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도서관에 들려 뭔가 제 흥미를 돋울 만한 재미있는 책이 새로 들어오지 않았나 싶었는데 한국 소설 코너 쪽에 눈에 띄는 책이 있더군요. 대개 황금가지에서 나온 소설들은 여러 번 빌려본 적이 있어서 그 표지가 어떤 것인지 익히 알고 있으므로 그 종류의 책은 금세 알아볼 수 있었는데요. 이번에 발견한 책은 황금가지에서 나온 한국소설로 처음 발견했을 때 책의 제목인 『해무도』이며, 바다 안개를 뜻하는 단어가 들어가 있고 흔히 안개라는 단어 자체가 미궁이나 미로, 혹은 미스터리로 은유되는 경우가 많기도 한데다 대충 책을 훑어봤을 때 폐쇄적인 섬마을에서 일어나는 살인이라던가 기묘한 귀신 노파 전설이라는 단어가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왠지 제 취향에 맞을 거 같아 빌려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제가 책을 빌려왔을 때에는 일종의 미스터리 내지 공포물을 기대하면서 빌려온 감이 있었습니다. 책을 읽기 전 아무 페이지나 펼쳤을 때 귀신 노파라는 단어가 나온다거나 바다 안개라는 것 자체가 흔히 사고를 불러 일으키기 쉬운 자연 현상이라 흔히 내려오는 전설 속에서도 그다지 인간에게 이롭게 표현되는 경우는 많이 없기도 한 경우를 많이 보았기 때문에 그런 구전에서 착안한 공포소설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거기에 사람이 저지른 살인 사건 같은 것이 끼어 더 무서운 혼란을 가중시킨다거나... 물론 소설 상에서 섬 내부에 전해지는 비극적이고 끔찍한 전설이 등장하는 인물들이나 사건에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맞습니다. 내용 자체는 제가 일찍 빌려본 바 있던 일본 추리소설들과 유사한 느낌을 받았는데 예를 들면 미쓰다 신조의 도조 겐야 시리즈 같은 경우는 일본의 폐쇄적인 시골 특유의 신앙이나 풍습이 인간에게 영향을 주어 살인 사건으로 발전하는 케이스들이 주였으니까요.
소설은 중반 본격적인 살인이 일어나면서 초반의 공포스럽고 환상적인 분위기를 벗어나, 폐쇄된 곳에 모인 사람들 중 누가 진짜 범인인지 알 수 없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따라갑니다. 물론 사건의 시발점이 된 사건 역시 갑작스러운 주요 등장인물의 죽음입니다만 초중반까지는 의문스러운 죽음에서 비롯된 기묘한 분위기와 불길한 전조들이 자주 등장하여 이때까지는 초자연 현상이 주를 이룰 것만 같은 공포소설을 읽는 분위기로 읽어내려갔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나면 소설의 분위기가 미스터리를 얹은 추리 소설이 아니라 폐쇄적인 곳에서 초자연 현상이 끼어 벌어지는 의문스러운 사건이라고 하더라도 꽤 재미있게 읽어나갔을 거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요. 제가 원체 그런 장르를 좋아하기도 하고 사람이 이상 심리인지 아니면 정말 불가사의한 무언가가 끼어든 것인지 현실과 환상을 오고 가는 내용도 상당히 재밌게 보는 편이라.
하지만 이 초반의 수상쩍고 위태로운 분위기는 중반 성구라는 등장인물의 죽음을 계기로 지금까지 일어난 사건은 초자연적인 존재가 일으킨 게 아니라 사람이 저지른 사건이라는 게 드러나면서 분위기가 전환됩니다. 여기서 좀 특이점은 사건의 진실을 캐는 인물이 경찰이나 탐정과 같은 전문가가 아니라 인문대학교수라는 타 추리소설에 비하면 조금은 평범한 인물이라는 점인데 그 때문인지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의 개성이 다른 인물들에 비해 밋밋해 보인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어요. 끝내 사건의 진실이 파헤쳐 지고 사건을 일으킨 범인과 그 동기에 대해 밝혀지지만 소설은 초반의 분위기를 잊어버리지 않은 듯, 섬의 전설을 살인 트릭에 끌고 오긴 했으되 어딘가에 미스터리 같은 부분이 남는 결말로 끝맺음 합니다. 이런 방식은 제가 재미있게 읽은 미쓰다 신조처럼 외국 소설에서 많이 봤던 방식인데 한국 소설에서는 드물게 본 것이기 때문에 참신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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