막에 모든 진상을 알고 어찌 보면 자신과 비슷한 입장이었던 흑막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며 자살하려는 그를 만류하고 살아있는 인간들의 심판을 받게 하겠다는 부분이 영화의 백미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르나 영웅 일대기를 다루는 상당수의 작품들에서 이런 부분들이 부각되지 않고 넘어간 것을 생각하면 이번 '시빌 워'가 상당히 독특한 작품이란 것에는 여지가 없을 듯합니다. 그런데 이런 점을 보자니 몇몇 작품들 만화든 영화든 상관없이 사람 많이 죽은 것이나 주인공 주변 인물이라고 악행이나 민폐를 저지른 것에 대해 일언반구 후회나 사과도 없이 그것을 마치 매력적인 것 마냥 포장한 작품들이 생각나서 좀 짜증이 났는데 왠지 일본 만화가 이런 경우가 많았단 게 떠올랐어요.
이번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 시리즈가 아니라 『어벤져스』 시리즈 중에서 하나 갈라져 나왔다고 봐도 될 정도로 히어로들의 등장이 많은 데다 반가운 인물들이 많습니다. 앤트맨 같은 경우는 제가 영화를 보지 않았기에 잘 모르지만 다만 영화 중반 활약상은 제일 강렬했다고 할까요? 그리고 신캐릭터인 블랙 팬서와 스파이더맨이 투입되는데 블랙 팬서는 일단 코믹스를 잘 모르는 입장인지라 새로운 캐릭터임에도 그 인격적인 성장에 있어서는 가장 눈에 띄는 부분, 특히 모든 진실을 알고 복수를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스파이더맨 같은 경우는 상당히 친숙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데 어찌 보면 이번 『캡틴 아메리카 : 시빌워』에 등장하는 스파이더맨 캐릭터가 원작 코믹스에 가장 가깝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전 여전히 샘 레이미 감독의 토비 맥과이어 버전 스파이더맨이 가장 익숙하긴 합니다만. 다만 피커 파커가 스파이더맨이 된 사연은 워낙 유명한 지라 영화에서 더 설명할 것도 없이 그냥 복잡한 사정이 있단 대사 정도로 넘어가더군요.
전편보다 로맨스 코드가 약간 더 들어갔는데 전 왠지 블랙위도우X캡틴이 맘에 들더군요. 그런데 블랙 위도우는 특별한 능력자 설정이 아닌지라 여전히 많이 구릅니다. 또 여전히 클린트(호크아이)랑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한탄스럽다고 해야 하나요. 대체 클린트 유부남 설정은 대체 왜 넣은 건지... 내가 좋아하는 마리아 힐이 안 나온다는 것도 생각났고 닉 퓨리도 코빼기도 안 보이는 게 생각났습니다. 그래도 캐릭터들 배분과 역할이 적절한 지라 딱히 불만은 없고 액션도 전편처럼 오버하지 않는 내에서 상당히 박진감 있게 연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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