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는 사정이 있어 『벌거벗은 세계사』의 본방을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신 재방송을 한다면 그건 볼 수 있도록 편성표를 찾아 시간을 지키는 편인데 이번 186화도 재방송을 통해 감상하게 된 셈이네요. 하지만 186화는 부제를 보듯 테마가 프랑스의 요리 문화와 레스토랑의 음식 맛을 평가하는 미슐랭 가이드의 기원을 찾아가는 내용인지라 이 분야는 제 흥미를 끌만한 분야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거기다 제목은 근래 넷플릭스를 해지하는 바람에 시청하지 못하게 된 요리 서바이벌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의 패러디였던지라 생각보다 더 흥미가 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리뷰를 작성하기보다는 맛있는 요리가 많이 나올 테니 눈요기로 감상이나 해보자 하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청을 하게 되었는데요.
하지만 의외로 이번 회차가 재미있었던 부분이 단순 프랑스 요리에 뭐가 있는지, 미슐랭 가이드가 어떤 건지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의 미식문화가 성립하기까지 당대 시대적인 영향력이 강했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들과 떼어놓기 어렵다는 점이 컸는데요. 맛있어보이는 프랑스 요리들의 비중이 적은 건 아니지만, 프랑스의 요리 문화가 현대의 미식 문화로 명성을 떨치게 된 배경에는 요동치는 프랑스의 역사가 큰 관련이 많더라고요. 또한 우리가 아는 미슐랭 가이드가 프랑스어 발음을 그대로 따서 미슐랭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실제로는 타이어 회사로 유명한 미쉐린과 같은 단어이며 미슐랭 가이드를 내는 회사가 바로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이라는 사실 또한 몰랐던 것이기 때문에 좀 충격이었다고 할까요? 미쉐린 타이어에서 미슐랭 가이드를 내게 된 경위에 대해서는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 편이고요.
참고로 이번에 강연을 담당하신 교수님 정보입니다. 이번 게스트는 다음 기사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넷플릭스 요리 서바이벌인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의 출연자였던 셰프들로 만약 내가 저 프로그램을 시청했더라면 감회가 남달랐을지도 모르겠네요.
https://news.nate.com/view/20250114n33530
이번 강연은 프랑스의 요리문화와 미슐랭 가이드의 탄생에 대해 다루지만, 먼저 의외의 사실이 하나 언급되면서 시작합니다. 흔히 프랑스하면 요리고, 요리 문화가 발달한 곳이라면 관련 요리를 많이 먹어본 적이 없는 제 입장에서도 프랑스라고 단언할 정도였음에도 원래 프랑스가 미식문화가 발달한 곳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중세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신분제 국가가 으레 그러하듯 먹는 음식에도 차별이 존재했는데 당시 귀족과 같은 상류층은 자신들의 부를 과시하기 위해 공작새나 백조 같은 지금은 요리 재료로 취급하지 않는 고기에 값비싼 향신료를 범벅해서 먹는 경우가 있었다면 일반 평민들은 거친 갈색 빵에 구하기 쉬운 채소를 요리해서 먹었다는 설명이 등장합니다. 거기다 이탈리아 가문 출신인 카트린 드 메디치가 시집오기 전까지는 딱히 도구(포크)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등장해요.
프랑스 요리문화에 도구(포크)와 넵킨을 이용하게 된 건 왕비인 카트린 드 메디치로써 당연히 처음 새로운 게 도입되었을 때 그러하듯 프랑스 사람들의 반응은 탐탁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결국 왕비의 영향을 받아 프랑스의 요리문화와 예법이 개선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대식가로 유명한 태양왕 루이 14세로 인해 궁정의 요리 문화가 더욱 발달하는 과정을 거치게 돼요. 여기서 언급되는 루이 14세가 먹은 음식 목록을 보면 저걸 과연 한 사람이 다 먹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만찬이었는데 대식가라고 하지만 그 음식을 모두 먹었다는 게 아니라 남은 음식은 셰프들이 다른 귀족들에게 판매하여 먹었다는 언급을 보아 고위사람이 먹던 음식을 아랫사람들이 나눠먹는 문화가 저기서도 존재했다는 점이 좀 신기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음식이 귀한 시절에 왕이 먹다가 남긴 음식이라도 버리는 처분을 한다는 게 이상한 일이었을 듯.
재미있는 점은 프랑스의 역사적이고 오래된 레스토랑이 많이 생기고 고급문화로 취급되던 궁정과 귀족 음식이 대중화된 계기에는 프랑스의 역사적인 사건 - 프랑스혁명이 아주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인데요. 프랑스혁명으로 왕실을 비롯 다수의 귀족들이 처형되고, 다른 귀족들이 프랑스를 떠나 망명하는 사태에 이르자 왕실과 귀족 가문에서 일하던 요리사와 하인들이 실직을 하게 되고 그들이 먹고살기 위해 파리에 레스토랑을 운영하게 된 것이 이유라고 하더군요. 어느 책에서 본 것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같은 경우도 구한말 나라가 망하고 더 이상 왕실에서 일할 수 없게 된 수라간 궁인들이 요릿집을 운영하게 되었다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저렇게 왕실이 무너지고 갈데 없어진 전문요리사들이 자기 가게를 내는 것도 나라를 막론하고 흔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서 프랑스 요리를 고급화하고 더 대중화시킨 인물들로 카렘과 에스코피에라는 두 인물의 설명이 나오는데, 게스트인 셰프들은 그 이름만 듣고도 누군지 단박에 알아차릴 정도로 그 분야에서 대표적인 이들이었습니다. 요약하면 카렘은 프랑스의 요리를 고급화하고 현대적인 코스 요리의 기틀을 마련했다면, 에스코피에는 프랑스 요리를 대중화하고 현대의 셰프 체계를 마련한 인물로 보이더라고요. 재미있는 건 현대의 코스 요리는 프랑스의 전통이 아니라 원래는 러시아의 전통문화로 추운 지방에서 음식이 식는 걸 막기 위해 한꺼번에 만찬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음식을 따뜻하게 하나씩 내오는 것이었다고 하네요. 또 프랑스의 요리들이 더 대중화가 된 계기에는 기술의 발전, 바로 자동차가 등장하면서인데 여기서 우리가 아는 미슐랭 가이드가 비로소 언급됩니다.
미슐랭 가이드가 타이어 회사인 미쉐린에서 나온다는 사실은 앞에서 언급했는데 미쉐린에서 미슐랭 가이드를 발행하게 된 계기는 사람들이 더 많은 타이어를 사 가기 위해선 자동차를 많이 사용해야 하고, 그러기 위한 방법으로 프랑스 곳곳으로 여행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는 의도였습니다. 당시 나온 미슐랭 가이드는 현재 나오는 것처럼 레스토랑 분야를 따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편리한 호텔 위주로 소개하는 여행 가이드에 가까웠으며 이후 시간이 지나면서 트렌드에 맞춰 레스토랑 분야를 분류하며 변화한 것이라고요. 또한 상세한 지리 설명 덕에 2차 대전 당시 노르망디 상륙작전으로 프랑스에 도착한 영국군을 위해 지도 대신으로 쓰였을 정도로 활용도가 높았다는 점이 언급됩니다. 이후 별점을 이용한 레스토랑 평가가 도입되면서 셰프와 레스토랑 입장에선 미슐랭 가이드에 등록되는 게 대단한 일이라는 사실이 설명되는데요.
하지만 이 미슐랭 가이드로 인한 부정적인 사건 또한 없지 않았습니다. 일단 미슐랭 가이드는 1년마다 새로 발간되는 것이기 때문에 셰프들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이 미슐랭 가이드에 등록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끝이 아니라 별점을 유지하거나 더 높이기 위한 투자에 더 신경을 써야 하는 등 부담감이 늘어날 뿐만 아니라 만약 별점이 하락하거나 미슐랭 가이드에서 사라진다면 레스토랑의 매출에 영향이 없을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레스토랑의 별점이 하락한 것 때문에 매출이 줄어들었다며 미슐랭 가이드의 평가방식에 의문을 제기한 소송이 등장하기도 했는데 결국 이 소송은 법원이 미슐랭 가이드 측에 손을 들어주는 결말로 마무리되었다고 하더라고요. 심지어 미슐랭 가이드에서 쓰리 스타(최고점)를 받은 프랑스인 셰프가 자신의 레스토랑이 투 스타로 하락할 수 있다는 가짜 기사에 절망하여 자살하는 사건이 있는 등 어디에도 명암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언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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