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는 예전에 추석 특선으로 방영해 주는 걸 보게 되었습니다. 어쩌다 배우들이 유럽까지 가서 캠핑하는 예능을 하나 재밌게 보고 TV를 그대로 틀어놓았다가 다음으로 방영해 주는 영화까지 보게 되었거든요. 이 영화는 최민식 배우가 주연이고, 천재 수학자로 나오는 내용이라 어떤 이야긴가 괜히 궁금해져서 계속 보게 되었습니다. 보통 자신이 천재라는 걸 숨기고 평범하게 사는 인물과 그와 얽히는 인간미 있는 어린애의 이야기라면 힐링물에 가깝지 않으려나 하는 생각으로요. 추석 연휴니까 매운맛 서사보다는 은은한 힐링극이 좋지 하는 마음도 들었고요.
아무래도 주인공이 천재 수학자라는 설정만으로는 다양한 이야기를 끌어내기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예를 들면 범죄 장르물이고 주인공이 수학자라면 수학 공식을 이용해 사건을 푼다거나 힌트가 수학공식에 있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겠지만 일단 이 영화는 그런 장르가 아니니, 이야기가 좀 더 단순할 거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학교에서 그냥 지나치는 사람이 알고 보니 천재 수학자였고 수학을 못하는 아이가 그에게 가르침을 받아 성적이 좋아진다는 앞부분 이야기는 어느 정도 힐링물의 공식에 가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후반으로 갈수록 사회적으로 배제된 두 주인공이 서로를 지켜주기 위해 세상에 나서는 이야기로 바뀌게 되는데, 일단 학교의 경비원 일을 하고 있지만 알고 보니 천재 수학자인 리학성은 탈북자고, 과거 적응을 하지 못한 아들이 월북을 시도하다 죽은 과거가 있습니다. 다른 주인공인 소년 한지우는 영재 고등학교에 사회적 배려자로 들어온 입장이라 교실 내부에서 묘하게 소외되는 입장이며 작중에서 이를 묘사하는 장면이 많아요. 한지우는 중반부 공부를 하러 갔다가 엉뚱하게 시험지를 유출하려 했다는 누명을 쓰고 입막음당해 강제 전학을 가야 하는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좀 의외였던 것은 초반 아이들과 말이 잘 통하고 성격 좋은 이로 보였던 수학 교사가 생각지도 못한 빌런이었다는 사실이었다고 할까요. 보면서 초반 호감 가는 이미지가 와장창 깨지는 수준. 한지우는 누명을 썼음에도 리학성이 자기 존재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의중을 알고 상황을 해명하지 않은 채 강제 전학을 받아들이는데, 이 사실을 나중에 안 리학성은 피타고라스 어워드라는 대회에 모습을 드러내어 자신이 북한의 유명한 천재 수학자라는 사실과 한지우가 누명을 썼다는 사실을 밝히고 사라집니다.
물론 리학성은 행방불명된 게 아니고, 다른 새터민의 도움으로 미국으로 떠난 것. 때마침 북한이 리학성을 찾으면서 남한이 납치했네 시끄럽게 굴던 터라 더 지내기 힘들어진 상황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 정도 천재라면 국내보다는 미국같이 더 큰 물에서 지내는 게 더 낫겠단 생각도 들었달까. 여하튼 3년 뒤 대학의 연구실에서 리학성과 한지우와 재회하는 것이 엔딩으로, 이 영화는 말하자면 풍파를 많이 겪어 마음을 닫은 천재 수학자와 수학을 못하고 소외되었지만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는 데는 진심인 아이의 유대를 다룬 영화라고 볼 수 있겠네요. 개인적으로 수학 공식과 피아노 연주를 겹친 장면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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