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발견한 『제비뽑기』란 소설 때문에 관심을 가지고 보게 된 작가의 책입니다. 셜리 잭슨의 소설 『제비뽑기』는 우연찮게 그 명성을 접한 적이 있기도 했고 단편집을 먼저 읽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도서관에 놓인 다른 책들까지 찾아보게 되었는데,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셜리 잭슨의 소설은 딱 세 종류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있는 소설들이 작가의 대표작인 데다 대강 작가의 작품들이 어떤 느낌인지는 파악이 가능했습니다만. 단편집인 『제비뽑기』도 그렇지만 『힐 하우스의 유령』 같은 경우는 부록으로 실려 있는 작품 해설이나 작가 해설 같은 데 현대의 유명한 공포소설가들 스티븐 킹 같은 이름들이 언급되어 그 영향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있고, 어찌 보면 지금 나오는 공포소설들에 비하면 자극성은 덜 할지도 몰라도 와닿는 부분은 많았다고 할까요?
특히 해설에 언급되는 작가의 일생을 본다면 소설이 그리는 그 암울한 정체가 무엇인지 대강 이해가 가는데 단편집을 읽으면서도 느낀 것은 이 작가는 사람의 고립, 특히 여성의 고립에 대해 자주 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해설에 의하면 일종의 ‘타자화’라는 설명도 있던데,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 상당수는 주인공과 제대로 된 대화가 가능하거나 감정이 어느 정도 공유되는 공감대 같은 것을 갖는 경우가 거의 드물어요. 혹은 그런 인물이 있다 해도 그 역시 고립된 인간은 마찬가지인지라 주인공은 여전히 외톨이 신세인데 만약 셜리 잭슨이 자신이 평생 겪어온 그런 고립과 외로움을 소설로 승화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다만 사람들이 자신이 얻지 못한 것을 다른 것으로 승화할 때 대개 창작으로나마 그것을 얻거나 극복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것과는 달리 셜리 잭슨의 소설은 그대로 주인공이 고립되는 상황으로 밀고 가는데 이런 점이 어찌 보면 현실적인 것 같기도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역시 고립된 여성이 주인공인데, 마을의 명문가였던 블랙우드 가의 딸인 메리켓은 초장부터 마을에 물건을 사러 가면서 마을 사람들과 감정적으로 대립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상하게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적대시하거나 악의적으로 놀려대는지, 메리켓 역시 마을 사람들에게 속으로 저주를 퍼붓는지 대체 사람들이 왜 이럴까 했더니 다름 아닌 그 원인이 다음에 설명되더군요. 육년 전 메리켓의 가족이 저녁 식사에서 비소가 섞인 설탕을 먹고 몰살당하는데 그 범인으로 언니인 콘스턴스가 지목되었던 과거가 있었다고요. 유일한 생존자인 줄리언 삼촌은 몸이 불구가 된 데에다 정신이 좀 오락가락하여 두 자매의 보살핌을 받고 있었고 콘스턴스는 무죄라는 게 재판에서 드러났지만 마을 사람들 입장에선 여전히 살인마 취급을 받아 마을에 들어서기도 어려운 입장이라는 게 보입니다.
하지만 주인공의 심리는 특이해서 보통 이런 상황인 된다면 자신들의 무고함을 어떻게든 어필하거나 마을을 뜨거나 할 법한데도 - 실제로 마을 사람들은 왜 이사 간단 소문이 있는데 왜 이사를 안 가느냐고 대놓고 묻기도 하는 등의 일이 있기도 했고 - 오히려 자신들의 집에서 버티면서 살고 있으며 오히려 그나마 호의적인 사람들의 접근을 철저하게 차단하는 모습이 엿보여요. 주인공이 나름 평화라고 생각한 이런 시기는 사촌인 찰스 블랙우드가 나타나고 콘스턴스가 그에게 호의를 표시하면서 깨지게 됩니다. 결국 주인공 메리켓은 그를 쫓아내고 싶단 생각에 그의 방을 어지럽히고 심지어 불까지 내는 - 어디까지나 암시에 가깝지만 - 사고를 일으키지요. 즉 주인공은 고립된 그 상황 자체가 좋고 변화를 원하지 않는데 이것이 선천적인 사람을 거부하는 성향일 수도 있겠다 싶지만 뭘까 고립이 오래된다면 오히려 그 상황을 더 안전하게 여기게 되는 사람의 심리와 같다고도 느껴진다고 할까요.
그래도 블랙우드가 불타면서 마을 사람들은 저주받은 집이 불탄다고 소방관을 말리며 좋아하는 장면은 마을의 폐쇄성과 악의가 고대로 드러나서 주인공이 그들을 거부할 만도 하겠다 싶지만은. 여기서 반전이 하나 등장하는데 화재를 겪은 콘스턴스와 메리켓의 대화를 통해 실제 육년 전 가족 몰살 사건의 범인은 언니가 아닌 동생 메리켓이라는 게 드러납니다. 아무래도 메리켓이 죽은 가족을 회상할 때 딱히 호의적인 느낌이 아닌 것을 본다면 가족 테두리 안에서도 그녀는 고립된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만큼 고립이 오래되다 보면 그것을 싫어하던 사람도 결국 그것을 자기 특유의 것으로 받아들이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으로 남에게 악의나 공격성을 표출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다만 언니인 콘스턴스 하나만은 굉장히 애정을 가진 것으로 묘사되는데 실제로 작가인 셜리 잭슨에겐 여자 형제는 없었다는 것으로 보아 친언니를 모델로 한 것은 결코 아니라, 아무래도 그가 원했던 자신에 대한 지지자로서 콘스턴스가 형성된 것이라 생각이 들더군요.
언니인 콘스턴스는 특정 누군가가 모델이 된 것이 아닌 전작 『힐 하우스의 유령』에서 시어도라가 해내지 못한 역할로 주인공이 기댈 수 있는 대상이라고 봐야 할 듯싶어요. 다만 이런 정신적인 의지할 대상이나 자신의 편이 되는 인물이 남성이 아닌 것은 작가가 여성인 것을 보아도 좀 특이한데 애초에 작가나 남녀의 애정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보면 전작인 단편소설집인 제비뽑기'에서도 남녀 간의 사랑이 부각되는 것은 오히려 드물고 심지어 연인이나 부부라 하더라도 언제나 감정적으로 차단된 느낌을 주는 소설도 있단 것을 보면 남녀 간의 애정으로 고립을 메꿀 생각은 없어 보입니다. 남자들과의 관계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호의적인 묘사는 적고 전작 『힐 하우스의 유령』에 실린 부록에는 남편의 외도 때문에 고생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는 걸 보면 말이죠. 어쩌면 작가인 셜리 잭슨이 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언급을 볼 때 자신이 받지 못한 모정이 자매애의 모습으로 드러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대화나 행동이 아니라면 그녀의 심리가 파악이 안 된다는 점도 그렇고요. 하여간 화재 사건 이후 줄리언 삼촌이 충격 내지 노환으로 죽게 되자 마을 사람들의 감정은 적대에서 호의로 변한 건지 불탄 집을 찾아와 사죄의 뜻으로 음식을 두고 가는 등의 행동을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사죄 행위도 상당히 늦은 감이 있는 게 이미 메리켓과 콘스턴스 자매는 불탄 집안에 바리케이드를 쳐서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그렇게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사는 것을 평화로 여기며 살아갈 것임이 암시되면서 소설이 끝나더군요. 메리켓이 적대하던 찰스는 결국 집에 놓인 돈을 노리고 온 거라는 게 드러나고요. 작가의 생전 마지막 소설이라는 점이나 결국 고립을 극복하지 못했고 그 안에 안주하는 것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결말은 뭔가 의미심장해 보여서 찜찜하지만 묘한 여운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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