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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바벨의 도서관 : 큰바위 얼굴』 리뷰

by 0I사금 2025. 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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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는 인류의 모든 혼돈의 기원을 바벨이라 명명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또한 보르헤스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를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에 다가가고자 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책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보르헤스가 그런 총체적인 책을 찾아 헤맨 흔적을 담은 여정이다. 장님 호메로스가 기억에만 의지해 『일리아드』를 후세에 남겼듯이 인생의 말년에 암흑의 미궁 속에 팽개쳐진 보르헤스 또한 놀라운 기억력으로 그의 환상의 도서관을 만들고 거기에 서문을 덧붙였다. 여기 보르헤스가 엄선한 스물아홉 권의 작품집은 혼돈(바벨)이 극에 달한 세상에서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찾아 떠나려는 모든 항해자들의 든든한 등대이자 믿을 만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저번 『바벨의 도서관 : 필경사 바틀비』를 감상한 이후 이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를 빌려오는 것이 뜸했었는데 이번에 발견한 책은 바로 『바벨의 도서관 : 큰 바위 얼굴』로, 잘 기억은 안 나지만 학창 시절 국어 교과서에 이 단편소설이 실려있었지 않았나 하는 기억이 있었습니다. 보면 나다니엘 호손은 그 유명한 『주홍글씨』를 쓴 작가이기도 한데 좀 특이하게도 예전에 읽은 러브크래프트의 에세이집 『공포문학의 매혹』에서도 이 호손의 작품에 대해서 몇 번 언급되었던 것이 기억납니다. 그래서 혹시 이 작가가 공포나 환상과 관련된 소설을 쓴 적 있었나 싶었고, 이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특성이 반드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도 환상문학에 치우친 경향이 있어 궁금해진 점도 있었고요. 그래서 다른 작가들의 소설들과 같이 있는 것을 보고 어느 것으로 빌려올까 하다가 이 나다니엘 호손의 소설집에 실려있는 단편의 가짓수가 좀 더 많아서 혹한 점도 있었습니다. 읽고 나서는 왠지 좀 의외다 싶은 작품들이 실려있었고요.


첫번째 단편은 「대지의 번제」란 작품입니다. 이 작품을 처음 읽으면서 느낀 것은 묘하게 예전에 읽었던 <종말문학걸작선>의 단편들의 느낌과 비슷하단 생각이 들었는데 묘하게 종교적인 느낌도 나며, '개혁'을 위해서라는 명목은 사람들이 그동안 쌓아온 것들 각종 문명의 물건과 책, 종교적인 물품들을 모조리 불에 태워버리는 행위 등이 왠지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겼던 건지도 모릅니다. 책의 서장과 마지막장에 실려있는 작가에 대한 설명들을 보자면 호손의 조상 중 하나가 그의 고향 세일럼에서 악명 높은 마녀 재판을 담당한 판사였고 여러 여자를 비명에 보냈다는 사실이 있어 그것에 대해 호손이 부정적으로 보았을 법한 글귀가 실려있으며, 호손의 작품들 중 어떤 공동체에 대해 비판하는 내용이 있다는 점 등을 보아서 대강 의도를 파악할 수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모 책에서 역사 속 마녀재판은 일종의 그림자 투사 내지 투영으로 볼 수 있다고도 해석하는 경우를 보았는데 이 소설에 실린 사람들은 악한 것들을 불에 태운다고 하지만 결국 소설의 말미에서 그런 인간의 악의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는 암시도 그렇고요.


두번째 단편 「히긴보텀 씨의 참사」는 앞의 단편 「대지의 번제」에 비교적 긴 분량과 어두운 분위기 때문인지 상당히 반전스러웠던 소설입니다. 소설 앞의 해제에서도 어딘가 코믹스러운 경향이 커서 현대 작가가 썼더라면 비극으로 끝났을 것이라는 말이 첨부되어 있습니다. 전 처음엔 주인공 도미니커스가 구두쇠인 히긴보텀씨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그가 살아 돌아다니는 증언이 여기저기서 나오자 일종의 탐욕스러운 유령이 나오는 공포소설이지만 좀 웃긴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는데요. 의외로 소설은 마지막에 반전을 제공해 줍니다. 실은 도미니커스가 들은 살해소식은 살인마들이 계획한 살인 예정이었고, 살인마들이 막판에 겁이 나서 도망을 가는 바람에 살인계획은 미뤄지다가 도미니커스가 어떻게 된 것인지 확인하겠다고 현장이 들이닥쳤을 때 살인이 벌어지려 하고 있고 결국 살인 계획은 실패, 도미니커스는 히긴보텀씨를 구해낸 공헌으로 영웅이 된다는 내용입니다. 어딘가 바보나 얼빠진 사람이 어리숙한 짓을 저지르다가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되는 옛 구전소설을 보는 듯한 해피엔딩이었어요.


세번째 단편 「목사의 검은 베일」은 한 마을에서 존경받는 후퍼 목사가 갑작스레 얼굴에 베일천을 가리고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목사의 행동에 당황하면서 점차 그 베일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게 되고 목사의 약혼녀는 베일을 걷어주길 요청하지만 후퍼 목사는 거절합니다. 사람들은 그 베일 속에 무엇이 있는지 왜 그렇게 얼굴을 가리는지 상상을 하며 두려워하게 됩니다. 시간이 흘러 후퍼목사의 임종 때 사람들은 그 얼굴의 베일을 걷어주길 요청하지만 목사는 거절하고 어째서 이 베일에 대해 멋대로 상상하고 두려워하냐며 자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수천의 베일을 보았다는 유언을 남기며 숨을 거둡니다. 결국 후퍼 목사가 무엇 때문에 베일로 얼굴을 가렸는지에 대해선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앞의 「대지의 번제」와 같은 작품이나 마지막 후퍼목사의 유언을 본다면 후퍼 목사는 사람들의 위선이랄지 가식이랄지, 숨겨진 어두운 면모를 보는 것을 두려워했고, 사람들은 오히려 후퍼 목사에게 자신들의 어둠을 투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단편이었습니다.


네번째 단편 「웨이크필드」는 들어가면서 소설의 전 내용에 대해 간략하게 나오는데 웨이크필드라 이름 붙여진 한 남자가 잠시 집을 비운다 하면서 실종이 되었으나 실은 집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건물에서 지내며 살다가 이십 년 뒤에 아내 앞에 나타났다는 사건입니다. 작가의 말에 따르면 옛날 잡지나 신문에서 읽었다는 일화라 하는데 이것이 진짜 사실일지 저 앞의 설명이 그저 작가의 수식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세상엔 황당한 일이 많고도 많으니까요 뭐... 호손은 이 웨이크필드라는 남자가 왜 그렇게 했는지에 대해 상상을 하면서 이야기를 구성했는데 보면 처음 남편의 의도는 잠시 몸을 숨겨 아내를 놀라게 하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 계획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쩌다 보니 원래 의도완 달리  이십 년이나 넘게 잠적하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보면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말은 굉장히 무책임해 보일지 몰라도 사람의 삶이 항상 뜻대로만 되는 것이 아니며 정말 예상치도 못하게 원래 생각과는 달리 많이 바뀌는 것을 본다면 왠지 납득이 가는 내용이었어요.


마지막 단편 「큰바위 얼굴」은 앞에서 썼듯 교과서에도 실려있던 소설이니 읽어보신 분들이 많을 듯합니다. 처음 읽을 때는 큰 바위 얼굴을 닮고 싶었던 겸손한 소년이 커서 결국 그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얼굴이 되었다고만 이해했으나 보면 새로운 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 큰 바위를 보면서 큰 소년의 유년시절에 어머니는 언급되지만 아버지에 대해선 큰 언급이 없다는 점은 결국 이 소년에게 아버지 역할을 대신하게 되었던 것은 다름 아닌 저 '큰 바위 얼굴'이며, 어찌 보면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의 형상이 바위에 투영되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 소년, 나중에는 현명한 노인으로 자라게 된 주인공은 사람들이 자기 고장에서 유명인이 날 때마다 그가 큰 바위 얼굴과 닮았다고 소리치지만 그들의 모습을 보게 된 소년은 그들이 큰 바위 얼굴과 전혀 닮지 않았음을 지적하는데 이것은 다름 아니라 그들의 진면목을 바로 볼 줄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라고요. 마지막 시인의 얼굴을 보면서 자신이 기대가 틀렸다는 것을 안 부분과 시인 스스로 자신은 말로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해도 현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을 고백하는 장면만 봐도 알 수 있듯, 소년이 현명하게 자랄 수 있던 데에는 사람을 보는 안목이 남달랐다는 점이 두드러집니다. 어쩌면 이 소설의 주제나 교훈은 겸손하게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람의 진면목을 보라는 이야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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