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유행이 많이 지났지만 『어벤져스』 1편부터 마지막 시리즈인 『어벤져스 : 엔드게임』이 개봉할 때까지 우리나라에서 마블 히어로들이 인기가 많은 게 실감되었던 부분이 많았습니다. 여기저기서 관련 유머 짤이나 평을 찾다 보면 이 시빌 워 영화가 영화 내에서만 '시빌 워'인 게 아니라 팬덤에서도 '시빌 워'를 불러왔단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기억났고요. 그 이유는 전편인 『캡틴 아메리카 : 윈터 솔져』가 악의 존재가 뚜렷하고 악당들의 목적이 확실히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기에 그에 맞서 싸우는 주인공들의 명분이 또렷했고, 다만 옛 동료가 적으로 재회하는 이야기 자체는 그 주제에 얹어진 캐릭터 구성의 한 장치였던 셈이었던 데 반면에 이번 '시빌 워'는 그 얹어진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두각 된 것이나 마찬가지라.
이런 이야기는 주인공들의 인간적인 측면들을 드러내 줌과 동시에 그 행동이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고 보입니다. 솔직히 전 두 번째 보고 와서도 캡틴의 입장도 아이언맨의 입장도 중심에 놓였던 버키의 입장도 다 이해가 가는 편이라 딱히 어느 쪽이 더 나빴다고 손들어주기 그랬습니다. 머리로는 캡틴의 주장이 옳다 여기지만 감정적으로는 아이언맨 쪽이 더 기울어지기 때문에. 솔직히 자기 부모 죽인 원수가 눈앞에 있는데 눈 안 뒤집힐 인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다고 버키 같은 경우는 고문에 가까운 세뇌를 당한 데다 온전히 정신이 돌아온 것도 아닌지라 거기서 더 책임을 묻는 것은 강제 징병당한 소년병이나 정신병을 앓는 사람에게 죄를 묻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라 상당히 뭐라 하기 어려웠습니다.
마지막 싸움에서 버키가 '난 내가 죽인 사람을 모두 기억한다'는 말은 그의 죄책감을 드러내주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동시에 아이언맨 입장에서는 도발이나 마찬가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단 생각이 들긴 들었습니다. 그런데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인 하워드 스타크가 살해당하는 장면에서 하워드 스타크가 버키를 알아본 반면 버키는 전혀 그렇지 못했단 부분은 버키가 진짜 스스로의 정체성은 제거되고 하이드라의 수족으로만 움직였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는 해석되었습니다. 전적으로 이 셋의 상황은 그야말로 상황이 만든 비극이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어요. 정말 억울한 것은 죽어나간 피해자들이긴 하겠지만은 가해자에게도 온전히 책임을 묻기도 어려운 하여간 굉장히 찜찜함이 남는 결말이었습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가장 원흉인 하이드라는 논란에서 비껴간 것 같기도...?
그런데 보면 버키한테 한번 씩 죽을 뻔한 인물들이 한두 명이 아니라 차라리 로키처럼 '나 악당이요' 하고 나온다면 악당으로써 매력을 느끼겠는데 버키의 포지션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동시에 있어서 단순 악당이 아닌지라 결국 캐릭터 평가가 엄청 갈릴 수밖에 없겠단 느낌이 들기도 했고요. 다만 캡틴 아메리카는 버키가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의 아버지를 살해한 것을 숨긴 것은 스스로 잘못이라 인정을 했고 편지에서 썼듯 아이언맨을 위한다는 건 핑계고 실은 자신을 보호하려 한 것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보자면 이 영화의 또 다른 주제는 영웅도 실수를 한다는 점 같아요. 영화 전반적으로 실수와 그 실수에 대한 책임에 대해 강조한 것을 보면 말이죠.
영화를 다시 보면서 느낀 건데 보통 장소나 화면이 전환할 때 지명이나 연도를 작은 자막으로 썼던 것과 달리 이번 시빌워에서 포스터의 글자처럼 장소와 연도를 큼지막하게 적어주면서 화면을 전환시켜요. 영화가 두 시간이 넘다 보니 드러나는 장소들도 제각각인데 거의 세계를 종횡무진하는 히어로들 인고로 피해 규모는 세계적이 된다거나... 하지만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의 서울 같은 경우는 다른 지역에 비해 피해가 적어서인지 이번 편에 등장하지 않더군요. 또 이번에 새로 등장한 선더볼트 국무부 장관은 찾아보니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브루스 배너의 연인의 아버지 역할로 나오셨던 분이라는군요. 『인크레더블 헐크』는 간단한 리뷰 밖에 보지 않았는데 상당히 부정적으로 그려져 이 인물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평가는 한결같단 생각이 들더군요. 본의 아니게 독박 쓰는 캐릭터라고 할지...
이번 편에서 헐크와 토르가 등장하지 않은 이유는 이 둘이 나오면 일단 파워밸런스가 붕괴할 위험이 있어서인 듯. 원작 코믹스에서도 토르는 복제인간만 나오고 헐크는 아예 등장하지 않긴 하지만요. 헐크는 특성상 통제를 받기도 어렵고 토르는 신급이라 아예 협정 자체를 우습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고. 그러고 보니 『어벤져스』 두 번째 시리즈인 『어벤저스 : 에이지 오브 울트론』에서 헐크인 브루스 배너와 블랙 위도우인 나타샤 사이에 묘한 기류가 오고 갔던 장면이 나왔었는데 결국 헐크가 자신의 힘을 두려워해서 스스로 자취를 감춘 걸 생각한다면 이번 편에서 블랙 위도우 - 나타샤가 아이언맨의 편에 서게 된 이유는 이런 점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파워 밸런스 하니까 적어도 힘이나 싸움 부분에선 전쟁 경험자인 캡틴 아메리카가 더 유리하지 않을까 했는데 보면 아이언맨도 밀리지 않았습니다. 막판에 버키와 캡틴 아메리카를 동시에 몰아붙인 걸 보면 말이죠. 당연한 소리겠지만 온갖 기술로 무장한 수트를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역할이고 히어로 생활을 하루 이틀한 인물은 아니니...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란 건 첫 싸움이라고 하면서 여러 히어로들을 능수능란하게 다룬 스파이더맨이라고 해야 할지. 같은 히어로지만 완다가 실수를 저지르는데 반해 스파이더맨은 첫 출연치고 너무 잘 싸워서 눈에 띄는데 역시 마블 간판이라 그러려나 싶기도 하고. 그것도 팔콘과 버키+캡탄 아메리카를 상대로 애가 긴장도 안 하더군요.
영화 보면서 팔콘과 버키의 만담이 큰 웃음을 주는데 잘 어울리기도 둘 다 캡틴 아메리카의 사이드 킥이라 묘한 경쟁심이 발동한 건지 아니면 버키 찾느라 고생을 해서 그랬는지는 상상의 여부에 맡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다 보면 샘이 정말 벤츠란 생각이 들었어요. 초지일관으로 캡틴 아메리카의 편에서 서 주는 것도 그렇고 가장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리고 작중 윈터 솔져가 다섯 명 더 있다 하는데 이들은 엘리트 킬러 집단에 버키보다 강하다고 설정돼 있지만 스토리 진행상 흑막인 헬무트 지모에게 깨어나기도 전에 살해당하면서 파워 밸런스를 어찌 조정합니다. 근데 나름 상상하기를 이들 중 하나라도 살아 있어서 도망을 쳤다면? 혹은 전부 깨어났다면? 그야말로 밸런스 붕괴가 도래했을지도.
그런데 하나라도 살아서 도망을 쳤다는 설정도 나름 재밌는 이야기가 나왔을 거 같아요. 똑같은 살인도구로 키워졌지만 어느 정도 기억과 의지를 되찾아가는 버키와 대비되는 캐릭터로써 등장한다거나. 어쨌든 이번 영화에서 눈여겨볼 점은 빌런의 캐릭터 구축도 엄청 잘 해놨다는 셈입니다. 이번 시리즈의 빌런으로 등장하는 헬무트 제모는 애꿎은 사람을 희생시켰고 분명 복수심에 미쳤지만 사람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이었는데요. 거기다 더해 자신의 죄에 합리화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인간적인 악당이란 점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특수 능력자가 아님에도 히어로들을 몰아세웠고 지능적인 면모를 앞세운 점도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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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반 버키가 구속되었을 때 책임자로 나온 에버렛 로스가 얼굴이 많이 낯이 익다 싶더니 다름 아닌 『호빗』 시리즈에서 빌보를 연기한 마틴 프리먼이었어요. 히어로인 닥터 스트레인지가 셜록 홈스였던 베네딕트 컴퍼배치라든데 혹시 노린 걸까요?
그리고 깨알 같은 스탠 리 카메오도 빠지지 않습니다. 시간 갈수록 음울하게 전개되는 영화의 마지막에 큰 웃음 주시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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