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도서관에서 빌려보게 된 이 『동유럽 신화』는 제목의 '동유럽'이라는 지명 때문에 특이해서 눈길을 끌었던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니 유럽 신화는 대개 북유럽 신화라던가 아니면 아일랜드나 영국의 신화, 그림형제와 같은 학자들이 기록한 독일과 프랑스 등지의 구전 민담(넒은 의미에서는 이런 구전 설화도 어찌어찌 포함시킬 수 있을 테니) 같은 것들이 떠오르는데 동유럽 쪽, 책에서 언급하는 세르비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의 신화들은 제가 아는 것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나마 공포 장르의 주 소재로 자주 쓰이는 뱀파이어 설화가 루마니아 쪽 계통이란 것만 알고 있는 정도? 그래서 처음 책을 접했을 때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 들었고 또 굉장히 이질적일 거란 생각이 들어 좀 지루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으레 어떤 나라의 신화든 자신들 나라의 민족 영웅이나 창세급 이야기는 그 나라 민족이 자랑하는 영웅과 신들에 대한 찬양 떡질 때문에 대개 지루해지기 마련인데 이것이 좀 더 평민이나 일반인들 이야기로 넘어가면 우리나라와도 큰 차이가 없는 자연에 대한 공포담이나, 자연에 깃든 영혼이나 정령(우리 식으로 따지면 도깨비), 일반 백성들의 토속 신앙이 주가 되거나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 권선징악 이야기 등 친숙한 감이 들어서인지 재미있어지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동유럽 신화 속에 남아있는 창세 신화나 건국 신화 혹은 영웅 신화가 아닌 일반 백성들이 간직했을 민속 신앙 이야기, 어찌 보면 아일랜드의 요정 이야기처럼 사물이나 자연에 영이 깃들어 이것이 인간들 삶에 영향을 끼치고 못된 짓을 하기도 하지만 가끔 도움도 주는 그런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고 할까요?
일단 동유럽 신화들이 우리에게 낯설게 다가오는 가장 큰 이유로는 동유럽 나라들과 우리나라가 교류가 많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요새는 한국 사람들도 외국 여행을 많이 다니고 유럽 여행을 가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단순 해외 관광을 가는 것이 그 나라와 교류가 생긴다고 단정 짓기도 그렇거니와 일단 그 나라 특유의 문화를 접할 일이 많이 없다는 점이 작용하겠네요. 그리고 대개 동유럽 국가들이 사회주의 정권 아래 있던 나라들이라 그나마 남아있던 신화들도 사회주의 체제 아래에서 왜곡되었다는 점도 있다고 하고요. 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대개 동유럽 국가들이 기독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라 기독교의 영향에 따라 그 지역의 토속 신앙이나 민속 신앙이 많이 사라지고 희석된 탓인데 아무래도 그 나라의 역사적 특성상 신화에 대한 기록물들이 많이 사라진 것이 아닐까 추측이 가능합니다. 오히려 기독교와 공존할 수 있었던 아일랜드의 요정 신앙이나 상세한 기록물을 남길 수 있던 북유럽 쪽 신화들이 운이 좋았던 케이스라고 할지...
이런 점을 본다면 기록물이 얼마나 남아있느냐에 따라 신화가 얼마나 전승되느냐 그 운명이 갈리는 것을 확연히 알 수 있다고 할까요? 뿐만 아니라 체코나 폴란드 같은 경우는 거의 18-19세기 경에 나라가 위기 상황일 때 일종의 민족 운동의 하나로 신화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었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기록 자체도 많이 희석되었는데 신화 자체에 대한 발굴도 상당히 늦은 감이라고 할까... 비슷하게 한국 신화도 독특함과 한국 문화 특유의 것을 많이 담고 있으며 설화나 전설에 대한 기록물들이 적다고 볼 것은 아니지만 연구 자체가 후대에 이루어진 바가 있고, 신화의 체계적인 면에서 많이 부족한 부분이 보인다는 언급을 다른 신화 연구서에서 본 기억이 났습니다. 종종 동유럽 신화의 이야기 중 기독교의 영향을 받았을 법한 이야기를 보면 원래 우리나라 특유의 산화가 유교와 불교의 영향을 받아 달라진 측면을 떠올리게 한달지... 신화 세계의 후발 주자들은 이래저래 고생이 많은 법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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