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구매했을 때, 책의 두께가 다른 책과 남달라서 읽는 데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책의 두께를 다른 책들과 비교하니 예전에 읽은 『황금가지』 번역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달까요. 원래 이 책은 같은 저자의 『살아있는 우리 신화』의 개정판으로 기존 판본에서 좀 더 내용이 추가되어 나왔다는 설명이 있었어요. 제목이 바뀐 이유는 개정판 서문에서 설명하기를 기존 제목에 애착이 있지만 책이 달라진 만큼 작게나마 변화를 주고 '우리 신화'라는 주관적 표현 대신 '한국 신화'라는 정식 표현을 내걸었기 때문. 내용이 추가됨에 따라 분량이 많아졌기 때문에 완독하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으로 여겨져 분량을 4개로 나누어 시간이 날 때마다 읽었더니 독서를 끝낼 수 있었습니다.
기존 내용에서 추가된 부분은 개정판 서문의 설명에 의하면 허궁애기본풀이와 도랑선비 청적각시, 죽음의 말, 삼두구미본풀이, 세민황제본풀이, 서귀본향당본풀이, 백두폭포, 영감풀이, 지장풀이 등의 내용이 추가되었으며 그 덕에 책의 두께도 전보다 두 배가 되었는지라 한 번에 완독하기에는 무리일 거 같아 한 번에 다 읽으려 하지 말고 일부러 분량을 네 번 나누어 읽었더니 쉽게 읽히더군요. 바리데기 설화와 같이 전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신화 이외에 유명 웹툰에서도 다뤄주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지도가 생긴 저승차사 설화(차사본풀이, 천지왕본풀이) 정도를 제외하면 신화 관련 서적을 꽤 찾아 읽은 저로서도 낯선 내용들이 많아 새로이 배웠다는 느낌입니다.
책의 구성은 총 4부로 나누어져 있어 분량을 나누어 읽을 때 유리했는데 첫 번째 장인 제1부에서는 「신화, 그리고 신」이라는 큰 제목과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창세신화 두 가지 제주도의 천지왕본풀이와 함경도 지방의 창세가와 함께 다양한 신들의 탄생과 그 근원에 대해 찾아가고 있습니다. 의외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옛날 한국에서 받들어지던 신들 중에는 임신과 출산을 담당하는 여신(삼승할망본풀이)들 말고도 질병이자 장수, 복록을 담당하는 신들 중 여신들의 존재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비록 공적으로 크게 대우받지는 못해도 민간에서 여신들의 존재가 신성시되는 것은 타국 신화에서도 그런 경향이 강한데 후대로 갈수록 가부장제로 인해 여신들의 지위가 내려가거나 협소해지는데도 불구하고 여신들의 생명력이 질기게 살아남은 증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임신과 출산을 비롯 장수, 질병과 복록이라는 가치가 사회 공적인 가치 못지않게 사람들에게 얼마나 중요하게 다뤄졌는지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제2부 「삶과 죽음, 삶 너머의 삶」에서는 신화 속에서 빠지지 않는 죽음과 죽은 뒤에 도착하는 저세상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예전에 각국의 죽음과 관련된 신화를 다룬 서적(번역물)에서 왜 우리나라의 설화는 빠져 있는가 불만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때는 우리나라에 죽음과 관련된 설화가 적은 것인가 생각하면서 나름 그 책의 저자를 이해해보려고 한 적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봤을 때 저자의 조사가 부족한 탓이었습니다만. 이 『살아있는 한국 신화』에서는 타국 신화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갖는 죽음의 무지막지함, 거부한다고 해서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결국 언젠가는 찾아오게 되는 섭리에 대한 두려움과 그 두려움에서 비롯된 신성, 그 후에 대한 상상과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갈망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있는데 이는 책에 새로 실린 저승에 끌려가는 것을 거부하다가 영영 저승으로 가게 되는 '허웅애기본풀이'나 먼저 떠난 남편을 만나고자 저승을 찾아가고 결국 자살로 마무리되는 '도랑선비 청정각시 노래'에 잘 드러나있습니다.
책의 제3부 「신화와 인생」은 신화를 통해 인간사의 단면을 드러내고 있는데 각종 사랑과 치정에 얽힌 신들의 이야기나, 영웅적인 일을 해내는 신 혹은 인간들의 이야기를 통해 그 속에 나름 불합리해 보이는 요소가 있더라도 결국 그것 또한 세상의 일부이며 사람의 성장에 따른 성장통일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특히 예전에 신화를 보면서 납득할 수 없던 요인 중 하나는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영웅이나 신들의 부모는 어린 자식들이 수염을 뽑고 장난치고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혹은 자식들이 자기 맘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쉽게 자식들을 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습니다. 책에서도 이런 부모들은 자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철없는 부모'라는 비판이 있긴 하지만 아이들 키우기가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고 굉장히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일(육아 스트레스)이라는 것을 본다면 부모들 행동의 결과가 너무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심리는 어느 정도는 이해를 할 수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새로 들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인 제4부 「우리 곁의 신, 우리 안의 신」은 참으로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화도 면면을 살펴보면 대중의 바람을 투영한 듯 권선징악적 요소가 많이 들어간 게 있으며, 주인공의 적대자나 비주류라 칭할 수 있는 이들은 (천지왕본풀이의 수명장자나 차사본풀이의 과양생이 각시 같은 인물) 응징을 당하고 사라지거나 그 존재가 남더라도 모기 같은 해충이 되어 사람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경우가 많은데 많지 않은 사례이긴 하지만 삼승할망본풀이에서처럼 명진국 따님에게 밀려난 동해 용왕 따님이 아이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구삼승 저승할망으로 안치된 것처럼 불길하다 여겨지는 존재가 신이 된 케이스가 없지는 않다는 것. 그 사례로 실려있는 것은 묫자리를 다스리는 신이지만, 설화 속에서 땅귀이자 자신에게 시집을 온 나무꾼의 딸들을 살해한 삼두구미 이야기를 다룬 '삼두구미본'이나 '문전본풀이'의 악녀이자 마지막에 측간의 신이 된 노일저대 같은 케이스가 해당됩니다.
또한 그 외에도 장난기가 심해 고향에서 추방되어 후에는 제주도에서 도깨비들이 되었다는 삼 형제 이야기를 다룬 '영감본풀이'나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여인 지장(설명에 따르면 지장보살에서 딴 이름이 아니라 일에 지장이 생긴다 할 때 쓰는 지장)이 그 이름 따라 지장의 신이 되는 '지장본풀이' 같은 경우는 독특한 한국 신화임과 동시에 불길하고 장난기 많아 보이는 존재라도 신이 될 수 있고, 또한 그들을 신으로 받아들인 옛사람들의 포용성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다뤄주는 몸에 장애가 있어 부모에게도 외면받고 거북이와 남생이라는 이름을 받은 두 형제가 신이 되는 이야기는 '신성(神聖)'이란 오로지 귀한 자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 버림받고 외면받는 존재들에게도 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설화이기에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어느 설화보다도 독자들에게 힐링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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