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소설과 만화

『바벨의 도서관 : 소금 기둥』 리뷰

by 0I사금 2025. 3. 17.
반응형

"성서는 인류의 모든 혼돈의 기원을 바벨이라 명명한다. '바벨의 도서관'은 '혼돈으로서의 세계'에 대한 은유이지만 또한 보르헤스에게 바벨의 도서관은 우주, 영원, 무한, 인류의 수수께끼를 풀 수 있는 암호를 상징한다. 보르헤스는 '모든 책들의 암호임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완전한 해석인' 단 한 권의 '총체적인 책'에 다가가고자 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그런 책과의 조우를 기다렸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는 보르헤스가 그런 총체적인 책을 찾아 헤맨 흔적을 담은 여정이다. 장님 호메로스가 기억에만 의지해 『일리아드』를 후세에 남겼듯이 인생의 말년에 암흑의 미궁 속에 팽개쳐진 보르헤스 또한 놀라운 기억력으로 그의 환상의 도서관을 만들고 거기에 서문을 덧붙였다. 여기 보르헤스가 엄선한 스물아홉 권의 작품집은 혼돈(바벨)이 극에 달한 세상에서 인생과 우주의 의미를 찾아 떠나려는 모든 항해자들의 든든한 등대이자 믿을 만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이어지는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리뷰입니다. 얼마 전 도서관에서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 중 소설이 아닌 이 시리즈의 마지막에 부록으로 나올 '바벨의 도서관' 작가 해제집을 빌려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당황스럽게도 제가 아는 작가는 손에 꼽을 정도고, 실은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도 아직 열 권 정도도 읽은 편은 아닌지라 나름 기대를 하고 빌려왔건만 모르는 작가에 대한 글이 더 많고 아직 읽지 않은 작품들에 대한 설명이 더 많은 지라 결국 이해부족으로 그대로 반납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해제집은 이 바벨의 도서관을 더 읽고 난 다음 다시 읽어보는 것을 좋을 성싶은데, 실은 해제집에 실려있는 작가 소개글은 실은 개개의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서장에서 보르헤스가 그 작가에 대한 설명과 나름 작품에 대한 해석을 실은 것을 모아놓은 것이기도 하더군요.


이번에 빌려온 '레오폴도 루고네스'란 작가의 작품은 실로 처음 접하는 소설들입니다. 이번 단편집을 읽어서 알게 되었지만 으레 외국의 번역소설집을 읽을 때 우연히 한편이라도 접한 적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 나왔던 데 반해 이 작가의 작품은 여기 바벨의 도서관에 실린 것도 모르는 것 투성이인데다 이 작가 소개문에 적힌  다른 작품들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이번 소설은 진짜 모르는 작가의 작품을 새로 접하게 된 셈인데요. 실은 이름이라도 들어봤음직한 작가들을 놔두고 이 책을 빌려온 이유는 실은 여기에 실린 단편들의 종류가 더 많다는 점도 있었습니다. 실린 소설들은 총 일곱 편으로 그 분량들도 짧은 편이라 빠른 시간 내에 읽을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고 할까요? 읽다 보니 느낀 것은 제목에 쓰인 '소금 기둥'은 성경에 나오는 그것을 말하는 것이고 실제 소설도 거기서 착안해 낸 소설이었습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내용이 작가가 처한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기 보단, 좀 더 고대를 배경으로 하거나 소재를 거기서 취한 경우가 있어 보였습니다. 일종의 설화를 보는 느낌도 들었다고 할까요.


첫번째 단편 「이수르」는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려는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왠지 동물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것은 전에 다뤘던 사키의 단편소설 「토버모리」가 떠오르는데 토버모리가 고양이한테 말을 가르치는 것을 성공은 시켰는데 이 영묘가 사람들의 속을 가차 없이 까발려 결국 우스꽝스러운 꼴을 만드는 일종의 블랙 유머 같은 내용이었다면, 이 소설은 침팬지에게 언어를 가르치려고 하다가 결국 침팬지의 자유로운 본성도 박탈하고 침팬지를 학대하면서 죽음에 이르게 만드는 불행한 내용입니다. 어찌 보면 인간이 다른 존재를 일종의 '노예화'시키는 과정을 보는 것 같아서 좀 섬뜩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서 침팬지가 온순한 동물이라는 언급이 나오던데요. 보면 실은 온순하다고 알려진 동물은 보노보이고 침팬지는 매우 위험하다고들 하고, 아무래도 보노보 자체가 최근 알려진 종이다 보니 이런 오류는 당 시대 있을 법한 오해 정도로 넘어가도 그만일 것 같습니다.


두번때 단편 「불비」는 역시 성경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를 파괴한 불비에서 따온 제목입니다. 소설 상에선 불을 일으키는 놋쇠비가 내려 주인공을 포함한 도시 사람들은 처음엔 당황하거나 신기해했지만 결국 이 비로 인해 도시가 초토화되고 지하로 도망가서 살아남은 주인공은 다시 놋쇠비가 내리는 광경을 보고 자살을 선택한다는 내용입니다. 앞의 소설이나 이번 소설이나 종종 노예 신분에 대한 언급이 나와서 당시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게끔 하는데, 노예해방이 이루어진 것이 실은 몇 세기가 안되었다는 것을 엉뚱한 데서 실감하게 된다고 할까요? 이 노예를 둔다는 언급은 소설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고 다만 주인공들이 어느 정도 재력을 갖춘 것을 의미하는 정도의 설명이지만요.


세번째 단편 「소금 기둥」은 롯의 아내 이야기에서 따온 것을 좀 더 확장시킨 단편입니다. 소시스트라토라는 수사가 경건한 수도원 생활을 하고 있을 때 사탄이 한 순례자 모습으로 위장하여 소금 기둥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그리고 그 소금기둥이 된 여자가 실은 아직도 살아있다는 말에 그 여자를 구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 수사는 파괴된 도시에서 소금기둥을 찾아냅니다. 그리고 그 소금기둥에 물을 부어 갇힌 여자를 구해주고 그 여자에게 보답으로 도대체 뒤를 돌아보았을 때 무엇을 보았는지 대답해 달라고 요구합니다. 하지만 여자는 대답하길 거부하다 수사의 거듭되는 요청에 무언가 속삭이고 그 순간 수사에게 번갯불이 내리쳐 수사의 목숨이 끊어진다는 내용. 대체 뭘 보았을까는 상상의 여지에 남긴 채 이야기는 종결되지요. 대체 뭘 봤을까 싶지만 원래 이야기에서도 뭘 봤는지는 나오지 않을 테니 이건 진짜 상상의 너머에 있는 이야기. 우리나라 장자못 전설도 보면 왜 며느리가 돌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찰이 많은 것처럼요.


네번째 단편 「압데라의 말」은 조금 황당하면서도 재미를 느낀 소설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압데라라는 도시에선 일종의 특산물로 말(馬)이 유명한데 압데라 시민들도 이 말들을 매우 사랑해서 점차 인간처럼 이들을 대우하기 시작힙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말들이 인간의 언어를 깨치고 인간에게 더 많은 요구를 하다가 결국 반란을 일으키는데 여기서 말들이 인간들의 귀금속을 약탈하거나, 인간을 죽이는 것은 물론이요, 인간의 사랑을 받은 다른 동물들 노새나 개들까지 학살하거나 심지어 수말들이 인간 여자를 겁탈하는 황당한데 흉측한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말들의 반란은 결국 인간과의 전쟁으로 번지는데 인간들이 수세에 몰렸을 때 도시에서 거대한 수사자가 나타나 말들을 위협하고 말들은 공포에 질려 바다에 빠져 죽게 됩니다. 사람들이 사자의 등장에 공포에 질렸을 때 사자의 머리 아래서 사람이 나타나고 실은 그것이 진짜 사자가 아니라 영웅 헤라클레스라는 것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이 그를 반기는 결말. 처음 읽었을 땐 제목의 말이 말(言)이 아니라 말(馬)이라는 걸 알아서 웃었고, 읽어가면서 걸리버 여행기의 휴이넘 종족이 떠올라 인간에게 속박당한 휴이넘들이 반란을 일으켰나 싶어서 웃었던 소설입니다.


다섯번째 단편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은 시골 지역을 여행하던 주인공이 한 치안판사의 소개로 어느 신사의 집에 숙박하게 되면서 벌어진 사건입니다. 홀로 살아가던 신사는 손님인 주인공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가 과거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해 줍니다. 아무래도 좀 신비주의적인 철학을 가진 신사는 과거 '요기스'란 기이한 거지 집단의 신기한 힘을 목격하고 그것을 자신의 몸에 실험하여 유체이탈을 성공시켰단 이야기를 들려주지요. 대신 그 덕에 자신의 분신까지 목격하고 그와 함께 살게 되었는데 그 분신은 원숭이와 닮은 모습이며 그 이야기에 반신반의하는 주인공에게 그 원숭이의 모습을 목격하도록 해줍니다. 주인공은 그 분신인 원숭이의 모습을 알기 위해 종이로 그 분신인 그림자 비스름한 것의 윤곽을 뜨고 그림을 완성한 뒤 신사의 말이 사실이란 것을 알게 되면서 당황하는 결말로 끝납니다.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설명이 불가능한 현상을 맞닥뜨리는 내용이지요.


여섯번째 단편 「프란체스카」는 주석에 의하면 이탈리아에서 실제로 있었던 불륜사건의 당사자 이름으로 조반니라는 냉혹한 성격에 장애를 가진 남성과 강제로 결혼을 한 여성이 시동생인 파올로와 사랑에 빠졌고 결국 둘 다 조반니에게 살해당했다는 사건입니다. 이 이야기는 유명한 단테의 『신곡』에서도 나온다 하는데 여기서 다뤄지는 이야기는 주인공이 여행을 하다 한 이탈리아 학생으로부터 그 사건의 전말을 담은 기록을 얻어 해석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종종 해독문이 쓰여 있지만 내용은 전반적으로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불행한 사랑에 대해 쓰여있는데 이 둘은 서로 깊이 사랑했지만 결코 선을 넘는 일은 없었고, 조심스레 교류를 했다는 것. 하지만 남편인 조반니는 이 둘의 감정에 대해 알아챘기 때문에 질투에 미쳐 둘을 살해했다는 결론이었죠. 그런데 이 소설에 쓰인 조반니의 행태를 보면 순 사기결혼이라는 생각밖에 안 들어 배반당한 것도 자업자득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자기 모습 창피하다고 동생을 대신 결혼할 거처럼 내보내고 막상 시집온 신부에게 사실을 밝혔다고 하니까...


마지막 단편 「줄리엣 같은 할머니」는 앞의 「프란체스카」처럼 비극적인 사랑을 담는 내용입니다. 바벨의 도서관 시리즈의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어떤 환상이나 공포적인 소재는 없지만 왠지 맘에 들었다고 할까요. 일흔이 다된 노처녀 올리비아 여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역시 교류하는 것은 스무 살 아래의 조카인 에밀리오 뿐입니다. 에밀리오 역시 내성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길 싫어하는 성격으로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실은 올리비아와 에밀리오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지만 고모와 조카 사이라던가 나이차가 많다던가 여러 가지 이유로 본인들 스스로가 그 감정을 억누른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에밀리오의 갑작스러운 병으로 올리비아는 자신의 감정을 뚜렷하게 확인하지요. 그래도 끝까지 주저하는 올리비아와 에밀리오로 인해 보는 독자 입장에선 그 정도면 충분히 참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답답하고 서글펐다고 할까요. 제목의 줄리엣 같다는 말은 로미오와 이뤄지지 못한 줄리엣의 상황을 올리비아에게 빗댄 것일 텐데 다만 감정에 솔직했지만 사랑은 못 이룬 줄리엣과는 달리 올리비아의 사랑은 솔직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사랑한 이와 함께할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 둥 미묘한 느낌이었습니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