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거벗은 세계사』는 제가 잘 모르던 역사 이야기를 쉽게 풀어준다는 데서 관심과 흥미는 많이 가지만, 사정이 있어 최근 본방을 보지 못하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날 때 재방송을 볼 수 있으면 최대한 시청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오늘 TV를 켜니, 마침 『벌거벗은 세계사』 185화가 방영 예정이더라고요. 하지만 185화의 테마가 '인류의 조상'이라던가 원숭이 언급이 나와 왠지 내 취향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에 조금 망설여졌는데, 막상 흥미가 없어 보였던 주제도 『벌거벗은 세계사』를 통해서 접하면 재미있게 보는 경우가 많아 한번 믿어보자는 생각으로 TV 앞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시청 직전에도 단순 원숭이 조상 운운하는 내용이라면 대체 뭘 자세하게 다룬다는 걸까 의아했었는데, 정확하게 이번 185화에서 다룬 주제는 인류학, 더 자세하게는 인류 최초의 조상이 누구인지 파고들어 진화의 역사를 풀어보는 내용이더라고요.
문득 방송을 보고 있자니, 어린 시절 우연히 TV를 통해서 본 다큐멘터리가 하나 떠올랐는데 어쩌다 보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다큐멘터리의 내용 역시 인류의 조상과 관련된 것이었고 아직도 인상깊게 남았던 내용이 떠올랐는데요. 제가 어린 시절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와 공통된 조상을 가졌고, 어떤 계기(기후 변화로 추정)로 나무에서 생활하던 공통조상 중 일부가 땅에서 내려와 두다리로 직립보행하는 삶을 선택하게 되면서 현 인류의 시조가 되었다는 구절이 나레이션으로 언급된 적 있었는데 정확하게 이 구절과 흡사한 내용이 이번 185화에서 다시 언급되더라고요. 진화론을 다룰 때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라고 단정짓는 것이고 MC들 중 하나도 우리 조상이 원숭이라면 매우 충격적이라며 싫다는 반응을 보이기까지 했는데 이반 회차는 그 편견을 바로 잡고 고인류에 대해 파고든 회차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강연을 담당하신 교수님 정보. 참고로 이번 게스트는 다음 기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인류학도 근현대에 와서 부각된 학문이고 현대사하면 영국의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에 이젠 아예 고정 게스트가 되신 분이 나온다고 할 수 있어요.
https://news.nate.com/view/20250107n36294
이번 강연은 인류의 조상이 누구냐에 들어가기에 앞서, 인류학이라는 학문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그 역사를 먼저 파고들어갑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인류학이나 진화 관련 학문은 근현대에 들어서 발생한 학문이다 보니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를 거쳐서 근대가 되어서야 인간의 기원에 대한 탐구가 가능하게 되었는데요. 중세 시대에는 당연히 신이 모든 것을 창조했고 그 중 인간이 으뜸이라는 사고관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애초에 인류의 기원에 대한 고민이나 의문 같은 건 가질 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회차에서 진화라는 것은 반드시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퇴화와 손해를 포함하는 의미라고도 하던데 전체 인류사를 보면 중세시대의 역사는 대체 뭘까 싶었을 정도였어요. 고대사를 다룬 역사와 비교하면 중세시대는 인간의 모든 의문을 억눌러 퇴보하는 길을 걸어갔다는 생각 밖에요.
심지어 인류학과 관련된 학문이 태동했을 무렵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는 등 그 그림자가 짙게 남아있었으니까요. 현재 생물학의 분류 기준을 만들어 인류학에도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은 바로 스웨덴 출신 생물학자 칼 린네라는 설명이 나오는데 칼 린네는 기독교 신자이면서도 동물과 식물에 관심을 갖고 그들의 습성을 연구하여 그들을 학문적으로 분류했고 인간마저도 동물의 카테고리에 넣었다는 이유로 당시 사회와 종교 쪽에서 큰 비난을 받았다는 설명이 등장하거든요. 칼 린네 뿐만 아니라 후에 진화론을 연구하고 발표한 다윈마저도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정확하게는 원숭이와 공통된 조상)라고 주장한 것 때문에 조롱거리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등 과학적이지만 당시 기준 파격적인 주장을 한 인물들이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 일화를 통해 풀어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다윈의 진화론에 힘을 실어준 인물이 같은 인류학자였던 토마스 헉슬리라는 학자로, 여기서 설명이 나오지 않지만 그 유명한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그의 손자라는 정보는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토마스 헉슬리는 꽤 강경한 태도로 자신을 조롱하고 비난하는 주교의 말을 700명의 청중 앞에서 보기 좋게 반박하면서 대중의 지지를 얻게 되는데 이걸 보면 논란의 중심에 놓였을 때 비난에 수그리는 태도를 보이는 게 아니라 당당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인다는 생각이 새삼 들더라고요. 어쨌든, 사회의 비판과 비난에도 진화론은 힘을 얻고 인류의 조상이 누구인지 그 기원에 대한 조사가 넓어지게 되는데요. 이후 아프리카 대륙에서 고인류의 화석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화석이 발견되면서 인류의 조상이 누구이며 어떤 방식으로 인류가 진화하게 되었는지 연구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고인류 화석을 둘러싼 해프닝 중 영국에서 벌어진 조작사건, 필트다운 화석 조작사건이 언급되는데요. 40년 뒤에야 진위가 밝혀진 이 조작사건은 당시 승승장구하던 영국이야말로 인류의 조상이 살던 곳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해프닝이었지만 (그러고보니 일본에서 이와 비슷한 조작 사건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음) 사건의 관련자들은 이미 사망한 상태라 결국 누가 이런 사건을 벌인 장본인인지는 미스터리로 남았고, 의혹 중에 『셜록 홈즈』의 저자 코난 도일이 그중 하나라는 의혹은 참신한 반전이었습니다. 코난 도일은 이름값인지 뭔지 특이한 일화에 많이 엮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 어쨌든 이 필트다운인 조작 사건은 뒤로 미뤄둔 채 고인류의 화석인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파렌시스인 '루시'의 발견과 고인류의 가족으로 추정되는 발자국의 발견 등 현 인류의 조상이 누구인지 그 발견과 연구는 박차를 가하게 되는데요.
강연에서는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와 공통조상을 가지되, 거기서 갈라져 다시 유인원과 현 인류의 조상으로 나눠졌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인류의 조상인 고인류 오스트랄로피테쿠스보다 더 이전에 존재한 이족보행을 하던 인류의 조상 아르디피테쿠스의 존재까지 언급하는데 아르디피테쿠스는 이후 등장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는 달리 이족보행을 하면서도 나무에서 생활하기 쉽게 엄지발가락이 매우 길었다는 특징이 설명됩니다. 이건 제가 어린 시절 본 다큐멘터리에서 인류의 조상이 나무에서 생활하다가 땅에서 내려왔다는 구절을 연상하게 만들었는데요. 강연에서 강조하던 인류의 조상은 원숭이가 아니라 원숭이와 같은 조상을 가지고 있을 뿐 인류의 조상과 원숭이의 차이점으로 인류에게는 원숭이와 달리 꼬리가 없고 이족보행을 하며 다양한 손동작이 가능하다는 점을 언급합니다.
즉, 영화처럼 원숭이나 유인원이 지능을 가져 진화한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되는 게 아니라 다른 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였죠. 그리고 이번 강연에서는 사람들이 흔히 진화에 가지는 오해를 짚고 가는데 흔히 인류의 진화과정 하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손을 사용하는) 호모 하빌리스 - (불을 사용하는) 호모 에렉투스 - (슬기로운 사람을 뜻한다는) 호모 사피엔스의 순서대로 마치 포켓몬의 진화처럼 전 시대의 특성이 사라지며 발전했다는 것이 착각임을 풀어서 설명해줍니다. 현 인류가 아프리카 대륙에서 기원하여 전 세계로 뻗어 나간 건 사냥을 하고 불을 사용할 줄 알며, 사냥감을 쫓기 위해 장거리 달리기가 가능했던 호모 에렉투스가 식량을 얻기 위해 이동한 결과이긴 합니다. 하지만 호모 에렉투스가 호모 하빌리스가 사라지고 나온 건 아니며, 호모 사피엔스도 호모 에렉투스가 멸종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라는 점인데요.
정확하게 고인류는 다양한 종, 현재 연구 결과에 따르면 약 30여종이나 되는 종이 같은 시대에 존재했으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를 비롯 다양한 종의 고인류가 호모 사피엔스와 같이 존재했으며 결과적으로 호모 사피엔스가 현 인류의 조상이 된 건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한 결과물이라 설명합니다. 진화는 항상 발전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이족보행을 선택한 인류가 가진 취약한 점(심장병과 허리 디스크, 출산에 따르는 위험) 또한 설명이 되고요. 강연에서 자세하게 언급되진 않으나 고인류들 사이에 전쟁이 존재해 다른 종이 사라지는 케이스도 없지는 않았을 것 같았습니다. 또한 네안데르탈인이 같이 존재했으나 사라진 미스터리 또한 짚어주는데, 이 네안데르탈인의 화석이 발견된 것이 종의 기원이 발표되기 한참 전이라 당시 기준 제국주의를 합리화하는 시각에 맞춰 미개한 인간의 유골로 취급받았다는 해프닝도 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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