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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만화로 독파하는 게공선』 리뷰

by 0I사금 2025. 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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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책 『88만 원 세대』를 읽었을 때 부록 부분에서 『게공선』이란 제목의 일본 소설이 언급된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제목이 특이해서 기억에 남았는데 도서관 일본소설 코너란에 가보니 이 책이 꽂혀 있더군요. 만화로 되었겠다 일단 인상 깊게 읽은 책에서 추천 비슷하게 나왔던 소설이겠다 싶어 빌려왔습니다. 일단 『게공선』의 원저자는 고바야시 다키지로 책의 부록으로 실린 작가의 일대기에 의하면 빈농의 자식으로 백부의 지원으로 상업고등학교를 다니고 은행에 취직, 거기서 게공선에 일하던 어부들의 증언을 토대로 소설 『게공선』을 발표 큰 호응을 얻었으나 책에 실린 제국 군대의 비판이 천황에 대한 비판이라고 여겨져 불경죄로 책이 발매금지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외에도 일본 프롤레타리아 작가 동맹의 서기장이 되기도 하고 작가 활동을 계속하다가 일본 특별고등경찰에 의해 검거되어 서른이라는 젊은 나이에 고문사했다고 합니다.

일단 원소설을 읽어야 원작과 비교가 가능하겠지만 이 만화 『게공선』은 만화의 퀄리티가 높고 주제의식을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쇼와 초기 여러 가지 이유 - 빈농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빚 때문에, 혹은 중개업자에게 속은 학생이 학비를 벌기 위해-로 일용노동자들이 캄차카 북오호츠크해에서 4개월 동안 게를 잡는 하쿠코마루호에 몸을 싣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주인공 격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빈농의 아들인 모리모토로 그는 일본정부에 속아 가족이 황무지로 이주하게 되고, 동생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게공선에 오른 인물입니다. 모리모토는 등장하는 인물들 중 가장 정의롭고 곧은 성격인데 만화 내에서도 가장 준수한 생김새로 그려져 있어요. 이 모리모토를 보면서 참 독특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흔히 이런 극한 상황에서 올바른 행동을 보이는 사람들은 대개 다른 작품들에서 어느 정도 교육받은 계층이거나 몰락한 귀족과 같은 설정을 넣어 어떤 식으로 남다름을 묘사하는데 반해 여기선 그런 것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보통의 일본 작품들이 으레 혈통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한데 반해 이 『게공선』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당시 사회의 하층민들 광산노동자, 황무지로 강제이주당한 빈농들이 태반이며, 중심인물인 모리모토가 극중 언급한 자신의 과거 역시 특출난 것이 아닌 당시 빈농들의 일반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유일하게 학생 신분으로 나오는 아키유키는 후에 모리모토의 뜻을 이어받는 인물인데 아키유키는 다른 이들과 달리 교육받은 계층이긴 하나 가난한 시골출신으로 악질 중개업자에게 속아 빚을 져서 억지로 게공선에 이른 인물이라는 설명이 등장해요. 그리고 가난한 집안에서 어렵게 공부하는 학생이라는 불리한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등장인물들의 이런 면모는 작가가 실제로 빈농 출신이었단 점이 작용했기 때문이란 생각도 듭니다.
 
게공선 내의 상황은 게공선을 소유한 회사에서 고용한 악질 깡패 아사카와와 게공선 내에서 혹사당하는 모리모토를 비롯한 노동자들의 대립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사카와 말에 꼼짝 못 하는 하쿠코마루호의 선장과 선원은 양심은 있으나 방관자들로 다른 게공선이 조업 중 침몰하지만 그 배가 보험에 들어있다는 이유로 구조를 금지하는 아사카와의 말에 두려워하면서 복종합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험난한 상황 속에서 병으로 죽어가거나 아사카와에게 매를 맞아 죽는 노동자들이 속출하고 풍랑에도 일을 하라며 떠민 탓에 모리모토는 중간에 행방불명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그는 근방의 러시아 함선에 구조되어 거기서 사회주의에 대해 약간이나마 배우고 다시 무사히 하쿠코마루호로 돌아와 사람들을 규합하여 아사카와와 회사의 폭정에 항거하여 파업을 시도합니다.

처음엔 노동자들도 자신들도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티려 하지만 이내 한계에 다다르고, 아사카와의 폭력에 항거하여 인간적인 대우를 요구하는 모리모토와 파업 주동자들은 배에 오른 해군들에게 매국노라고 몰려 린치당해 끌려가지요. 그 와중에 모리모토는 몰매를 맞는 와중에 아사카와에게 덤벼 그를 때려눕히고 그가 노동자들에게 위협으로 썼던 총은 바다로 떨어집니다. 모리모토와 다른 일행이 잡혀가는 것을 본 아키유키는 의기소침해지지만 모리모토에게 감화를 받은 다른 동료들이 처음 파업은 머릿수가 적은 탓이라 여겨 아키유키에게 다시 파업을 시도해 보자고 건의하고 이번에 300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파업을 주동합니다. 이로써 게공선의 작업이 중지되고 아사카와의 입장이 난처해지면서 결국 파업은 성공합니다. 아키유키는 뭍으로 돌아와서 파업이 일어난 게 자신들의 배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악독했던 아사카와는 회사에서 책임을 물어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나게 됩니다. 

인과응보이긴 하나 게공선내에서 벌인 그의 악행에 비하면 너무 약한 심판이라는 생각도 들긴 해요. 책의 말미에는 중요한 것은 조직을 이루는 것 즉, 연대와 단결을 강조하는 결말로 끝납니다. 이 작품에선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 보이며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기는 러일전쟁 직후로 일본의 제국주의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그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국민을 어떤 식으로 소모품 취급했는지를 묘사하면서 작가는 당시 일본 정부와 해군을 비판의 시선으로 그려냅니다. 자신들도 나름 나라를 위해 싸운다고 생각했던 게공선 내의 노동자들이 해군들에게 매국노라 몰려 린치를 당하며 해군들도 결국 국민을 착취하는 회사와 한통속임을 빗대고 있는데 이 부분이 책의 작가 해설 부분에 실린 문제를 일으킨 부분이지요... 시대를 앞선 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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