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역사책은 전부 다 흥미분야라고 얘기하기는 어려워서 제 기호에 따라 가끔 찾아보는 게 다입니다.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도 좀 으스스한 이야기를 찾다가 우리나라에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을 정도로 엄청난 자연재해(대기근)가 있었다는 글을 인터넷에서 접하고 찾아본 건데, 특이하게도 이 책은 문화사도, 정치사도 아니라 자연의 변화가 어떤 식으로 당대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줬는지 살펴보는 책입니다. 책에서 쓰이는 말로는 '기후사'적인 관점으로요. 책에서 언급되는 대기근은 1670년과 1671년 두 해에 걸쳐 일어난 소위 '경신 대기근'으로 유례없는 아사자를 낸 흉년이었다고 하는군요. 생소하게도 이때는 그다지 사람들에게 인지되지 못하는 현종의 제위기간이었으며, 대기근사를 살펴보는 것은 현종이란 인물을 고찰하는 셈도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대기근 당시 외국과의 상황까지 살펴보면서 조선이 어떤 입장이었는지도 설명되고 있지요. 왜란과 호란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이라 당시의 조선은 이리저리 치이는 상황이라는 점이 참 씁쓸했달까...
책에 따르면 17세기에는 유독 자연재해가 잇따랐는데, 그 이유가 바로 이상기후의 문제였다는 사실입니다. 책에 따르면 경신대기근이 일어난 시기가 바로 태양의 흑점활동이 쇠퇴하여 지구의 온도가 1~2도 내려간 소빙기에 해당하는 시기인데 이 시기를 전후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엄청난 사회적 변화가 생겨났다고 하더군요. 이 책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를 읽다 보면 아무래도 환경결정론이 떠오를 수밖에 없는데, 최근 일어난 자연재해도 그렇거니와 인간의 삶은 이 지구의 상태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며, 무서울 정도로 그것에 의해 인간사가 쉽게 변하기 때문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본의 아니게도 이 책은 인간이 항상 자연에게 겸손해야 한다는 점도 일깨우지 않나 싶어요. 경신대기근의 원인이 되었던 이상기후가 순전히 천재(天災)였다면 현재의 이상기후는 인재(人災)라는 측면이 더 강하니 말입니다.
조선사에 흉년 혹은 수재가 일어난 적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되는 경신대기근은 100만 명의 사상자를 냈으며, 이 책에 설명에 따르면 까딱 잘못하다간 국가파탄의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대위기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대재난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조선 사회 특유의 내구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의 정치가 당쟁으로 얼룩져 있다고 하지만 굶어 죽는 백성들의 구휼에 마냥 손을 놓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며, 그 구제책이 정치적으로 이용된 면은 없지 않으나 확실히 백성들을 구하기 위해 조선이 여러 대비책을 마련하려 노력했다는 겁니다. 책에서도 자세히 설명되는 사실로 대기근 시기 제위에 올랐던 현종은 신권의 압박을 받는 왕이었지만, 나름 민생을 안정시키고 왕권을 강화하려는 시도를 보였던 왕이라는 점도 새로이 알 수 있었고요. 하지만 그의 그런 의지가 대기근이라는 천재 앞에서 꺾일 수밖에 없었다는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지요.
역시 눈여겨읽게 되는 것은 대기근으로 피폐해지는 조선 민중들의 삶으로 사람을 실제로 부모가 굶주림에 미쳐서 죽은 자식들을 삶아 먹었어도 사람들이 감히 비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관료들은 그 지역의 진휼이 제대로 되지 않아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했을 정도였는데 이를 보면 그 대기근의 참상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는 부분. 뿐만 아니라 지독한 흉년과 가뭄으로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떠돌이 생활을 하다 객사하거나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등 일이 줄을 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이 전쟁 때에도 이러지 않았다고 한탄했을 정도라면 한 번의 자연재해가 어떤 식으로 인간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지 확인할 수 있지요. 또한 대기근으로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면서 떠도는 이들에 의해 전염병도 같이 퍼져 사망자의 수를 늘리는 데 일조를 하게 되고 불안해진 민심으로 범죄가 늘거나, 흉흉한 괴담이 퍼지는 것을 보면 민중의 삶은 사회가 불안정해질 때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는 양상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대기근은 조선사회의 대부분을 크게 바꾸어버리는 데 일조를 합니다. 민생이 파탄남에 따라 국가재정도 바닥을 드러냈고 그것을 충당하기 위해 신분매매라는 극단책을 쓰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이것이 조선시대를 지탱해 왔던 신분제를 흔드는 계기가 되었으며, 민중들 사이에서 새로운 신앙이나 의식이 싹터 이것이 17세기 후반 민중 반란이나 대규모 범죄조직-검계의 출현으로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시기 재정확보를 위해 주조한 화폐로 인해 화폐 유통이 활발해져 후에 상업시장이 형성되거나 새로운 제도가 정비된 것은 말할 것도 없는데, 평소대로라면 인간들이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을 천재지변은 빨리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다만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것은 고통 속에 얻는 변화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다시 본래의 모습대로 돌아가려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 때문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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