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한테 잭 런던의 『야성의 부름』은 『야성의 절규』라는 금성출판사 청소년 문고판의 제목으로 더 기억되는 소설이에요. 『야성의 부름』의 원제는 'The Call of the Wild'이니 『야성의 부름』이나 또 다른 출판사의 『야성의 외침』이란 제목이 원제에 더 근접하게 되겠지만 전 왠지 『야성의 절규』라는 처음 안 제목이 더 맘에 들었습니다. 뭔가 더 강렬하게 이미지가 와닿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하지만 내용의 분량이나 진행 자체는 예전에 읽었던 청소년문고판과 큰 차이가 없이 썰매개 벅의 일생을 다루고 있는데요. 이렇게 요약하면 단순히 썰매개로서 헌신한 이야기처럼 느껴지겠지만 실상은 우연히 썰매개의 길에 들어선 벅이라는 호사스러운 남부출신의 개가 혹독한 북극의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고 점차 야생에 가까워지다가 야성의 울음소리에 이끌려 결국 숲으로 돌아간다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내용의 전반은 판사의 집에서 지내던 벅이 그 집에 고용된 정원사 조수의 도박빚 때문에 썰매개로 팔려가고 그 와중에 폭력과 힘의 법칙을 체감하면서 썰매개로의 임무를 터득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벅은 세인트버나드 부견과 셰퍼드 모견 사이에서 태어난 덩치 큰 개라는 설명이 나와요. 책에 등장하는 썰매개들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허스키들이 주를 이룹니다. 특이한 것은 벅이 기존의 생활에서 강제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던 이유가 인간들의 탐욕이 원인이었는데 직접적으로는 도박꾼인 정원사 매뉴얼의 빚 때문이었고, 간접적으로는 북극 지방에서 다량의 금이 발견되어 금을 탐내던 인간들의 발길이 그곳으로 향했기 때문입니다. 후반에 벅을 위협으로 몰고 간 어리석은 인간들도 탐욕에 휩쓸려 현실을 바로보지 못하는 인간들이었고요.
벅의 운명이 크게 바뀌는 틀을 마련한 것은 인간의 탐욕이지만 이 소설은 그런 탐욕이 시시할 만큼, 흥미진진하게 벅의 모험담을 풀어가는데요. 동료애 같은 게 우스울 정도로 잔혹한 개들끼리의 싸움과 그런 환경이 줄곧 이어지는데도 눈살 한번 찌푸리지 않고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썰매개 리더인 스피츠(눈처럼 하얗고 웃는 낯이라고 하니 아마 사모예드 같은 종의 개로 추측)와 벅의 대립이나 개들끼리의 서열다툼과 같은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가 제법 등장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의 몰입도가 상당합니다. 사뭇 야생의 법칙을 찬양하는 것처럼 진행되는 이야기의 이면에는 작가의 사상이 깔려 있는 덕도 있는 듯한데 이건 뒷부분 작가의 설명을 보면 말이죠.
이런 혹독한 이야기를 전환시키는 것은 존 손톤의 등장인데, 죽음의 위기에서 벅을 구해준 뒤 벅에게서 거의 헌신에 가까운 애정의 대상이 되는 이 인물은 전반에 찬양되다시피 한 야생의 감성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지요. 하지만 존 손톤 역시 동료들과 함께 전설의 금광을 찾다가 그곳 원주민의 습격을 받아 목숨을 잃게 되는데, 존 손톤처럼 겸손한 인물이라도 결국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은 아닐까 싶네요. 전설의 금광을 찾아 나선 여행이 금에 대한 욕심이 아니라 미지의 것에 대한 모험심 때문이라고 해도 말이죠. 그리고 마지막 부분 이하트 족 인디언들이 존 손톤 일행을 습격한 것으로 보아 금광을 찾아 나섰던 인간들과 원주민들 사이에 혈전이 종종 벌어지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들고요.
하여간 존 손톤의 죽음으로 인간의 세계와 완전히 연결고리가 끊어진 벅은 그동안 자신을 이끌고, 흔들었던 야성의 소리, 늑대들의 울음소리에 이끌려 숲 속으로 떠나고 몇 연뒤 이하트 족 인디언들 사이에서 두려운 '유령개'의 전설로 남게 된다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이 책을 다시 완독 한 결과, 그 몰입도나 와닿는 감정에 있어서 역시 명작은 명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오묘한 것이 이 소설의 엔딩인데 늑대 무리를 이끄는 리더가 된 유령개 '벅'이 손톤이 죽어간 야영장의 연못을 찾아오는 장면이에요. 야성의 세계로 돌아갔지만 애정의 감정은 지울 수가 없는 걸까요? 다시 읽더라도 이 엔딩의 미묘함 때문에 가슴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들곤 합니다.
책의 부록에 실린 작가와 관련된 설명을 약간 하자면 저자인 잭 런던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어머니의 재혼 뒤 의붓아버지 밑에서 자라다가 생활이 궁핍해지자 온갖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고 합니다. 나중에 작가로서의 재능을 깨닫고 작품 활동을 시작 『야성의 부름』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일약 인기작가가 되고 그 후의 작품들도 성공하면서 부를 쌓게 됩니다. 하지만 그런 성공이 오히려 독이 되었는지 재산을 탕진하고 40세에 자살을 했다고 하는군요. 소설만큼 극적으로 살다 간 인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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