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룩 업(Don't Look Up)』 은 혜성 충돌과 지구멸망에 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라길래, 좀 흥미가 생겨서 찜을 해두긴 했지만 정작 본 것은 미뤄둔 영화입니다. 드라마랑 다르게 영화는 본다 본다 하면서 자꾸 미루게 되는 경향이 있는데 실은 길어도 한편이 한 시간 내외인 드라마와 다르게 영화는 두 시간에 육박하는 경우들이 있어서 그런 모양. 이 『돈 룩 업(Don't Look Up)』 도 장장 두 시간 18분이라는 장대한 분량인지라 선뜻 도전하기는 망설여졌는데요. 거기다 초반 진입했을 때는 지구 멸망이라는 분위기는 잘 나지 않아 약간 몰입도가 흐트러진 탓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앞부분은 조금 딴짓을 하면서 보게 된 느낌도 있었는데, 처음 천문학자인 두 주인공인 민디와 케이트는 새로운 행성의 발견에 기뻐하다가 이것이 지구에 충돌한다는 사실을 알고 어떻게 세상에 알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둘이 시도한 방법이 유명한 예능 쇼에 출연하는 거였는데, 일담 MC들부터가 혜성 충돌이라는 소재를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데다, 그런 분위기에 화가 나 소리치는 케이트의 행동은 인터넷에서 조롱거리가 되는 상황까지 발생해요. 그리고 이 상황을 답답하게 여기는 동료 학자들의 모습까지 울적한 상황만 이어지는데요.
뭐랄까 같이 출연한 민디는 호감을 받았는데 비해 케이트는 밈이 되어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다는 게 딱 현재의 인터넷 세태를 고대로 풍자하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심지어 케이트의 전 남자 친구는 이때를 기회로 관종짓을 벌이며 돈을 벌려고 하는 바람에 보는 사람까지 짜증 나게 만드는데, 심각성을 모르고 인터넷으로 쓸데없는 소리를 토해내며 정신을 파는 인간들의 행태는 시청자들도 같이 답답함을 느끼게 해 주더라고요. 지구 멸망을 막으려고 고군분투하는 인간들의 행태가 아니라 지구 멸망을 앞둔 인간들의 지리멸렬한 일상물 같았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나라도 갑자기 지구가 멸망한다는 소리를 들으면 그것을 진지하게 들을 것 같지는 않고, 으레 있는 종말론을 들먹이는 관종처럼 생각하기도 할 것 같아서 다시 보니 조금 미묘한 느낌이었다고 할까. 지구 멸망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이 영화는 『2012』같이 지구 멸망 사태를 벗어나 살아남으려는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저런 사태를 접하면 벌어질 수 있는 인간 세태를 풍자하는 영화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결말에서 얄짤없이 지구가 혜성 충돌로 멸망하는 결말까지 정점.
이야기로 돌아가면 답답한 이런 사태를 역전시키는 건 다름 아닌 대통령의 개입이었습니다. 처음엔 미국 수뇌부에서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진지하게 지구 멸망을 막으려나 했는데 알고 보니 대통령은 혜성 충돌을 기회 삼아 자신의 지지율을 높이겠다는 속셈을 보여주더라고요. 사람들이 혜성 충돌에 대해 진지하게 태도가 바뀌는 것도 대통령의 직접 언론과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발표를 하면서인데 확실히 이런 사태는 권력자나 수뇌부의 입이 있어야 사람들이 알아먹는가 싶더라고요. 이런 것마저 현실 반영이려나요.
속셈이 어찌 됐든, 그는 조금 정신 상태가 의심스러운 참전용사를 우주선에 태워 혜성을 없애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는데 여기서 다가오는 혜성에 32조에 달하는 희귀광물이 있어서 이걸 차지하면 어마어마한 부가 돌아온다며 미국 수뇌부는 혜성을 이용하려고 계획을 수정하는데요. 여기서부터 혜성이 오네 마네 갑론을박을 벌이며 사람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납니다. 바로 혜성이 온다며 위를 보라는 '룩 업'파와 충돌이 거짓말이라며 위를 보지 말라는 '돈 룩 업' 파와의 대립. 여기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양반은 너무 사기꾼 스멜이라 저거 믿어도 되려나 싶더니 후반 쿠키 영상에선 끝까지 살아남아 존재감을 자랑하더라고요.
중간중간 미국이 아닌 다른 국가의 시민들이 이 혜성 충돌 사태에 대처하는 모습이 다양하게 그려지기도 하는데요. 아무래도 중간에 절에서 한꺼번에 절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낯익던데, 이거 한국이 맞았네요. 하여튼 이런 사태에 일반인들이 하는 건 없고, 국가들끼리 조약을 체결하여 핵미사일을 혜성에 발사한다는 계획은 폭파 사고 같은 걸로 틀어지며 결국 혜성은 여지없이 지구로 충돌합니다. 프로젝트가 실패하자 대통령이랑 책임자는 화장실 간다며 도망을 치고, 다른 요원들도 가족을 만나러 가야 한다면서 자리를 떠난 뒤 대통령의 아들만 그 자리에 남는 것도 미묘했달까.
주인공인 천문학자 일행은 지구 멸망은 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다 함께 모여 마지막으로 저녁 식사를 하는데요. 주인공인 민디는 혜성 관련 발표를 하면서 대중들 관심이 쏠리자 사람이 변했는지 부인 몰래 바람도 피우고 그러다가 지구가 망하기 전 정신을 차리고 화해를 시도하고, 민디의 가족과 케이트(+그가 중간에 사귄 연인), 그들의 상사였던 테디는 식사도 하고 일상적인 대화를 하면서 덤덤하게 마지막을 맞이합니다. 확실히 노력을 해도 막을 수 없는 사태라면 더 발버둥 치기보다는 소중한 사람과 추억을 쌓는 게 낫겠다 싶더라고요. 그렇게 지구는 멸망하고 지구인들이 썼던 물건들이 허공에 흩어지면서 영화는 엔딩을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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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끝나고 쿠키 영상이 두 개나 나오는데, 개인적으로 이게 본편 분위기를 조금 깨는 느낌. 2만 년 뒤 우주선 타고 도망친 미국 수뇌부 인간들이 다른 행성에 도착하니까 갑자기 장르가 달라지는 것 같아서 깼달까요. 하지만 멸망한 지구의 폐허에서 대통령 아들만 살아남아 핸드폰으로 생존 인증하는 장면은 좀 웃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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