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설 『지문사냥꾼』은 대학교 무렵 도서관에 있는 책을 발견하고 별생각 없이 빌렸다가 기억에 남았던 책입니다. 특히 처음 빌려봤을 때는 작가가 가수 이적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내용이 어떤 건지 파악도 못했었는데요. 거기다 도서관에서 책을 발견했을 당시에는 표지도 벗겨진 상황이라 표지에 반했던 것도 아니었고요. 아무래도 제 생각엔 작은 양장본에 단편 소설이라는 것만 막연히 추측하고 시간 때우기에 괜찮겠다 싶어서 빌려온 건데, 읽어보니 한국 소설들 중에서 보기 드문 분위기의 이야기인지라 결국 소장하기로 맘먹게 된 책이었습니다.
책의 후기 해설에 보면, 『지문 사냥꾼』의 장르를 일종의 유럽풍 고딕 환상문학으로 분류할 수 있다고 하는데, 확실히 현실하고는 동떨어져 있지만 결코 동화 같은 분위기는 아니요, 어딘가 스산한 공포스러움까지 느끼는 이야기도 더러 있습니다. 단순히 판타지라고 정의 내리기는 그렇고 (보통 판타지라고 하면 으레 중세 북유럽풍의 가상세계가 일반적인지라), 상상에나 존재할 법한 이야기지만 현실에 있을 법하게 그리는 것으로 보아 왠지 제가 좋아하는 일본 작가 '슈카와 미나토'의 작품과 비슷한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어떤 역자해설에서 슈카와 미나토류의 소설을 고딕 호러라고 칭하던데 『지문사냥꾼』도 비슷하지 않을라나 싶더군요. 물론 책을 먼저 접한 것은 이쪽 『지문 사냥꾼』입니다. 일단 책에 실려있는 단편들 중에는 독특한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우리 사회를 풍자하는 느낌이 드는 소설도 더러 있는데요. 제목을 장식하고 있는 것은 소설에 실린 단편 중 하나지만, 정작 이 단편집의 주가 되는 것은 「제불찰씨 이야기」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소설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 이 「제불찰씨 이야기」가 가장 재미있으면서 메시지가 강한 편입니다.
그외에도 여러 가지 소설들이 보이는데 고양이에 대한 작가의 공포를 표현한 단편은 유머러스한 표현 때문에 도리어 유쾌하게 보게도 되고, 제목이 된 소설은 비극적인 판타지인지라 씁쓸한 여운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영화관 개매너들을 응징하는 이야기는 솔직히 비슷한 경험이 많은지라 분명 불가능한 상황임에도 약간의 통쾌함이 느껴지고요.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삽화 역시 매우 독특한데 그것을 보는 재미도 제법 쏠쏠한 편입니다. 책의 구성도 특이해서 속표지와 목차가 나오기 전에 짧은 이야기가 하나 진행되고 다른 작가의 해설문이 실린 뒤편에도 짧은 이야기가 나오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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