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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바벨의 도서관 : 마술가게』 리뷰

by 0I사금 2025.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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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인류의 모든 혼돈의 기원을 바벨이라 명명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또한 보르헤스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를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에 다가가고자 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책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보르헤스가 그런 총체적인 책을 찾아 헤맨 흔적을 담은 여정이다. 장님 호메로스가 기억에만 의지해 『일리아드』를 후세에 남겼듯이 인생의 말년에 암흑의 미궁 속에 팽개쳐진 보르헤스 또한 놀라운 기억력으로 그의 환상의 도서관을 만들고 거기에 서문을 덧붙였다. 여기 보르헤스가 엄선한 스물아홉 권의 작품집은 혼돈(바벨)이 극에 달한 세상에서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찾아 떠나려는 모든 항해자들의 든든한 등대이자 믿을 만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책 안쪽 간단하게 설명이 되어 있기를 시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엄선한 문학집 시리즈로써 제가 예전에 한번 이 시리즈의 1권에 해당하는 소설 에드거 앨런 포의 『도둑맞은 편지』를 읽고 리뷰를 쓴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빌려오게 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바로 『투명인간』, 『우주전쟁』등의 걸작을 남긴 허버트 조지 웰스의 단편소설들 중 환상소설들을 추려낸 것으로써 시리즈의  2권에 해당하는 단편집입니다. 『투명인간』을 워낙 감명깊게 본 데다가 허버트 조지 웰스의 대표작들이 『우주전쟁』이나 『타임머신』과 같은 작품들이기에 SF소설의 걸작 작가라고만 생각을 했다가 이 책에 실려있는 소설들을 읽어보면 그 소설들의 분위기에 놀라게 됩니다. 실려있는 소설들의 내용을 보자면 SF적 느낌이나 소재가 없는 것은 아니나 전반적으로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와 유사한 기묘한 상상력과 우울증을 느끼게 되거든요. 작가설명에 따르면 아무래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목격한 후유증은 아녔을는지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첫번째 소설은 「벽안의 문」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화자인 '내'가 같은 학교를 나온 동창생이자 승승장구하는 월리스라는 친구를 만나 그에게서 흰 벽의 녹색문이라는 기묘한 문에 대해 듣게 됩니다. 어린 시절 우연히 목격한 그 문을 열고 들어간 그는 문 너머에서 아름다운 정원과 흑표범들, 그리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난 뒤 현실로 돌아왔다고 하며, 그 경험을 주위 사람에게 이야기했지만 꾸며낸 이야기를 지어낸다고 비웃음이나 꾸중을 듣게 되었다고요. 하지만 일생에서 그 녹색문은 몇 번 그를 찾아왔고 그는 문을 열고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고 싶어 했으나 현실을 뿌리치기 어려워 늘 망설였다고 합니다. 그것이 깊은 후회가 되었던 그는 어느 날 어떤 공사장의 갱도에서 죽은 채로 발견되는데 화자는 그곳의 벽을 유년시절 속 목격한 흰 벽과 문으로 착각한 탓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추측을 할 뿐입니다. 낯선 세계로 이어지는 문과 어린 시절 꿈꾸던 이상향의 조합이란 소재를 다루며 환상적인 느낌을 주지만 이것을 화자가 직접 겪는 것이 아닌 전해 듣는 것으로 표현하면서 그 문이 실제인지 환상인지 모호함을 남겨주는 소설이었습니다.


두번째 소설 「플래트너 이야기」 평범한 영국인으로 작은 사립학교의 교사인 플래트너의 기묘한 경험담을 역시 화자가 전해주는 형식의 이야기입니다. 전편에 이어 일종의 액자구성을 취하는 소설로써 이 방식으로 환상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는 기묘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요. 교사인 플래트너는 학교의 어떤 꼬마가 가져온 기묘한 녹색분말을 분석하는 실험을 하다 폭발에 휘말립니다. 하지만 기이한 일은 그 폭발과 함께 플래트너의 존재가 완전히 사라진 것. 며칠 동안 플래트너가 실종된 동안 마을 사람들은 꿈에서 그의 모습을 보는 것 같은 경험을 하기도 하며 결국 플래트너는 갑작스레 현실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겪은 기묘한 경험담을 풀어놓는데 다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세계를 떠돌면서 목격한 이상한 존재들-관찰자라고 칭하는-을 보고 마을에서 일어난 죽음을 목격하다가 현실로 간신히 돌아왔다고요.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경험담임에도 그가 목격한 마을 사람의 죽음이 실제라는 것과 플래트너의 몸 안의 장기가 사고 이후로 좌우가 바뀐 것 등 이상한 흔적이 남은 것을 증명하면서 그의 경험은 미스터리로 남게 되지요.


세번째 소설 「고 엘비스햄씨 이야기」는 삼촌에게 유산을 물려받은 뒤 의학공부를 하며 절약하며 살던 이든은 유명한 학자 엘비스햄의 상속자로 지정받으면서 시작됩니다. 뜻밖의 행운에 기뻐하던 그는 엘비스헴과 식사를 나누다가 그가 나눠준 어떤 가루약을 먹게 되고 자신의 의식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이상한 느낌을 받으며 잠에 들었다가 깨어납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젊은 이든 자신이 아닌 늙은 엘비스햄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고 경악하게 되고 주위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생각하여 감금하게 되지요. 결국 엘비스햄이 된 이든은 모든 사실을 밝히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선택하는데, 그의 유서를 발견한 누군가가 이 사건의 전말을 밝히며 진짜 엘비스햄이 미친 것인지 아니면 이야기가 진실인지 의문을 품는데, 유일한 증인일 이든 청년마저도 엘비스햄이 자살을 택했을 때 뜻밖의 마차사고를 당해 죽었다는 반전이 드러납니다. 역시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가짜인지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남기면서요.


네번째 소설 「수정계란」은 가게를 운영하는 케이브란 인물이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수정계란을 손님들이 목격하여 사기로 하면서 난처해집니다. 그만 비싼 값을 부르며 팔기를 망설이다가 자신의 아내와 의붓자식들에게 그 사실이 알려져 타박을 받는데 그가 수정계란을 팔기 싫어하는 이유가 밝혀지지요. 그 수정계란은 기묘한 빛을 내뿜으며 현실과는 다른 이세계의 모습을 비춰주고 케이브는 그 모습을 관찰하면서 아내와 의붓자식들에게 괄시받는 현실의 고달픔을 잊어버렸던 것. 수정계란을 팔기 싫었던 케이브는 몰래 병원에 조수로 일하는 웨이스 씨에게 수정계란을 맡겼던 것으로 웨이스는 케이브의 이야기를 듣고 수정계란을 관찰하면서 그의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여러 번의 조사와 분석 결과 이 수정계란이 비추는 곳이 화성이며, 그곳의 주민들도 같은 수정계란을 통해 이곳을 살피고 있다는 결론을 내리는데 더 조사를 진행하고 싶었던 그는 갑작스러운 케이브의 죽음과 유족들이 물건을 처리하면서 수정계란까지 같이 팔아치웠다는 사실을 알고 실망합니다. 화성이라는 결말 때문에 뭔가 뜬금없다는 생각까지 들었지만 기존의 우주인-화성인에 대한 상상과는 다른 신비로운 묘사가 돋보였던 소설이었어요.


마지막 소설 「마술가게」는 주인공이 자신의 아들 깁과 함께 우연히 어떤 마술가게에 들어가면서 시작됩니다. 아들인 깁은 교육을 잘 받은 점잖은 소년으로 아버지는 그런 아들을 기쁘게 하고 싶어 가게를 보고 싶어 하는 아들의 요청을 들어주고, 마술가게의 마술사 주인 또한 그런 아들을 맘에 들어하면서 기묘한 마술을 보여주지요. 그런데 그가 보여주는 마술이 단순 트릭이 아니라 초월적인 힘이라는 것이 점차 드러나고, 주인공 부자는 기묘한 경험 끝에 가게를 빠져나오게 됩니다. 그들이 가게를 빠져나오게 되자 가게의 흔적은 거짓말처럼 사라진 상태. 하지만 아들이 받은 꾸러미 선물은 실제였으며 거기엔 살아있는 고양이와 병정세트가 들어있었고 아들의 입으로 선물 받은 병정들이 움직일 줄 안다는 이야기까지 나옵니다.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반신반의하면서도 즐거운 경험을 하게 해 준 마술사에게 신의를 지키기 위해 그를 만나 선물에 대한 값을 치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의 막을 내립니다. 어떤 의미에선 사람의 유년시절의 기억이나 추억을 자극할 법한 훈훈하고 환상적인 소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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