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신화나 설화 옛 이야기와 관련된 책을 찾을 때 아주 들어보지 못한 종류의 신화나 설화가 아니라면 대강의 한국 신화는 다른 서적들을 통해 줄거리나 서사 구조를 알고 있기 때문에 단순 이야기만 풀어서 설명해준 책이라면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은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신화를 가지고 좀 더 다른 방면으로 이야기를 해석해준다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데 이런 종류의 책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것이 『삶을 일깨우는 옛이야기의 힘』이었어요. 지금까지 읽은 한국 신화를 다룬 서적 중에서 이 책을 제일로 꼽고 싶은데 한국 신화를 단순 전해져오는 옛날이야기만이 아니라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이 같은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세상을 또 어떻게 바라보았는지 상당히 인간적인 해석을 곁들이기에 옛이야기를 통해서 각박했던 마음이 힐링이 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할까요?
반면에 한국 신화를 재미있게 다룬 책 중에는 한국 신화를 통해 사람들의 심리나 의식구조가 어떻게 되었는지 좀 더 정신분석에 가까운 해석을 내린 책들도 있었는데 이번에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고른 책이 『심리학이 만난 우리 신화』입니다. 한국 신화 혹은 옛이야기의 구조를 단순 서사 형태의 허구가 아니라 이것을 하나의 의식 구조로 바라본다면 어떻게 해석이 달라지고 옛사람들이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이야기를 새롭게 받아들이게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이런 정신분석적인 요소로 이야기를 바라본다면 우리가 옛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답답함이나 억울함 - 주인공은 왜 그리 멍청하게 남을 믿어서 화를 부르는지, 부모란 작자가 어떻게 저렇게 무책임한지, 왜 잘못을 한 인간을 저렇게 쉽게 용서해주는지 -이 어느 정도 상쇄되는 경향이 생기는데 이는 이야기 속 주인공의 무력함과 어리석음이, 악당들의 파렴치함과 주인공 주변 인물들의 이기적인 속성이 사람을 화나게 만들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이 가진 약점을 상징할 수 있다는 해석 때문에요.
책의 설명에 따라 심리학적으로 신화를 따라가 본다면 옛이야기의 구조는 한 사람이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그 내면에 벌어지는 다양한 통합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신화 속에 등장하는 무책임하거나 폭력적인 남성과 수동적이고 나약한 여성이 만나 펼쳐지는 갈등의 과정은 옛 시대의 파편이나 혹은 현실의 단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만 한 사람의 내면 속에 있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합치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키다 결국 서로 인정하고 포용하게 되는 결말을, 남의 재산이나 목숨, 혹은 다른 사람의 반려자를 넘보며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는 악당은 역시 현실의 악인들을 묘사한 것임과 동시에 인간 내면에 있는 어두운 그림자 부분을 형상화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무기력하거나 돕지 않는 주변의 인간들은 부정적인 면모가 있을지 언정 한 사람의 독립에 관여하는 역할로 존재한다고 해석될 수 있다고요.
특히 신화적 세계에서는 그것이 상상의 세계이기 때문인지 남성성과 여성성 같은 하나의 속성에만 치우치지 않고 그것을 종횡무진하는 트릭스터들처럼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담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은 단순 한국 신화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닙니다. 종종 책에서는 한국 신화에 등장하는 요소들, 칼이나 거울 같은 물건에서부터, 뱀이나 물고기 같은 동물, 특정한 숫자의 의미 등에 대해 좀 더 상세한 설명을 곁들이기 위해 외국 신화의 요소와 비교하기도 하는데요. 환경이나 문화권이 상당히 다른 외국에서조차 신화의 세계에선 비슷한 모티프가 등장하기도 하는 등 인간들에게 무의식적으로 공통되는 부분이 있기에 이런 유사점이 발견되는 것이라고 봐야겠습니다. 한국 신화가 타국의 신화에 비하면 이본들이 많아 내용이 많이 달라지는 구석도 있겠지만 그런 점이 한국 신화를 낮게 볼 만한 것도 아니요, 타국의 신화가 우리 신화보다 더 폭력적이라고 비난할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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