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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설과 만화

『셜록 홈즈 전집』 9권 : 「셜록 홈즈의 사건집」 리뷰

by 0I사금 2025.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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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전집』 마지막권 9권 리뷰입니다. 『셜록 홈즈』 시리즈는 좀 더 길어도 괜찮을 거 같지만 이건 뭐, 제가 원한다고 될 일은 아니니 이 9권에서 만족해야겠지요. 『셜록 홈즈 전집』 9권 「셜록 홈즈의 사건집」의 서문엔 아서 코난 도일의 글이 짤막한 페이지로 실려있는데 왠지 이 글을 읽다 보면 셜록 홈즈 시리즈를 계속해야 했던 아서 코난 도일의 애달픔이 느껴지지 않나 싶더군요. 『셜록 홈즈』가 지나치게 자신의 문학적 역량을 빼앗아간다는 생각에 그를 한번 죽였다가 독자의 열 같은 성화에 못 이겨 그를 다시 살려냈고, 드디어 그의 행적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다는 데서 코난 도일이 꽤나 만족한 거 같다는 생각이...


셜록 홈즈의 사건집은 전편보다 꽤 많은 열두 편의 단편이 실려있습니다. 첫 번째 단편 「거물급 의뢰인」은 수많은 여자들을 농락해 온 사기꾼이 귀족가문의 아가씨를 낚아채려는 것을 막아달라는 부탁을 수수께끼의 의뢰인에게서 받습니다. 그 사기꾼의 행적을 증명하기 위해 아군으로 그 사기꾼의 피해자였던 여성까지 협력합니다만... 이 단편에선 그동안의 홈즈 시리즈에 등장했던 여성들 중 가장 짜증 나는 타입의 여성이 등장합니다. 고귀한 환경에서 자란 나머지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지나친 독선으로 사람 속을 긁어놓는 타입이요. 이런 여성들은 좀 데어(?) 봐야 정신을 차릴 거 같은데 사기꾼이 자신을 농락한 여성에게 멋진 복수를 당하고 홈즈가 그놈의 행적을 증명할 증거를 손에 넣으면서 사건은 해결됩니다.


두 번째 단편 「탈색된 병사」는 놀랍게도 왓슨이 관찰자로 나서는 것도 아니고 작가가 전지적 시점으로 나서는 것도 아닌 홈즈가 자신의 사건을 직접 서술하는 형태로 시작하는 단편입니다. 왓슨의 글 쓰는 취향을 홈즈가 비난하자 왓슨이 화를 내며 홈즈에게 글을 맡겨버렸기 때문이에요. 게다가 왓슨은 새 아내를 얻어서 베이커가를 떠났다고까지 나오는군요. 역시 왓슨=도일이라는 증거일라나요. 친구의 부재를 걱정한 한 병사출신 젊은이가 그 친구의 고향까지 찾아갔지만 오히려 친구의 부모에게 수모를 당하고 쫓겨난 뒤 홈즈에게 사건을 밝혀달라고 의뢰합니다. 사건은 살인 같은 범죄가 아니라 질병 탓에 아들을 격리해 둔 셈이었는데, 막판에 약간 훈훈한 반전이 있었어요.


세 번째 단편 「마자랭의 다이아몬드」는 왓슨이 관찰자로 나서는 게 아니라 전지적 작가 시점을 취하는 소설이었는데 평소에 왓슨의 시점을 취한 소설들을 계속 읽어왔던 지라 생뚱맞게 이런 작품이 등장하면 익숙해지기 어렵더군요. 「빈집의 모험」 당시에 쓰였던 홈즈의 모형이 사건을 밝히는데 아주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하지만 사건 자체는 다른 단편보다 뭔가 엉성한 구석이 있어 보이는 소설이었어요. 범인들의 대화를 통해 사건의 진상이 쉽게 밝혀진다는 게 좀 아쉬웠어요.


네 번째 단편 「세 박공집」은 홈즈가 탐정 일을 하면서 여러 가지 위협에 시달릴 수 있음을 알려주기도 한 단편입니다. 실질적인 사건은 돈 많은 과부에게 농락당한 청년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였어요. 물론 살인은 아니며, 청년은 병으로 급사한 건데 죽기 전 자신을 농락한 여성에 대한 앙심으로 자신의 경험담을 글로 써서 출판할 생각을 하자 과부가 손을 써서 청년의 유품을 빼돌리는 사이에 여러 가지 트러블이 생긴 셈이지요. 이번 사건은 청년의 모친에게 보상을 해주는 걸로 봐주면서 홈즈가 제법 관대한 처분을 내립니다. 홈즈가 나설 것도 없는 애정 다툼이어서 그런지 모르지만 가끔 너무나도 관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홈즈라고 할까요.


다섯 번째 단편 「서섹스의 흡혈귀」는 제목은 물론이거니와 흡혈귀라는 소재가 제법 기묘해서 내용을 좀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던 소설입니다. 아마 이번 단편집 중에서 가장 재밌던 소설이 아니었나 싶네요. 이복동생을 미워하던 전처의 아들에게서 자신의 아들을 지키면서 남편에게 그의 친아들이 저지른 소행을 밝힐 수 없는 여자의 입장은 그야말로 엄청 속이 쓰렸을 거라는 생각. 보통 전처의 자식을 미워해서 말도 막 지어내는 못된 계모들이 있는 걸 보면 이 여자 같은 경우는 정말이지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집안사람들끼리의 알력을 눈치채지 못하는 남편은 정말 엄청 둔감하다는 생각도요. 첫째 아들을 맹목적으로 믿다시피 하는 건 자식을 너무 사랑해서가 아니라 형제들끼리 흔히 있을 법한 감정대립도 생각 못했다는 것이고 아내한테 한 행동을 봐도 아버지나 남편으로써 세심하지 못하다는 결론.


어쩌면 의도적으로 자기 집안에 감도는 불운을 외면했을 수도 있겠네요. 근데 어느 쪽이든 답답한 인간이라는 건 마찬가지. 현실에서도 이런 일은 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최근처럼 재혼가정이 늘어나는 경우는 더욱. 여섯 번째 단편 「세 명의 개리뎁」은 전작인 「빨간 머리 연맹」이 떠오르는 단편이었습니다. 범죄자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찾기 위해 건물주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가짜 유언장 소동을 벌이거든요. 건물주가 특이한 성을 가졌다는 데서 착안하여 같은 성을 가진 사람 둘을 발견하면 한 거부가 거액의 유산을 물려준다고 이야기를 꾸며 그 노인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건물을 나간 사이에 그 안에 침입하여 물건을 찾아내려고 합니다. 물론 홈즈가 현행범으로 범죄자를 잡지만요. 「빨간 머리 연맹」의 아류 같지만은 제법 재밌는 단편이었어요.


일곱 번째 단편 「토르교 사건」은 괘씸한 불륜 커플이 등장하는 단편이랄까요. 뭐 자기들 말로는 정신적으로 연결되었다고 하지만요. 근데 이번 사건에 등장한 여성도 「거물급 의뢰인」에 등장하는 귀족 여성만큼이나 맘에 안 들더군요. 제가 개인적으로 남자 앞에서 성녀처럼 굴고 다른 여자들을 자기보다 모자란 듯이 보는 여성들을 혐오하는 편인데 남자를 변화시키겠다고 믿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거든요. 뭐, 소설 상에서는 이 불륜의 대상이 된 여성을 대단한 존재로 인정하는 투로 나오긴 합니다만 실제로는 거의 불가능한 일에 가까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냉혈한 남자에게 청춘을 다 뺏기고 결혼생활마저 엉망진창이 된 여성이 정신적인 사랑 운운하는 젊은 여자에게 남편을 심적으로 빼앗겼을 때 벌인 극단적인 행동이 범죄라고 하더라도 이해가 되었을 정도였습니다. 여기서 제일 나쁜 놈은 물론 남편새끼고요.


여덟 번째 단편 「기어다니는 남자」는 홈즈 시리즈에서 가장 황당하다 싶은 사건은 아니었나 싶습니다. 한 저명한 교수의 기이한 행동에 불안해하던 사람들의 의뢰를 받고 홈즈가 사건을 파헤칩니다. 근데 결말이 생뚱맞아서 이게 가능한가 싶더라고요.  결론은 약은 함부로 복용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쓸데없이 덧붙이면 홈즈 시리즈에서 개는 대개 유용한 동물로 많이 등장합니다. 아홉 번째 단편 「사자의 갈기」는 내용을 제법 상세하게 기억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아마 「얼룩 띠의 비밀」과 함께 어린 시절 책에서 본 적 있는 소설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특이하게도 이 사건 역시 홈즈가 은퇴한 뒤가 배경이라 왓슨이 더 이상 관찰자의 임무를 하지 않고 홈즈의 시점으로 사건이 진행되는데 정확하게 살인은 아니라, 사고사에 가까운 사건입니다. 그나저나 해파리는 좀 무서운 놈인 듯...


열 번째 단편 「베일 쓴 하숙인」은 개인적으로 좀 감동적이다 싶은 소설이었습니다. 「서섹스의 흡혈귀」와 「사자의 갈기」처럼 내용을 잘 기억하고 있는지라 이 단편이 왜 계속 안 나오는 건가 시리즈를 읽어가면서 조마조마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소설은 얼굴에 끔찍한 흉터를 가졌기 때문에 베일을 쓰고 다니는 여성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고해성사하듯이 홈즈에게 털어놓습니다. 곡마단에서 학대받던 여성이 그 구렁텅이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을 꾸몄지만 결과는 비극. 이후 그가 홈즈에게 사건을 털어놓은 이유 중 하나가 사건과 관련된 사람이 죽었다는 것 외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결심을 했었기 때문이라는 건데 결과적으로 홈즈에게 사건을 털어놓았기 때문에 자살할 생각을 그만두게 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왠지 이 단편의 결말이 감동적이었어요.


열한 번째 단편 「쇼스콤 관」은 빚더미에 몰린 한량이 저지른 기묘한 사건을 파헤치는 단편입니다. 살인이 아니라 누이의 죽음을 숨겨서 누이가 받는 수익을 좀 더 유지한 뒤 어떻게든 빚을 타파하려는 남동생의 눈물은 나지 않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이런 동생을 그토록 아낀 누나가 실로 대인배였다는 생각. 근데 사건이 살인은 아니었고 한심한 인간이 저지른 우습기까지 한 해프닝인지라 작가인 코난 도일은 이 한량에게 관대함을 베푸셔서 해피엔딩을 내려주셨습니다.


마지막 단편 「은퇴한 물감 제조업자」는 시리즈의 마지막 단편입니다. 종종 사건의 열쇠를 진 인물들 즉, 사건을 저지른 당사자들이 피해자로 위장하여 홈즈를 찾아온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사건이 그런 경우입니다. 범죄자들이 원래 그런 건지 오만한 심보가 있어서 등장하는 범죄자 내지 흉악한 피해자들은 홈즈를 과소평가하기도 하더군요. 그리고 눈여겨볼 점은 홈즈는 사건 자체에 관심이 있고 그 뒤의 찬사에는 흥미가 없어서 자신의 이뤄낸 행적을 고스란히 경찰들에게 주는 경우가 있는데 그 관대함이 경찰들이 홈즈에게 우호적인 입장을 만든 셈이지요.


이렇게 해서 『셜록 홈즈 전집』도 전권을 다 독파했습니다. 왠지 마지막권에서의 단편이 전편의 단편보다는 미진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홈즈의 매력이라고 할까요? 번역본의 뒷부분을 보면 홈즈 시리즈가 나온 연도를 실어놓았는데 제 생각대로 황금가지 출판사에 나온 소설들은 연도 순에 맞추어 나온 것이더군요. 먼저 장편소설을 연도에 따라 낸 뒤, 단편소설은 분리해서 그것도 연도에 맞추어 나왔는데 단편 소설은 몇 편 정도가 순서가 바뀐 걸 빼면 각권에 실린 소설이 나온 시기는 비슷비슷하다고 봐도 무방할 듯.


그런데 이 연도를 살펴보다 보면 홈즈가 죽은 '마지막 사건(1893)」과 홈즈가 부활한 「빈집의 모험(1903)」 사이에 텀이 꽤 길다는 게 눈에 들어옵니다. 이 연도를 보니, 홈즈를 되살리는 데 코난 도일이 얼마나 망설였는지 눈에 들어오더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소설 「베일 쓴 하숙인」과 「쇼스콤 관」이 나온 해가 1927년이며 소설 「주홍색 연구」가 첫 나온 해가 1887년이니 홈즈 시리즈가 40년이나 연재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홈즈가 얼마나 대중들에게 오래 인기를 받아왔는지를 증명해 주는 셈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창작물 하나가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면 그만큼 긴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려 주는 사례인 듯.


외에도 역자가 실어놓은 코난 도일의 생애와 홈즈의 곁다리 이야기도 흥미진진했습니다. 작품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한 이유도 하나의 이야기가 나오기 전에 얼마나 많은 계기가 있어야 하는지를 알 수 있어서랄까요? 그 계기가 보통 저자의 삶과 관련이 있는 경우가 많고요.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듯 신들린 듯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작품들은 얼마 되지 않는 듯해요. 이렇게 해서 『셜록 홈즈』 시리즈의 리뷰를 끝낼 수 있었는데 여러모로 아쉬우면서도 시원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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